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연중 제11주일) 사람을 통한 복음 전파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의 선교사다. 다정한 아빠이고, 당신이 청하는 모든 걸 들어주시는 참 좋으신 하느님을 세상에 전하셨다. 제자들도 당신을 따라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건 세속 군주들처럼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더 멀리 지금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그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복음은 사람 예수님을 통해서 전해졌다. 책이 아니라 사람 예수님을 만남으로 전해졌다. 책으로, 설교로 전해질 수 있는 거였다면 굳이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실 필요 없었을 거다. 일상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해 놓은 율법도 있고, 훌륭한 율법학자들로 많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은 온라인 모임을 통해서 모이고, 회의하고, 재택근무가 급격히 증가했다. 사제들도 온라인으로 설교하고 미사마저 TV를 통해 봐야 하는, 참례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미사를 보아야 했다. 교우들은 인터넷 안에서 미사를 보고, 좋은 설교를 골라 들었다. 복음은 어떤 이론이나 감동적인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복음은 예수님과 만남으로 전해진다. 좋은 설교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만, 사람 예수님을 만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예수님의 선교는 아버지 하느님께 받은 사명이기 이전에, 당신이 세상살이하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만나고 들은 것에 하느님의 응답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당신 애간장을 녹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당신 한 사람으로서는 그들을 다 어루만져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분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성경은 옛날얘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에게 하시는 하느님 말씀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드는 지금도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 참 좋으신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예수님은 여기도 저기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도 좋은 일을 해주기를 원하신다.
예수님 살아계실 때는 제자가 12명이었지만 지금은 수십억 명으로 불어났다. 인구 1/3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도 수확할 일꾼이 여전히 부족한 걸까? 신자들 대부분은 복음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세례받지 않았을 거다. 세례성사가 그런 거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줬다면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많지 않았을 거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파견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아니라면 교회는 거대한 친목 단체에 불과하고 하나도 거룩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2천 년은커녕 20년도 이어오지 못했을 거다. 선교는 짐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이다. 예수님의 삶이 곧 하느님 사랑이다.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고 그를 위해 뭔가 해주기를 원하고 또 실천했다면 복음을 전한 거다.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랐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고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었다면 우리는 정말로 예수님의 제자이자 친구다. 예수님은 오늘도 사람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신다.
예수님, 불쌍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워하거나 화만 내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아주 작은 거라고 무엇인가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작은 희생을 봉헌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이 이콘이라도 그들에게 전해주겠습니다. 그러면 성모님이 직접 그들을 도와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