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_톨스토이 옮긴이_오만규 판형_변형 신국판 쪽수_180쪽
정가 _ 8,500원 ISBN _ 89-90720-11-7 03150
톨스토이, 우주적 양심에서 이루어진 진보
톨스토이의 가르침은 근대 미증유의 폭력성에 환멸과 절망을 느낀 이상주의적 젊은 지식인들에게 살육과 증오가 없는 ‘대안적인 근대’의 길을 보여주었다. 톨스토이가 보여준 길이 꼭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 인도주의적 대안이 제시됐다는 것은 양심을 보유한 지성인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톨스토이의 저작 중 말년의 논문들은 국가과 교회, 애국주의의 허상과 ‘문명’의 허망한 꿈, 과학의 권위 등을 이론적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각자 군대나 학교, 교회 등의 살육, 노예화, 기만의 기구들을 등지고 살라는 실천적 요구를 담은 것이었다.
100년 전의 톨스토이 저작물들을 읽어보면 많은 성역들이 이미 깨져버린 오늘에조차 그 탈근대주의적 과감함에 놀라게 된다. 국가의 폭력을 ‘과도기의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100년 전의 ‘주류’ 사회주의자들보다도 톨스토이가 훨씬 더 근대의 이단아임을 알 수 있다.
너희가 '톨스토이'를 아느냐(한겨레21)_박노자
레오 톨스토이는 1877년에「안나 카레리나」를 출판한 것을 마지막으로 소설가로서 삶을 청산하고 구도적 삶을 살기 시작했다. 또한 신학적 주장을 가진 평신도로서 역사에서 자취가 사라진 지 오래인 기독교의 옛 이단적 신앙을 부활시켰다. 그는 초기 기독교의 복음적 진리가 교회에 의하여 왜곡․부패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간 이성에 기초하여 부활, 대속,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했다. 그는 십계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기초하여 성적 순결, 맹세의 불법성, 원수 사랑, 무저항, 그리스도인과 공직의 불일치성 등 5개 계명으로 축소시켰다.
그의 종교적 관점은 자연스럽게 그의 사회론과 평화주의로 연계되었다. 그의 종교사상은 정통 신앙인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정신을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실제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초대교회의 급진주의적 이상을 현대 서양 사람들의 안목에 맞도록 새롭게 부각시킨 사람으로서 톨스토이를 첫 번째로 꼽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톨스토이가 철저한 비폭력 평화주의의 사도로서 다시 태어난 것은 그가 50대에 심한 영적 혼란을 겪고 드디어 1879년에「참회록」의 완성과 함께 자신의 영적 위기를 극복한 이후부터이다. 그래서 「참회록」이전의 톨스토이는 철저한 비폭력적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침략 당하는 조국의 처지를 보고 분노하는 의로운 애국자였다. 그래서 그는 애국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참전했다. 따라서 그의 유명한 소설 「전쟁과 평화」도 결코 반전 소설이 아니다. 조국을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수호하는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은 톨스토이의 비폭력 평화주의와 사랑의 율법 사상이 가장 강렬하고 집중적으로 표현된 저서이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자신의 생애 끝에 마치 유서처럼 저술한 것으로서 저자의 생전에 러시아에서 출판되지 않았다.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되었고, 1945년에 Mary Koutouzow Tolstoy에 의해 영어로 출판되었다. 역자는 이 영어 번역본을 텍스트로 삼아 한글로 옮겼다.
한글판 번역본에는 「하사관에게 보내는 편지」와 「징집 명령을 받은 한 젊은이에게 주는 충고」가 부록으로 추가되었다. 역자의 선택에 의해 추가된 것이다. 톨스토이의 급진적인 군복무관의 일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하사관에게 보내는 편지」는 집필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에 가까운 내용이 특징적이다. 톨스토이가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에서 마르크스 혁명주의자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마르크스주의적인 인상을 주는 이 글은 그에 앞서 집필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징집 명령을 받은 한 젊은이에게 주는 충고」는 1899년에 어네스트 쉬람(Ernest Schramm)이라는 젊은 평화주의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어네스트 쉬람은 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헤시안(Hessian) 군대에 입대하라는 징집 명령을 받았는데, 입대를 거부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국적을 변경시키는 것으로서 그 딜레마에서 벗어났다.
