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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 순례단

평화의길순례단 2026년 6월 정기순례보고(영광 순교자 기념성당, 개갑장터 순교성지)

작성자양미향(글라라/일산)|작성시간26.06.16|조회수97 목록 댓글 4

이번 달도 전라지역 일정인지라 아침 일찍 6월 성지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초여름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만개한 밤나무 꽃들이 희끗희끗 산을 수놓고, 줄지어 모내기를 끝낸 물 가득한 논 바닥엔 여름 하늘이 내려앉아 구름이 노닐고 있네요.

 

전남 영광은 특이하게도 한국 4대 종교의 성지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법성포는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로,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첫 발을 디딘 곳을 기념한 마라난타사가 있고, 백수읍에는 박중빈이 오랜 구도 끝에 깨달음을 얻어 원불교를 창시해 이를 기념한 원불교영산성지가 있으며, 염산면에는 한국전쟁 시 인민군에 대항해 신앙을 지키려다 순교하신 분들을 기리는 염산 교회와 야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영광읍에는 한국 천주교 순교지인 영광 순교자 기념성당이 위치해 있지요. 이렇듯 한 지역에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의 성지가 자리해 있는 것은, 이곳 영광이 매우 거룩한 땅이라는 증거가 아닐지요.

 

영광 순교자 기념성당

영광 지역에 가톨릭 복음이 전파된 것은 1791년 신해박해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전라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그의 동생 유관검 등의 모범과 애긍을 통해 전라도 각지의 가난한 이웃에게 주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인척간이던 이우집이 유관검의 권유로 입교하였고, 박해를 피해 고산 저구리로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했던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복음을 통해 윤종백이 입교하였습니다. 무장에 살던 최여겸 마티아의 열정적인 선교로 입교한 많은 사람 중에는 그의 조카 최일안과 양반 이화백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광 지역은 호남에서도 천주교가 비교적 일찍 퍼져, 교세는 전라도에서 세번째로 컸다고 합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화백과 복산리의 양반 오 씨가 영광에서 순교하였고, 이우집과 최일안은 전주에서 처형당했으며, 이종집과 남조이는 황해도의 문화와 운율로 각각 귀양을 갔습니다. 강완숙 골룸바의 딸 홍순희 루치아가 영광으로 귀양을 왔으며, 병인박해 때에는 영광의 뜸밭 출신인 김치명이 공주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고, 유문보 바오로가 나주에서 옥사 순교했습니다. 특히 이화백과 오 씨가 참수된 순교 터는 여러 차례의 고증과 학술대회를 통해 현 영광 성당 정문 앞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영광에 본당이 처음 설립된 것은 1937년입니다. 그러나 해방과 한국전쟁 와중에 본당이 폐쇄되어 산정동 본당과 함평 본당의 공소가 되기도 했는데, 60년대 들어 신자가 점차 늘자 1965년에 전쟁으로 전소된 성당 자리에 새 성당을 재건하고 본당으로 재승격됩니다. 이후 영광 지역 순교자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자 광주대교구는 2010년 9월에 영광 성당을 ‘영광순교자기념성당’으로 지정했고, 2014년 6월에 성당을 봉헌하고 본당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영광순교자기념관’을 마련했습니다. 이 기념관은 영광의 여섯 순교자(이화백, 복산리 오 씨, 이우집, 최일안, 김치명, 유문보)와 세 유배자(남조이, 홍순희, 이종집), 그리고 초기교회 신자 두 분(김득겸, 윤종백)을 기리고 있습니다.

성당 진입로에 아주 오래된 당산나무가 서 있습니다. 도로 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보존되어 있는 나무 아래에는 200년이 된 석장승 세 개가 서있는데요. 마을이나 성문 입구에 세워 잡귀나 액, 살 등의 부정한 기운을 막고, 이정표 역할을 하거나, 풍수지리적인 차원의 부족함을 메꿔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주술적 의미의 신상이라고 하네요. 거대한 고목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그 아래 세워진 석장승은 처음 보았어요. 당산나무가 있는 이 위치는 처형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 바깥 쪽이어서, 근처의 개천에 순교자를 벤 칼의 피를 씻고, 이 나무에 참수된 천주교인의 머리를 걸어두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순교자기념문’은 목에 씌우는 칼과 십자가를 조합한 형상으로, 네개의 칼모양 기둥은 영광 지역 순교자 4인(이화백, 복산리 오 씨, 김치명, 유문보)을 기리는 의미라고 합니다. 

성당의 외형은 전체적으로 물 위에 떠있는 배의 형상이며, 물고기 모양의 지붕과 노아의 방주를 재현한 성전이 있습니다. 잘 정돈된 뜰과 기품있는 성전이 매우 아름다운 이곳엔 특히 눈길을 끄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을 향해 절규하듯 기도하는 '순교자기도상'인데요. 순간순간이 생과 사의 시험대였을 순교자들의 애끓는 기도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염원하는듯 가슴을 울립니다.

영광순교자기념관 내에는 대형 스테인드글라스가 벽면을 가득 에워싸고 있는데요. 핏빛사랑으로 진복을 사신 영광의 순교자들의 신앙 여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거룩한 장면장면이 아름답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감탄을 자아냅니다. 또 처형 직전의 담담한 모습을 담은 '영광순교자상'과, 잘 볼 수 없는 성화인 윤지충 바오로와 103위 복자를 담은 '주중직심도'가 눈에 띄네요.(주중직심도는 고덕동 본당에서 제작·봉헌한 124위 순교 복자 성화로, ‘주(主)를 삶의 중심(中)에 두고 주님을 향한 곧은 마음(直心)’을 의미하는 성화입니다.)

