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신춘문예 동시(童詩) 당선작 분석
윤 삼 현
1. 들어가는 말
새 해 벽두 신춘문예 작품에 주목하는 까닭은 대체로 새로운 얼굴의 신선한 작품들과 만나고 싶은 기대감에서이다. 새로 등단할 신인의 패기와 풋픗한 언어의 힘참을 호기심을 갖고 대면하려는 심리가 다분히 깔려 있다. 신인이 새로운 감각을 지니지 못하고 기성문인의 기존 작풍에 안주해 있거나 앞선 세대의 스타일과 별로 다를 게 없다면 신인으로서의 의미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동시는 동심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의 특별한 감흥을 내면에 발아시켜 탄생시킨 동심문학이다. 동심적 상상력에 의해 비유하고 상징하며 적절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문학인 것이다. 발상, 소재, 주제, 문체, 형식, 이미지, 비유…등. 모든 요소에서 기성스타일을 박차고 새롭게 무장하여 독특한 자기 개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그렇게 공력을 들였는가, 아닌가에 따라 신춘문예 당선작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2. 내용 분석
신춘문예 아동문학 부문의 미덕은 동심의 이상성과 건강성에서 오는 희망적 어조에 있다. 성인 당선작품에 흔히 나타나는 어두운 음영이나 비관적 삶의 태도와는 달리 현실의 중압감 속에서도 꿈과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 긍정적 감동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이다. 새 해 첫아침, 생명의 환희로 꿈틀대는 출발점에서 채 마르지 않은 잉크 냄새에 실려 전해지는 동시언어의 싱싱함과 파닥거리는 재미와 동일한 경험의 코드가 주는 공감대의 울림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다. 또 다른 미덕 하나는 성인물에서 찾기 힘든 동심 특유의 순수성이다. 순수성은 천진함에서 오는 재미, 단순명쾌성의 깔끔한 멋, 원시성의 투명함을 동반한다. 바로 그런 기대가치를 작품 전면에 깔아두고 의미있게 시상을 전개해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 내용 분석의 핵심일 것이다.
'나뭇잎 한 장'(유지은, 부산일보)은 식물적 상상력에 의해 친자연적 상징물인 '나뭇잎'을 소재로 취하여 동심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나뭇잎에서 물이 지난 길, 햇살이 지난 길, 이슬이 내려온 길, 애벌레가 지난 길 등을 끌어낸 점과 결국 따뜻한 마음의 길을 발견하는 투시적 안목, 사물 인식 능력이 모두 동심의 본질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겠다. '자전거 타기'(이상윤, 매일신문)는 그동안 동화 쪽에서 즐겨 다룰 만큼 산문적 요소가 짙은 소재다. 그럼에도 생활동시로서 자전거를 취하여 새로운 맛이 있다.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보다는 자전거 타기의 어려움에 포커스를 맞춰 깨달음의 의미화를 전략으로 삼은 점이 동시의 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늘비'(최은미, 강원일보)는 전통 서정동시의 경향을 보인다. 거기에 얼룩말이라는 동물적 상상력을 접목하여 동화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만 '그늘비'의 의미 해석이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불거진다. 밝음과 어둠이 기다란 그늘비가 된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에서 온 것으로 자칫 의미해석에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그늘비'와 '얼룩말'의 결합이 어린 동심독자에게 설득력을 얻느냐 못하느냐가 이 시의 관건이다. 새로운 상상력이라 하여 엉뚱한 비유나 난해한 결합이 허용될 순 없다. 60년대 난해시의 대두로 한바탕 홍역을 치룬 우리로서는 이런 면은 더욱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를 느낀다. '붓꽃'(최명란, 조선일보)은 소나기 장면 속의 붓꽃 풍경을 스케치하듯 그려낸 시이다. 붓 가는 대로 색칠해나간 다소 서툰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자칫 평범한 시에 그칠 수 있는 작품인데도 마지막 연 '멀리/골목 어귀에서/엄마가 우산을 들고/붓꽃처럼 웃고 서 있었다.'이 장면이 앞의 내용을 품어 안아주는 효과를 자아냄으로써 전체를 살아나게 했다. 과연 소나기 빗속에서 붓꽃이 되어 서 있었다는 대목이 수긍이 가는가 하는 점은 이 시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작위적이지 않는가 하는 입장이 있다면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우리 할머니'(김애란. 한국일보) 는 할머니 입과 오므린 호박꽃을 결합하여 늙으신 할머니와 손주와의 혈육애를 보여 준다. 일상에서 대하는 할머니를 진지함과 따뜻함의 두 개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손주의 마음을 읽게 하는 작품으로 독자의 반응을 얻는데 별 무리가 없다. '할머니 말씀'(김성화,대전일보)은 올 해 여타 신춘 당선작과 분명히 색다른 소재의 차별성에서 뚜렷한 반응을 얻을 만하다. 최근 중국 동북공정에 따라 고구려 역사와 만주라는 옛 고토(故土)를 중국이 자기네 것으로 왜곡 편입시키고 있어 우리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런 초미의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올곧은 역사의식을 일깨울 문학적 역할이 절실한 때에 이를 소재화 하여 주목을 끌게 되었다. 고구려를 소재로 한 동시는 역사의식의 동시가 붐을 이룬 7,80년대 벌써 여러 편이 발표 된 바 있다. 참신한 소재는 아니지만 시의 적절할 때 발표되어 독자의 반응을 뜨겁게 하는 잇점을 안을 수 있었다.
