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잘 들기 / 이화진
우물쭈물하다 일흔 중반을 바라보게 되었다. 기대수명이 얼마인지 인공지능에 문의하였더니 여든여섯이라고 알려준다.
매일 다섯 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처지를 고려하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기대수명은 그렇다지만 남은 삶이 몇 해가 될지 가늠할 수 없다. 남은 삶을 보람차고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십 대 중반에 직장에 들어갔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건 고졸 학력이 전부였다. 오십 중반까지 두 아이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느라 허리가 휘청거렸다. 아내는 몇 년간의 부업 외에는 주식, 부동산 투자 등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직장에서 ‘관官’으로의 승진을 바라지도 않았다. 재물욕과 명예욕을 내려놓았으나 참살이가 되지 못했다. 달리 욕심부렸던 게 있어서였다. 방송대 공부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준비에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였다.
사 년 만에 졸업하겠다는 목표로 방송대 학점을 이수하느라 애썼고, 졸업 후엔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따느라 두어 해 동안 안간힘을 썼다. 작장 일에 소홀한 채, ‘목표 달성과 성취’라는 욕망에 잡혀 수년 동안 거기서 헤어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앞만 보느라 삶의 여유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공부를 통한 성취였지만, 과욕을 부리며 집착했기에 참살이(Well-being)를 이루지 못했다.
아내도 내가 퇴직 후, 중개업에 종사하려고 했더라면 만류했을 터였다. 매물이 나와 매도인과 매수인 간에 흥정을 붙이자면 적극성과 사교성이 있어야 했다. 때로는 중개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약간의 과장도 필요하다.
올곧게 사는 삶을 입버릇처럼 외치는 내가 중개업에 뛰어들면 적성에 맞지 않아 곧 그만둘 것을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과 아내의 의중을 알았으면서도 공부를 접지 않았으니 참으로 미련스럽고 아둔했던 자신이었다.
퇴직 후, 왜 독서와 글쓰기에 미음을 두었는가? 참살이를 이루지 못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나이 잘 들기(Well-being) 위해서였다. 나는 잘 늙는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얼굴에는 세월이 남더라도 눈빛은 맑고, 말투는 부드럽고 마음은 단정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고운 모습은 지성미, 심신의 건강, 깨끗한 얼굴, 맑은 눈빛, 부드러운 말, 단정한 옷차림 등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나는 부족함으로 가득하다.
기대수명을 여든여섯으로 잡을 때 남은 삶은 십사 년 가량이디. 살아온 세월을 네 계절에 비하면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는 셈이다. 한 생을 십이 개월(1년)로 본다면 이제 시월을 다 보내고 십일월 초순에 진입한 시점이다. 나뭇잎으로 본다면 단풍이 무르익었을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시기를 맞아 내 얼굴에 나타난 단풍꽃은 어떤 색깔일까?
거울 속 내 얼굴에 맺힌 단풍은 그리 고운 빛이 아니다. 가끔 드는 술 탓인지, 불규칙한 수면 습관에서인지, 노화 현상인지, 스트레스가 원인인지 얼굴에는 크고 작은 노인 반점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니 나는 분명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 같은 삶과는 거리가 있다.
노화 현상으로 본다면 검버섯이 동갑 지인들보다 더 드러나 있다. 나이 들어서도 외모에 신경을 쓰는 몇몇 친구들은 피부과에서 갈색 반점을 제거해 전보다 얼굴이 깨끗해져 있다. 그런 친구들은 그들의 검버섯 제거 결과를 이야기하며 내게도 피부과에 가서 갈색 반점을 없앨 것을 권유하지만 나는 그대로가 좋다. 제거해 보았자 한두 해 후에 반점이 다시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Y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문우 중에 나보다 무려 열여섯 해나 위인 원로 선배가 한 분 있다. 그는 나의 기대수명을 훨씬 넘겼으나 얼굴빛은 나보다 고우며 지성미가 넘친다. 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오랜 세월 독서와 글쓰기를 가까이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온 삶이 얼굴에 그려진 것이라 짐작된다.
그는 문우들이 바라는 미래의 표상이며 자화상이기도 하다. 매주 만날 때면 언제나 고운 얼굴에 온화한 미소의 꽃을 피워 우리를 즐겁게 한다. 가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감동적이며 교훈적인 이야기를 단체 카톡 방에 올린다.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이 내게 보내온 글에 나타난다. 참으로 우국충정으로 가득한 글이다. 의롭지 못한 일에 용기 있게 맞서는 시민정신을 지닌 이가 대체 그 나이에 얼마나 될까?
겸손함과 긍정적인 마음, 밝은 미소로 문우들의 기분을 즐겁게 하는 그분에 나를 비춰본다. 운 좋게 기대수명을 넘겨 그분의 나이에 이른다면 내 자화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원로의 표상으로 손색없는 그를 보며 독서, 사색, 습작 등을 게을리할 수 없다. 그의 기를 받는 문우들과 함께 하니 만년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맞은 듯하다. 아름다운 인생의 한때가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잘 익은 선명한 색깔을 드러내는 단풍꽃 같은 노년기를 맞이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독서, 사색, 습작 등 세 가치는 이미 천석고황泉石膏肓처럼 굳어져 있다. 남은 날들이 길지 않더라도 이 작은 습관들이 나를 곱게 물들이는 단풍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황혼기를 살아가는 나의 참살이이며,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는 예습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