CAFE

…    주일설교

2026. 6. 6. 주일 낮(평신도 주일) - 한 몸을 이루어 가는 평신도

작성자목사♬수정|작성시간26.06.08|조회수26 목록 댓글 0

한 몸을 이루어 가는 평신도

 

   2026. 6. 6. 주일 낮                                                                                                                                                  롬 12 : 3-13

 

 

이번 주는 평신도 주일로 지킵니다. 감리교에서는 이번 주를 평신도 주일로 지킵니다.

성경에는 평신도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평신도 대신 ‘성도’라는 말을 61회, ‘신도’ 1회, ‘신자’ 1회를 쓰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평신도라는 말을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아니라 ‘목회자와 성도’라고 해야 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직분을 받지 못한 성도를 일컫는 말로 평신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자제해야 합니다. 평신도라는 말 대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 예수님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된 사람들의 집합적인 의미인 성도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럼 평신도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평신도라는 단어는 알렉산드리아 교부였던 클레멘트에 의해 처음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후 95년 클레멘트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목회자와 성도를 구별하기 위한 단어로 헬라어인 라이코스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라이코스는 ‘백성’을 뜻하는 헬라어 라오스에서 파생된 것으로 ‘일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이방인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는 말로 쓰였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단어는 ‘평신도’라는 의미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됐습니다.

성직과 교권의 강화를 원했던 중세시대 로마가톨릭은 평신도라는 말로 사제와 성도의 구분을 확고히 했으며 교리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1950년대 이후 네덜란드 출신의 개혁주의 신학자 헨드릭 크래머가 ‘평신도 신학’을 주창하면서 ‘평신도’ 개념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부터 사랑의 교회 고 옥한흠 목사님이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훈련을 시작하면서부터, 한국교회에 ‘평신도 훈련’이라는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경배와 찬양, 대형 집회, 오순절 성령 운동, 평신도 제자 훈련에 의해 이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평신도를 깨우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은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자연스럽게 평신도라는 말이 한국 기독교에 보편화됐습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로 지키고 있으니까, 평신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전하겠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린다면, 교회에서 평신도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목회자 혼자 이끌어가고, 평신도는 그냥 따라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교회를 협력하여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습니다.

목회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일을 하는 거에 있어서도 평신도가 주관이 되어 해나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각자 맡겨진 달란트대로, 주어진 은사에 따라 목회자와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평신도에게 일을 할 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요?

 

1.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잘 읽어보면 “믿음의 분량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믿음의 분량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각 평신도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나눠 주신 분량의 은혜를 받았기에 이를 깨닫는 사람은 거짓된 우월의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고전 12:14-20절에 바울은 잘 말하고 있습니다. 한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은사를 준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일을 할 때, 그것이 합력하여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함께 고통을 받는다는 겁니다.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각 지체요, 한 몸이라고 바울은 이어 2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이 다 다릅니다. 다르기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것만 할게, 너는 저것만 해도 아닙니다. 부족하더라도 하나의 일에 힘을 모아 자기의 분량대로, 조금씩 손을 모아 한 지체로서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이룰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믿음의 분량이 다르게 주어지기 때문에 자만에 빠질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5절에 보면 “우리 많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지역 교회를 염두에 둔 말입니다. 그들 중에는 로마인과 외부 이주민, 자유민과 노예들 또는 노예출신 자유민,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부유층과 하층민 등이 고루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들이 되었고, 다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서로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가 되어야 하는 곳이요, 평신도들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모이 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평신도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일을 해야 하는데, 한 몸이 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는 모든 것들이 주님을 위해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의 일이라고 각자 좋은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 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각 지체로서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란트가 훌륭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때 그 힘이 발휘되고 결과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저 자기 자랑만 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할 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은 혼란과 분열만 가져올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될 때, 하나님과 교회와 공동체에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신도가 지닌 은사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우월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맡은 일에는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6절-8절 상반절을 보면 평신도에게 주어진 각종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받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말하면서, 평신도 구성원이 “서로의 지체들”이 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다른 은사를 가진 자들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함께 봉독한 말씀 외에 에베소서 4;11-12절에는 또 다른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 ,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말씀도 각자의 은사대로 세우심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말하는 겁니다.

평신도에게 주어지는 각종 은사, 직분 등은 사람이 높아지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맡기시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될 때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힘을 합하여 해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면서 마지막에 강조한 말씀이 있습니다.

8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즐거움으로 하라”는 겁니다. 본문에서는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주어진 일하는 마음 자세를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분 좋게 시작했다가 마음이 안 맞아 짜증이 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서로 상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벧전 5:2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봉사와 섬김에 있어서 하는 자의 마음 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헌금을 하는데 있어서도 드리는 자의 마음을 말하는데,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 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교회의 모든 섬김은 억지가 아니라 기쁨이어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결국 상처가 남고 관계가 깨어집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하면 작은 일도 하나님의 큰 일이 됩니다.

“즐거움으로 하라”는 말은 단순히 감정이 좋으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 자체를 감사로 받으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 평신도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평신도의 헌신이 없으면 교회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힘을 함께 더해 하나의 마음이 되어야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평신도는 교회에서 주변적인 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택하신 귀한 성도입니다. 그들에게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 즉,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각 지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일을 할 때, 교회에는 기쁨이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됩니다.

또한 직분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의 이런 일을 할 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지 직분을 가지고 남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역 사회를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모두 힘을 합해 믿음의 분량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여 귀한 열매를 맺는 위대한 평신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