올 해 당선 동시는 지적, 철학적 동시가 퇴조하고 서정동시, 생활동시가 주류를 이룬 점이 또 다른 특징으로 나타났다.
3. 형식 분석
아름답고 예쁜 말의 단순조합이 동시라고 생각되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 지났다. 동시는 시의 본질을 확보하여 거기에 동심 사유와 그에 걸맞는 시적 언어 구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동시로서 제 구실과 이름값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춘 당선 동시들은 대체로 동심의 단순명쾌성을 살린 응결미와 깔끔함의 언어 구조를 보이고 있다. 우선 호흡량에서 보면 짧게는 1연부터 시작하여 3연, 5연, 그리고 길게는 6연을 벗어나지 않는 적정 분량을 유지하고 있다.
'나뭇잎 한 장에는'(유지은, 부산일보)은 전통적 동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종결어미 '∼네'를 활용하였다. 운율감을 살리면서 친밀감과 차분한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또/로/롱'의 형태 이미지는 이슬 방울이 흘러 내리는 장면 묘사를 생생히 하는데 기능한다. '∼ 지나간 길이 보이네 '같은 표현은 그동안 몇몇 기존 작품에서 즐겨 사용한 것이기에 다소 참신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와 비숫한 작품이 '그늘비'이다. '∼요'의 종결 어미를 활용하여 해그림자를 응시하는 화자의 분위기를 드러내 준다.
구어체로 쓰인 '우리 할머니'(김애란, 한국일보)는 '할머니 입은 꽃잎 오므린 호박꽃 같아요'에서 드러나듯 종결 어미 '∼요'는 동심의 귀염성을 살리는 가운데 일상적 생활 속에서의 시적 장면을 매우 자연스럽게 들려주려는 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붓꽃'(최명란, 조선일보)은 평서형 종결 어미 '∼다'를 사용하여 매우 진지하고 단호함으로서의 화자의 심리를 느끼게 하는 문체이다. 소나기 오는 날, 빗줄기를 꿋꿋이 견디는 붓꽃, 붓꽃이 되어 빗속에 서 있는 화자, 그들의 일체감 있는 호흡이 하나로 맞물려 흐트러짐 없이 드러나게 한다. 호방한 기상과 거침없는 활력으로 웅혼한 삶의 무대를 개척한 옛고구려 할아버지를 형상화한 '할머니 말씀'(김성화,대전일보)은 긍지 높은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역할에 맞게 '∼단다'의 구어체 어미로써 이야기의 맛을 살리고 있다.
동시는 명확한 이해와 감각적 반응, 재미성을 전제로 창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명징한 이미지, 확실한 비유를 확보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나뭇잎을 길로 은유화한 '나뭇잎 한 장에는'은 나뭇잎의 지적 사유와 함께 비동일성에서 오는 결합력을 내면에서 성취하고 있다. 반면에 '자전거 타기'는 '나쁜 짓 하는 아이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같은 단순 직유 수준에서 비유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동시의 품격을 매우 소박하게 끌고 간다. 얼룩말의 무늬에 나타난 명암을 맑음과 어둠으로 결합한 '그늘비'는 일차적 상상력에서 이차적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상상력의 이동 과정을 어린 독자가 쉽게 동참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판단이 요구된다. '우리 할머니'는 '윙윙윙' 벌의 날갯짓 소리의 의성어와 불분명한 할머니 발음을 연결하여 나이 든 할머니를 표현한다. 단순 비유지만 비교적 참신한 것으로서 생생한 전달을 가능케 한다. '할머니 말씀'은 '말 타고 바람처럼 달려가는 할아버지', 멧돼지 털빛 같은 안개', '노루 등처럼 가파른 산' 등에서 보듯 단순직유와 감각적 체험 이미지로 대상을 표현한다. 나이 든 할머니의 자질과 언어의 자질이 빗나가지 않고 있음을 말해 준다.
문학은 늘 새로워져야 하고 동시의 수준도 발전해 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 직유보다는 확대 직유나 은유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나가는 말
아동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보다 뛰어난 작품을 생산하게 함에 있어 신춘문예는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고조되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신문사에서 아동문학 공모제를 두어야 하겠고, 통합 공모제로 운영하는 신문사는 향후 동시와 동화부문을 서로 독립시켜야 할 것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으로서 동시의 요건을 잘 갖춘 작품이 뽑힐 때 신뢰감과 권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서툴더라도 패기와 참신성을 갖추고 동심 특유의 놀라운 발견, 혹은 생활 속의 잔잔한 감동을 담아낸 작품들이 당선작으로 속속 선을 보였으면 싶다. 그리하여 사랑 받는 문학으로서의 자질과 정체성을 세워 나갔으면 한다. 아울러 동시 비평의 질적 향상도 뒷받침되어 균형감각과 질 높은 안목의 심사가 이루어지는 토대를 꾸준히 쌓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