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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6월 13일(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예수 성심께 가는 길

작성자macario|작성시간26.06.13|조회수180 목록 댓글 0

6월 13일(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예수 성심께 가는 길

어제 예수 성심에 이어 오늘은 성모 성심을 기념한다. 성령 강림 대축일 바로 다음 날에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기념했다. 전례력에는 매달 성모님 관련 축일이나 기념일이 있다. 우리 성모님 공경심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보면 우리가 마치 성모님을 섬긴다고 오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건 예수님이 그분과 모녀, 모자 관계 맺어주셨기 때문이고, 성모님 신자라는 오해를 살 정도로 자주 그분을 기억하는 건 그분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제자인 우리는 성모님을 모범 삼아 주님을 따른다.

 

물이 너무 깨끗하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며 성모 성심이 너무 깨끗하고 그분의 삶이 너무 완전해서 우리를 주눅 들게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분을 도저히 닮거나 따를 수 없으니 말이다. 실제로도 정신병적으로 성모님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건 사람들이 성모님을 지나치게 공경해서 그분을 신격화했기 때문일 거다. 복음서를 보면 성모님은 우리네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혼잡한 곳에서 열두 살 아들도 잃어버렸고, 그런 아들을 찾은 후에는 그를 꾸짖기도 했다.(루카 2,48) 청년 아들이 미친 줄 알고 친척들과 함께 그분을 붙들러 나선 적도 있다.(루카 3,21.31-32)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의 신비를 알지 못했다.

 

그분이 성모님, 거룩하신 어머니이신 건 그런 신비를 마음에 간직하고 사셨기 때문일 거다.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았을 때 주변 목동들이 어떻게 그걸 알고 찾아왔었고, 사흘 만에 되찾은 소년 예수님은 그분에게 자신은 당연히 아버지 집에 있는 거 아니냐고, 왜 그렇게 마음고생했냐고 반문했다. 성모님은 그런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다. 이렇게 복음서에 기록된 거 말고도 그런 종류의 일들은 많았을 거다. 성모님 무지의 고통은 예수님 십자가 아래에서 극에 다다른다. 그분은 실신하셨을 거다. 그리고 사흘 후에, 그 모든 일, 가브리엘 천사를 만난 그날부터 그때까지 당신 마음에 간직해두었던 모든 일들, 그 신비들이 모두 현실이 되고 사실로 밝혀진다. 그 기쁨과 환희를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분의 깨달음은 개인적인 기쁨으로 끝나지 않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예수님 제자들에 이어 지금 우리까지 아드님을 따르는 이들을 보호하고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힘이 됐다. 지극한 무지의 고통을 겪으며 하느님을 무한히 신뢰하는 법을 깨달으신 성모님은 복잡하고 유혹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아 돌보신다. 우리가 성모님을 좋아하는 마음 안에는 예수님의 배려와 사랑이 들어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예수님 곁에는 늘, 아니 당연히 성모님이 계신다. 우리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엄마로 성모님을 부르고 성모님은 지체 없이 우리를 아드님께로 데려다주신다. 티 없이 깨끗한 성모님 마음이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론적으로만 알지만, 아들 아들 하는 엄마들은 성모님 마음을 바로 알 것 같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예수님, 하느님은 질투하는 하느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당신 아닌 다른 거에 마음을 주는 걸 참지 못하실 겁니다. 엄마가 저희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아시고 주님 어머니를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저희는 그분을 통해서 주님께 갑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이시니 이 이름으로 성모님을 부르는 이들은 모두 주님을 만난다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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