진현정 카타리나 해설사님의 열심한 해설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에 왔으니 영광굴비를 맛보아야겠지요? 전라도 손맛이 잘 느껴지는 영광굴비 정식을 맛있게 먹고, 고창의 개갑장터 순교성지로 출발합니다.

 

개갑장터 순교성지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198번지 일대 개갑장터는 복자 최여겸 마티아가 참수된 무장의 형장 터입니다. ‘개개비 장터’라고도 불렸으며, 무장 고을과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조선 시대에는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입니다. 일제강점기엔 대규모 우시장으로 유명했으나, 한일합방 후 구한말 의병들의 물자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일제에 의해 폐쇄된 이후 지금은 장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전라도 무장 출신의 최여겸은 진산 땅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웠고,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를 간 뒤에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을 만나 더욱 독실한 신자가 됩니다. 이후 고향인 무장으로 돌아와 전라도 서남해안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며 28명을 전도합니다.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한산의 처가로 피신했으나 그곳에서 체포되어 무장현으로 압송됩니다. 주리를 틀어 팔 다리를 부러뜨리는 주뢰질을 비롯한 극심한 형벌을 당했지만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앙심은 결코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최여겸은 전주로 이송되어, 전주 감옥에서 한정흠과 김천애를 만나 고통 중에 서로 격려하며 신앙을 다집니다.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은 후, 고향으로 보내 처형하도록 하는 해읍정법 명령에 따라 고향으로 이송되어 이곳 개갑장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이로써 개갑장터는 고창 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가 되어, 전라도 선교의 거점이자 순교의 하한선이라는 종교사적 의미를 남겼습니다.

개갑장터는 2004년 6월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최여겸 마티아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여름의 들꽃들이 발길닿는 곳마다 만개해 이쁨을 발산하고, 성지의 이국적인 건물과 잘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2017년에 조성된 성지입니다. 깨끗하게 잘 조성된 성지 한가운데에는 고창의 문화유산인 고인돌 형태로 만들어진 야외 제대가 있는데요. 순교한 최여겸과 그가 입교시킨 28명의 순교자가 하늘나라에 오르고, 그들을 기쁘게 맞는 예수님과 천사들의 모습이 담긴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가 병풍처럼 설치되어 있습니다. 도란도란히 연결된 꽃길을 따라 걸으면 외양간 성당이 나오는데요.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의 거처를 상징하는 센스있는 작명이네요.

수줍게 서울사람임을 고백하신 이진욱 안토니오 신부께서 말씀하신 오늘 강론은, 어린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하룻동안이나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성전에서 찾으신 마리아 요셉 성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잘 따라가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하루일 수도, 한달일 수도, 수년일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놓친 예수님을 찾는 장소는 신앙의 출발점임을 잊지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성지순례 역시 예수님을 잘 찾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라고 하셨지요. 열심히 따라 다녀야겠어요.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담한 성전의 제대 한 켠에는 나무 형상의 십자가가 있는데, 처음 보는 형태의 십자가입니다. 또 공중부양으로 떠있는 전례대도 있습니다. 두 개의 나무조각이 교차해 있는 십자가는 구약과 신약의 의미로, 위의 나무는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선과 악의 벌을 의미하고, 아래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공중부양 전례대는 말씀이 세상에 내려오심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아주 독특합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현재는 하느님의 사랑에 맡기며,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라는 말씀으로 강론을 마무리하신 이진욱 안토니오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떡은 김광임 베로니카님께서 맛있는 송편을 준비해주셔서 잘먹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간 수개월동안 대기 줄을 서야 했던 우리 순례단의 아침떡 찬조가 이제는 바로 가능해졌다는 희소식(?)을 오늘 아침 총무님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알려주셨는데요. 찬조를 원하시는 단원 분들은 총무님께 연락하시면 되겠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일산성당 매듭팀이 정성으로 준비하신 매듭묵주는 개갑장터 성물방 신부님께 잘 전달해드렸습니다. 봉헌에 놀라시며 코믹한 표정을 지어주셨네요.^^

다음달 7월 순례는 다시 전라지역으로 갑니다. 오늘 방문한 영광 순교성지와 더불어 전남지역 3곳의 순교성지 중 나머지 두 군데인 나주와 곡성 순교성지입니다. 8월 순례는 전라지역 마지막 여정인 목포이며, 추자도 연계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여건상 추자도행이 실현될지는 미정이지만, 장거리 순례이니만큼 7~8월 순례 기회 놓치지 마시고, 주님을 잃지 않으려 주님 찾아 떠나는 우리의 여정을 씩씩하게 잘 따라가 보아요. 

요즘 여름 감기가 기승입니다. 건강 관리 잘하셔서 7월 순례에서도 반갑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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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은옥수산나 | 작성시간 26.06.16 항상 꼼꼼한 해설이 뒤돌아 서면 돌아서는 기억력을 되돌려 줍니다.
    다시 한번 복습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양미향(글라라/일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애정으로 순례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늘 감사드려요^^
  • 작성자황미숙세실리아(풍동) | 작성시간 26.06.18 영광 순교자들의 신앙여정을 상징한다는
    대형스텐드그라스가 눈에 사로잡히고
    순교자 기도상.주중지심도등의 영광 순교자 기념관......
    공중부양의 전례대.십자가.
    교훈이되는 신부님 강론 말씀등의
    개갑순교성지 .....
    걸음마다 마음으로 스미는 성지였네요
    이번 순례에 함께 하지 못하여
    발만 동동이었는데
    글라라님의 섬세하고 일목요연한 글과
    사진을 보니 함께한듯 위로가되고
    마음에 깊이 남게 됩니다~^^
    수고해주신 덕분에 행복하네요
    마니마니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양미향(글라라/일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언니 이뿐 미소, 행복한 눈길, 다음 순례때 꼭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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