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이네 집 / 견일영
흙담이 낮아 앞집 안이 훤히 다 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키가 작아 뜰 위나 방 안에서 내려다보면 앞집 마당이 겨우 보였는데 고학년이 되면서 우리 집 마당에서 발돋움만 하면 앞집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를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는 한 반에 있는 봉선이가 살고 있었다. 그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서로 말을 주고받질 못했지만 그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온 동네 아이들이 집집마다 모여 남자아이들은 막대놀이나 구슬치기를 하고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넘기나 공기놀이를 하곤 했는데 봉선이는 여기에도 섞이지 않았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하는 여자아이들에게 끼어들기도 하고 꼬챙이로 치마를 훌쩍 들어 올리고는 도망을 쳤다. 여자아이들은 악을 쓰며 이구동성으로
"문디 자석 지랄빙 하고 있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앞집 봉선이는 놀이하는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밖에 나돌아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 집 어른들도 이웃과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말다툼을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 본 그 집은 언제나 조용하고 일상생활은 여느 집이나 똑같았지만 말수는 아주 적었다. 앞집에는 봉선이 할아버지 내외분과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 여동생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외출이 없고 말수가 적었다.
나는 세 살 들면서 이곳 이문동 할아버지 댁으로 와 살았는데 부모와 떨어져 있어 그런지 언제나 외로움을 탔다. 그래서 방문을 기대고 하염없이 앞집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에 나가고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댁은 초가집으로 방 두 개와 골방이 하나 있었고 소 마구가 별채에 하나 더 있었다. 가족은 할아버지 내외분과 작은아버지 두 분이 있었는데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숙모가 한 분 들어와 모두 여섯 식구가 되었다.
한번은 많은 비로 앞집과 우리 집 사이의 흙담이 무너졌는데 그것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무슨 의논 같은 것도 없이 조용히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았다. 봉선이 집은 언제나 조용하고 생활이 순조로워 보였는데 무엇인가 생각하며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동네가 가끔 시끄럽게 움직일 때도 있어 이웃끼리 사소한 일로 큰 소리를 내고, 아이들 문제로 싫은 소리가 오고 갔는데 이 집만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이 감돌았다. 그들은 조용히 시골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봉선이네 집은 막연하게나마 기다리는 생활, 기다릴 줄 아는 습관, 기다림으로 찬 가슴을 가졌기 때문에 조용히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조급하지 않고, 남을 원망하지 않고 먼 꿈을 무지개처럼 그리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끝없이 공상의 나래를 펴 보며 그 집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 고요한 집에 동네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다 모이는 일이 벌어졌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 그 집 큰 아들이 일본군에 징집된 것이다. 무운장구를 비는 깃발이 긴 장대에 매달려 펄럭이고 있는 가운데 동네 사람들이 송별 인사차 한목에 몰려든 것이다. 그가 떠나서 얼마 있지 않아 전쟁은 끝나고 남양군도 격전지에서 무사히 돌아왔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야자수 열매 몇 통을 들고 왔다. 동네 사람들은 신기한 야자수 물을 나누어 먹었다. 나도 조금 얻어먹어보았는데 처음 먹어 본 그 맛은 신선이 주는 물처럼 황홀하게 느껴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봉선이와 한 번도 말해 본 적이 없지만 그 이름이 곱고, 그의 정숙한 모습이 좋고, 부티 나는 그의 몸매가 좋아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동기동창 모임이 매년 열린다. 대부분의 여학생들도 참석한다. 그런데 봉선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가 쑥스러워 한 번도 알아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얼마 전 고향에 갈 일이 있어 옛날 살던 우리 집과 봉선이 집을 찾았다. 거기에는 옛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큰 길이 나고 양옥이 들어서 있었다.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가. 누구나 떠나야 하고 잊혀야만 하는가. 봉선이네 집은 서부활극에서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고 떠나는 기사처럼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흑백 사진 같은 그 그림이 이제는 아름다운 동영상으로 떠오르며 나를 옛집으로 데려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