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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6월 5일(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기도와 청원을 통해서

작성자macario|작성시간26.06.05|조회수187 목록 댓글 0

6월 5일(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기도와 청원을 통해서

메시아 그리스도 구세주. 다 같은 말이다. 예수님 동포들은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도 불렀다. 우리에게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다윗왕이 있다. 다윗 시대에 하느님은 예언자 나탄을 통해서 그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나올 거라고 말씀하셨다.(2사무 7,1-29)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2사무 7,12) 그래서 메시아에 대한 그런 호칭이 생겨났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아에게 정치적이고 현실 기복적인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가 오면 다윗왕 시대 누렸던 번영을 재건할 것이라고 믿었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라는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었던 거 같다. 그러니 예수님을 어떻게 메시아라고 믿을 수 있었겠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을 비난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이는 호칭이면서 우리 신앙 고백이다. 예수님이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고백이다.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것들을 청하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안녕, 사업 번창과 소원 성취? 이런 기대와 청원을 한다고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아이가 엄마에게 밥 달라고 하고, 사회생활 초년생이 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묻고 도움을 청하는 거처럼 우리는 하느님께 이것저것 때로는 나중에는 부끄러워할 청원도 한다. 그런데 제삼자, 즉 신앙이 없는 이가 이런 우리를 보면 좀 이상하다고 여길 거 같다.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살해당하신 분, 그렇게 다정하고 신뢰하던 아버지 하느님도 구하지 못하셨던 분에게 그런 것들을 청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자식들을 사랑하는 거보다 하느님이 그들을 더 사랑하신다. 그런데도 매일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청하고 기도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건강하고 안녕한 게 아니라, 하느님과 나 사이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 그것은 절대적인 수직관계이다. 하느님은 말씀하시고 나는 듣고, 그분은 부자고 나는 가난하고, 그분은 명령하시고 나는 수행하는 관계, 그리고 나를 위해서 대신 목숨을 내어놓으시는 그런 관계이다. 그런 관계 안에서, 그런 믿음 안에서 완전한 사랑을 발견한다. 구세주 주님께 안녕과 번영만 바란다면 수많은 순교자는 기억에서 지워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의 큰 능력을 보여주신 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완전한 사람이 될 거라는 증언이다. 하느님의 능력 과시였다면 부활하신 주님은 빌라도와 헤로데 그리고 사형을 모의한 이들 앞에도 나타나셔야 했다. 기도와 청원을 통해서 그분이 하느님이시니 그분이 내게 아무것도 안 해주셔도 마땅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언제 어디서나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 오늘도 어제처럼 이것저것 청하고, 미사 때마다 미사를 봉헌해 준 이들의 청원도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합니다. 저보다 주님이 그들을 더 사랑하시는 줄 알면서도 기도합니다. 포도나무 가지처럼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요한 15,5) 깨달아 갑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이 아니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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