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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6월 11일(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위로와 격려

작성자macario|작성시간26.06.11|조회수178 목록 댓글 0

6월 11일(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위로와 격려

바르나바 사도는 열두 사도는 아니었지만 자기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발 앞에 바칠 정도로 교회에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초대 교회 교우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여서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사도 4,32-37) 그들은 하늘나라가 이 땅 위로 내려왔음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과 그분이 들어가신 마을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 앓는 이들이 낫고, 저주 그 자체인 나병 환자들도 깨끗해지고, 자해할 정도로 자신을 학대하게 만드는 마귀들도 쫓겨났다. 그런 곳, 모두가 회복되고 온전해지는 시간이 하늘나라다. 예수님은 바로 그 일들을 하라고 사도들을 파견하셨다. 게다가 그런 일에 대해 아무런 보수도 받지 말라고 하셨다.(마태 10,7-8) 그게 그들이 거저 받은 능력이라는 건 그들이 그 일들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파견하시는 주님이 하신다는 뜻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챙기고 나머지 더 필요한 것들은 선교 현장에서 주님이 마련해주신다.

 

여행 가방은 가벼울수록 좋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거기에도 있을 건 다 있다. 여기서 주님이 돌봐주셨던 거처럼 거기서도 그러신다. 거기에도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다. 거기서도 그들과 한마음으로 공동체를 이룬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친절과 사랑처럼 만국 공통어가 됐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10,7)는 건 예수님과 함께, 그분으로 인해서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된 하늘나라를 우리가 발견해 간다는 뜻이다. 하늘나라는 여기 혹은 저기가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 마음 안에 있고, 그들의 섬김과 사랑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비판과 비난은 쉽다. 이해 위로 격려 인내는 어렵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 격려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다.(사도 4,36) 자기 밭을 팔아 공동체에 내놓은 걸 보면 그가 얼마나 공동체에 헌신적인 사람이었는지, 왜 위로와 격려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는지 알만하다. 바오로 사도는 회개했지만 그리스도인들 박해자라고 낙인찍혀 공동체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는데 바르나바의 소개와 중재로 공동체가 그를 받아들이게 됐다.(사도 9,26-27) 바오로와 함께 선교 여행하던 마르코가 중간에 포기했다는 이유로 그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지만, 바르나바는 그를 끝까지 신뢰해서 후에 그는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가 됐고, 바오로도 자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를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2티모 4,11)이라고 인정하게 됐다. 바르나바 요셉이 위로와 격려의 아들이 된 건 그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사도 11,24) 때문이다. 예수님 계신 곳에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된 거처럼 그분을 섬기는 이들이 있는 곳도 그렇게 된다.

 

예수님, 주님은 언제나 위로하시고 다시 시작하게 격려하십니다. 질책, 비판, 비난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잘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 만일 그게 어렵다면 있는 힘을 다해 인내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이 바라시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침묵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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