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석정 시인과 부안 [기자 : 서용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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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두드리는 세찬 빗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니 시계는 아직 이른 새벽3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늘은 신석정 시인과 매창을 찾아 전라도 부안까지 먼 길을 여행하는 날인데도 새벽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빗소리가 정겹게만 느껴지니 나도 이젠 웬만한 궂은 날씨들의 굴곡쯤이야 순탄히 받아들이고 고르려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채석강이 있는 변산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부안은 실학자 반계 유형원 선생이 여생을 보내며 '반계수록' 을 저술한 곳으로 신석정 시인(1907~1974)과 조선의 정조 깊은 기생이며 여류시인이었던 이매창의 고향이기도 하다.
신석정 시인은 고향 부안에 초가를 직접지어 '청구언' 이라 이름하고 좋아하는 들꽃과 온갖 나무들로 담장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별빛 같은 시어들을 창조하니 단어 그대로 주경야독으로 수학하신 분이다. 석정이 지게를 지고 오갔을 대숲사이 조그만 길,... 나지막한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청구언' 이란 팻말이 선선한 청색바람을 금방이라도 몰고 올 것만 같이 청아하게 느껴진다. 가난하여 초등학교가 최종 학력일 수밖에 없었던 석정의 고뇌가 '청구언' 앞마당에 들풀같이 떠오른다. '촛불', '슬픈목가' 등의 시집이 대부분 이집에서 씌어졌다니 가까운 듯 멀리 보이는 갈대 숲길을 홀로 거닐며 얼마나 많은 고독과 번민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을까? 칠흙같은 밤이 되면 별빛을 노래하며 꿈을 잃지 않고 또다시 정진하려는 고뇌의 모습이 사진 속 파이프 연기와 함께 고스란히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또한 청구원은 정지용, 박용철, 장만영, 김기림, 이하운, 서정주 같은 문인들과 대가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하니 이것만으로도 가히 시인의 고매한 품성이 보이는 듯하다.
시인은 삶이 고단하고 외로워질 때마다 한없는 사랑을 주시던 어렸을 적 어머님의 아늑한 품속을 찾아가곤 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 의 영향을 받아 씌어졌다는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부치는 애절한 그리움의 편지이며 평화로운 삶을 갈구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 새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세요. 나와 같은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 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세요 그때 우리는 어린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 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 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시인의 현실탈피,이상의 세계를 향한 염원은 시인이 즐겨 찾은 날개, 구름, 별밭, 먼나라, 산새 등의 시어들에서 찾을 수가 있다. 도연명, 타고르, 한용운의 영향을 받은 신석정 시인은 서정을 많이 노래한 목가 시인이었고 그의 시어처럼 아름답게 살기를 원했다. 시인의 희망 '나의 노래' 를 들어본다. 나의 노래는 라일락꽃과 그 꽃잎이 사운대는 바람 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나의 타는 눈망울과 그 뜨거운 가슴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저어 빨간 장미의 산호 빛 웃음 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항상 별같이 살고파하는 네 마음속에 있다. - 신석정, 나의노래 - 라일락꽃과 그 꽃잎의 사운대는 바람 속에서 찬란한 아침햇살을 뜨겁게 노래했던 신석정! 대한민국 예술문학상을 받기로 했던 신석정 시인은 1974년 그 하루 무덥던 여름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다. 마지막 병상에서의������낙화소리������를 남기고... 낙화소리 백목련 햇빛에 묻혀 눈이 부시어 못 보겠다. 희다 지친 목련꽃에 비낀 4월 하늘이 더 푸르다. 이맘때면 친구 불러 잔을 기울이던 꽃철인데 문병 왔다 돌아서는 친구 뒷모습 볼 때마다 가슴에 무더기로 떨어지는 백목련 낙화소리... 매창이 잠들어 있는 매창 공원에 다다를 때는 또다시 매창의 한을 쏟듯 한바탕의 소나기가 내린다. 500수의 시를 지어 50여수의 시만 전해 온다는 매창의 시중, 이하우를 들어본다. 이화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 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 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1573~1610)은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 3대 여류 시인 중의 한명이다. 37세 꽃다운 나이에 떠난 매창은 당대의 거물들과 교류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28살 연상인 유희경뿐이었다고 한다. 유희경을 향한 매창의 사랑시를 들어본다. 임생각 애끓는 정 말로는 할 길이 없어 밤새워 머리칼이 반 남아 세었고나 생각은 정 그대로 알고프거든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 손 보소 매창을 위해 살 유희경의 시를 들어본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제 - 유희경 -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길 없는 시대였기에 더욱더 애절한 것이었을까? 유희경과 매창간의 주고받았던 사랑시를 읽으며 무게로 잴수없는 사랑이라는 크고 애절한 단어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언론사 방방곡곡 서용선 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