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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6월 22일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작성자macario|작성시간26.06.22|조회수167 목록 댓글 0

6월 22일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오래전에 어느 허름한 이발소에 들어갔다. 내부는 초등학교 시절에 보던 그런 곳이었다. 이발사 아저씨가 손을 살짝 떠는 거 같아 불안했는데, 맨 끝에 그 이발 가위로 코털을 깎을 때는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서웠다. 그 이후 다시 거기에 가지 않았다. 두꺼운 안경을 쓴 이가 핀셋을 들고 내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이 바로 그 이발사 같은 사람일 거다.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마태 7,4) 들보처럼 큰 나무가 눈에 있을 수는 없다. 과장법이다. 남을 심판,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강조하신 걸 보면 말뿐 아니라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뜻일 거다. 험담은 물론이고 그가 없는 자리에서 뒷얘기도 하지 말고 마음으로 그 사람을 판단이나 평가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사람이 왜 또는 어떤 의도에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듣기 전까지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언행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때론 그의 언행이 나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를 나쁘다고 평가 심판하는 거다, 자신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그래도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내가 그렇게 오해되고 잘못 평가되고 싶지 않은 거처럼 그 사람도 그럴 거다. 그리고 그런 판단과 평가는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온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2)

 

예수님은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셨다. 그런 권한이 주어졌는데도 말이다. 들것에 실려 온 그 중풍 병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그를 보자마자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라고 사죄하셨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그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그들에게 죄가 없는 게 아니었다. 죄 없는 유일한 분, 그분에게는 심판과 단죄의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분은 그들을 단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우리가 뭐라고 이웃을 심판할 수 있겠나. 우리는 정말이지 함부로 남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 맛있는 음식을 보면 저절로 군침이 도는 거처럼 어떤 사람의 언행을 보면 심판과 판단이 손쓸 틈도 없이 일어납니다. 웬만큼 수련하지 않고서는 그걸 막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그 대신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겠습니다. 그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 그런 그의 언행이 저를 불쾌하고 불편하게 한다고 예쁘게 말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참겠습니다. 저를 해치려고 그러는 게 아닐 테니 말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거처럼 그의 말과 행동 이면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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