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14)
간음하지 말라
2026. 5. 22. 금요 기도회 마 5 : 27-30
오늘은 산상수훈 14번째 말씀으로 [간음하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전합니다.
본문 27절은 십계명 중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는 외적인 행위에 국한되어, 성적인 행위만을 간음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간음이란 사람의 마음(음욕을 품는 시선)으로부터 시작되고,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마음에 품는 음욕 역시 행위 못지않게 악하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음을 시사해 줍니다.
여기서 잠깐, 오늘 본문은 육적인 관계를 나타내고 있지만, 영적인 관계를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이라고 구약에서는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면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음란한 아내의 모습으로 비유합니다.
호 1:2 “이 땅이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또한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을 더 사랑한 것을 간음으로 표현했습니다.
겔 16:15 “네가 네 아름다움을 믿고 행음하였으며”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세상 권력과 우상을 의지한 것을 영적 간음으로 말씀하고 있는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순히 외적인 성적 결합을 넘어, 28절 이하에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29절 이하에서는 오른 눈이 실족하면 빼어버리고, 오른손이 실족하면 찍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말씀하신 그대로 그렇게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욕과 악한 욕망의 심각정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이러한 생생한 과장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그런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죄책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몸의 일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즉, 죄는 그것이 그 자체로 치명적인 결과 때문에 극단적인 방식으로 처리되어야 함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이솝우화에 사막에서 “낙타와 주인”의 관계처럼, 처음에는 낙타의 다리 하나만 텐트에 허용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의 양보 결과는 완전히 반대 상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낙타가 텐트를 다 차지하고 주인은 텐트 밖으로 밀려나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허용하거나, 그럴 수 있지 하고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죄의 여지를 남겨둬서는 안 됩니다. 죄의 결과는 바로 사망임에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 추악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죄에 대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고, 죄는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전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 니라”
우리 힘으로 절대 죄와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의 성령이 우리를 통제하게 하고, 우리를 도우시도록 간구하며 나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은 죄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