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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14. 주일 낮 -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작성자목사♬수정|작성시간26.06.14|조회수25 목록 댓글 0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2026. 6. 14. 주일 낮                                                                                                                                             사 30 : 1-14

 

 

이번 주부터 3주에 걸쳐 이사야 30장을 가지고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유다가 어떤 선택을 했고, 잘못됨을 보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가 잘못 선택해서 똑같은 일을 당할까 봐 염려되어서입니다.

바른 선택은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게 되지만, 올바르지 못한 선택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사야 30, 31장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애굽을 의지하는 것을 정죄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시겠다고 말하고(1-17절), 곧 바로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하신다고 합니다(18-33절). 31장도 심판(1-4절)과 이어서 구원(5-9절)을 말합니다.

유다의 이런 어리석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들은 북왕국 이스라엘로부터 위협을 당할 때 아람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다시 아람으로부터 위협을 당하자 이번에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시 앗수르가 위협하자 이번에는 애굽을 찾아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죄에 죄를 더하는 짓이라고 하십니다. 이사야는 수차례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실 것을 선포하며 유다를 향해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애굽과 동맹을 맺고 그 도움으로 구원을 받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치 않는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거부하며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다 백성들은 선지자에게 요구합니다. 바른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고,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부드럽고 거짓된 말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남기시기 위해 그 말씀을 서판에 기록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진 경고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백성들을 억압하여 모은 재물들을 가지고 허망한 민족인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한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버리는 것같이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실 것을 선고하십니다.

한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에 주어진 예언의 말씀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에도 계속 말하는 영원한 메시지입니다.

 

말씀을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 유다의 죄(1-2)

 

유다의 죄는 지금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1절에 보니 유다를 향해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마음이 완악하고 불순종하는 자식“들이라는 겁니다.

원래 이 말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동물에 대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패륜아에 대해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패역한 자식들’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요?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마암지 아니하며”라고 합니다. “계교”라는 말은, ‘계획’을 의미하는 말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일련의 목적을 위해서 지혜를 서로 짜내는 것인데,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고 자기들끼리 세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들을 통해 무슨 일을 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여쭤보고 그 응답을 받고 행했습니다.

20: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20: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 ..."

실패한 후에도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27: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 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국가적 결정을 할 때 하나님께 묻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 마음대로 행한 것입니다.

 

이어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며, “우리를 보호하여 주옵소서”라고 구해야 하는데, 유다가 자신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하여 스스로 애굽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보호자가 되어 줄 것을 요구한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이 사실을 더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 2절의 말씀입니다.

2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여 스스로 강하게 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고 단독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행동에 대해 1절 하반절에 “죄에 죄를 더하도다”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죄가 있는데, 거기에 더해 범죄가 더 무거워졌다는 겁니다.

 

 

2. 애굽의 헛됨(3-7)

 

3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남유다가 애굽으로부터 기대하였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애굽은 그들에게 ‘힘(세력)’과 ‘그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수욕’이 될 것입니다.

당시의 애굽은, 앗수르의 랍사게가 ‘상한 갈대 지팡이’(사36:6)라고 비웃을 정도로 무력하기 그지없었습니다.

 

4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거리가 약 220-300KM나 되는 ‘소안’에서 ‘하네스’까지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했지만 결국 얻은 것은 수치뿐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의지하는 헛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의 핵심은 거리 자체보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려고 먼 길을 찾아간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수많은 잘못과 착각을 불러오는 게,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해도 지금 괜찮으니까, 습관이 되어 계속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것을 좋아하거나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몸이 건강할 때, 더욱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해야지, 건강하다고 자만하다 아플 때 병원에 가면 더 고생하게 됩니다.

깨달았을 때 지키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묻고 행하는 사람이 실수하지 않습니다.

 

5-7절 말씀에서 눈여겨 볼 단어가 ‘라합’입니다. 여호수아에 나오는 ‘라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라합’은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 바다 괴물입니다. 이 괴물은 바다에서 꼼짝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는 겁니다.

그런 괴물이 애굽이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애굽을 그 먼 거리를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애굽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자라는 거죠. 그런 애굽이 오히려 너희들을 구원하지 못할 뿐더라, 수욕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너희가 아무리 그런다 해도 헛수고라는 겁니다.

 

3. 듣기 싫어함(8-11)

 

9절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패역한 자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들의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고 말합니다.

악과 선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거짓과 진실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자신 뜻을 거스르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말도 듣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니, 10절에 뭐라고 합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얘기하지 말라,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거짓된 것을 보이고 대신 자신들 귀에 듣기 좋은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헛됨을 말씀하면서 내게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듣지 않고 애굽을 믿다 헛될 수욕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자들은 그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틀리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겁니다. 그러다 오만의 길에 빠지는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듣기 좋은 부드러운 말을 하라는 겁니다.

자신 몸이 썩어지고, 영혼이 병드는 것도 모른 채, 지금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버려야 삽니다. 들어야 삽니다. 바라보아야 삽니다.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 악을 떠나는 것은 소극적인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순종입니다.

- 죄와 타협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 악을 떠난 자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평안을 주십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살고 싶다면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4. 심판을 선언하심

 

자기 고집대로 가는 이스라엘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그릇을 깨뜨리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 심판을 선언합니다.

‘무너지는 벽의 비유’의 초점이 멸망의 급속함에 놓였다면, '파쇄되는 토기 비유'는, 그 초점이 멸망의 철저함에 맞추어집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멸망시키는 심판을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모든 것을 갈기갈기,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해 버리겠다는 겁니다. 회복불능이 되어 유다의 회복 자체에 소망을 갖지 못하게 하십니다.

소망이 없는 유다, 소망이 없는 교회, 소망이 없는 그리스도인 생각해 보셨습니까? 불능의 상태에서 가능의 상태가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세요. 그럼 살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유다의 죄는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하려 했던 겁니다.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 데,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계심에도 애굽을 의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애굽을 의지하십니까? 물질입니까?, 성공입니까?, 자녀입니까? 인간관계입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입니까? 세상의 방법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금송아지 신입니까? 무엇입니까?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다면, 어려울 때, 가장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떤 일이 닥쳐왔을 때,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나의 애굽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당장 필요하다 할지라도 먼저 하나님께 구함이 바른 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구하셔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제일 먼저 듣기를 원하십니다.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 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나님께 둔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길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의 길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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