이 작은 책이 결코 비폭력 평화주의적인 목소리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의 무정부적인 주장은 현대의 참여정부 시대에 틀림없이 맞지 않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예외 없이 실천해야 할 사랑의 율법이 비폭력 사랑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호소 자체는 시대를 넘어서 언제나 우리의 가슴에 호소하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역자 서문 中_오만규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은 톨스토이가 자신의 비폭력 평화주의와 사랑의 율법사상을 강렬하고 집중적으로 표현한 저서다. 러시아어로 집필되었던 이 책은 처음에 프랑스어로 출판되었다가 영어로 옮겨진 후, 다시 한글로 번역됐다.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 톨스토이는 “육체적 고통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빠져 있는 도덕적 부패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몸이지만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적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결과에 상관없이 행동 자체가 옳은 것인가”를 반문해야 하며,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을 반대하고 “비폭력의 정신에 기초하여 인간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정부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선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고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질서’라는 말은 사회의 특권적 소수자들에게 대다수 노동에 의해 좋아하는 만큼 이득을 얻도록 허용하는 정부의 유지를 뜻한다. 우리는 그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폭력의 억제는 그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생활을 계속 유지시켜 줄 자신들의 수단을 제거하는 일이기 때문이요, 또 그것이 오래된 불법을 고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 국가들의 무장화, 각국의 대표들끼리 나누는 온갖 위협들, 반복적으로 재발되는 인종 박해, 동포들 사이에 나타나는 적대감들(…), 이 모든 것들은 나쁜 외양을 갖춘 사례들이지만 나쁜 전조(前兆)들은 아니다. 이것은 사라지려 하는 것들의 마지막 발작이다. 사회적인 신체도 인체와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징병은 조직체가 병적이고 해로운 요소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격렬한 몸부림인 것이다.”
“군대에 입대하라는 부름을 받은 후에(…)상관의 명령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 오히려 상관의 그러한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죄라고 교육받습니다. 이처럼 군인들이 기만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상관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안 된다는 기만은 고립된 기만이 아니라 기만의 전체적인 체계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고립된 기만으로서는 사람들을 속이지 못합니다.”
이쯤되면, 정부나 그 밖의 공권력 없이 우리가 어떻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가, 정부나 공권력 없이는 아직까지 어떠한 사회도 존재가 불가능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문이 가능하리라. 허나 톨스토이에 따르면 기우일 뿐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정부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정부는 불가피하고도 영속적인 사회 형태로 보인다. 진실을 말한다면 이것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사람들로 하여금 장래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될 수 있을 것인가를 미리 알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미신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범죄자(기득권 세력)들의 욕망 속에서, 그리고 속박의 희생자들이 자신의 속박을 경감시키려는 욕망에서 발생한 것이다(…)이 미신은 과거에 수많은 유혈과 끔찍한 고통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가장 나쁜 것은 이 미신이 인간 양심의 발전 단계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사회적 개선을 막아왔고 지금도 막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개인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못하게 한 그 미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즉, “개인적인 개선만이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인 행복과 일반적인 복지를 획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과, 우리가 진정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는 유일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톨스토이의 주장에는 이상적인 부분이 있다. 예컨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그의 대답: “네가 다른 사람들이 내게 행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기를 중단하라” 같은 대목.
혹은 “야만국들이 우리 나라로 쳐들어와 우리의 재산과 우리의 아내와 우리의 딸들을 탈취해 가려 하는데 그들을 물리치지 않고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에 대한 그의 대답: “사람들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미신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그들은 온갖 잔인한 범죄들이 한 나라에 의해 다른 나라에게 자행된 것을 이해한다(…)그러므로 당분간 우리가 스스로 미래사회의 형태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믿게 하는 가공할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같은 대목은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인다.
하지만 폭력에 대항하여 양심을 지킨 대가로 차가운 감옥 안에서 젊음을 바친, 바치고 있는 이들과 국제 질서에 의해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하기로 한 이라크 파병이 초읽기에 들어간 오늘, 톨스토이의 이러한 사상은 충분히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도덕적인 행위들은 그 행위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는 어떤 예측과도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행위들과 구별됩니다. 도적들에게 붙잡혀 약탈, 살인, 강간 등의 일에 동참하는 명령을 받았을 때 도덕적인 사람은 그가 처한 상황이 제아무리 위험스럽다고 해도 그 명령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군복무도 동일한 것이 아닐까요? 군인은 상관으로부터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그가 죽여야 할 모든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동의하도록 요구받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