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와 대구의 유래
▶ 慶尙道의 유래
경상도는 지금의 경상남북도를 합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경상'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 이 지방의 대표적 고을인 慶州와 尙州 두 고을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 지명이다.
995년(고려 성종 14년) 9월 전국을 처음으로 10도로 나눌 때 상주에 딸린 고을을 영남도라고 하였다.
경상좌도(慶尙左道)와 경상우도(慶尙右道)는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부른 행정구역 이름이다.
1407년(태종 7년) 9월 군사 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낙동강 동쪽을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 하였다. 경상남도가 지금의 행정 구역 이름으로 등장하여 확정된 것은 조선조
말엽 1896년(고종 33년, 건양원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지방제도 관제 등을 개정하여 종전 23부를 13도로 고쳐
둘 때 경상도를 남ㆍ북 2개 도로 나누면서부터 경상남북도의 또 다른 이름을 영남지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 경상남도 : 조선 고종 33년(1896년-갑오개혁 3차)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도(경상감영-대구)가 남북으로 분리되면서 진주는 경상남도에 속해지고 도청소재지가 되어 관찰사가 진주에 상주하였으며 경남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1925년
4월 1일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 되었다, 부산이 다시 광역시가 되면서 창원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신라. 유교. 가야문화의 본거지로 남아 있는 한국정신의 窓이 경북지방이다.
♣ 嶺南지방
고려 성종 때 전국을 10개 도로 나누면서 상주 일대를 ‘영남도’라 했지만, 현재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아우르는
‘영남(嶺南)’이란 지명의 ‘영남’이란 鳥嶺(새재)과 竹嶺의 남쪽을 가리킨다고 했다.
즉 고개(재)인 한자 嶺(재령)의 남쪽지역을 영남이라 해서 嶺南大 등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덤으로 湖南’은 ‘호수의 남쪽’이란 뜻. 이때 호수가 호강(湖江)으로 호강은 현재 금강의 옛지명이였다.
충청도를 옛날에는 호서(湖西)지방으로 부르기도 했다.
▶ 大邱의 유래
대구 지명의 유래 대구의 어원은 좀 복잡한데서 오게 되었다. 대구의 옛이름이 달구벌이라는 것은 대구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달구벌 전에도 다른이름이 있었고 그후에 다른 이름이 변경되어 지금의 '대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그 순서를 보면은 多伐(다벌), 達伐(달벌), 達弗城(달불성), 達句伐(달구벌), 達句火(달구화). 大丘(대구) 순으로 된다고 할수 있다.
달구란 순수 우리말로 닭(달구를 하나의 글자로 줄임)의 옛이름으로 아직도 시골에는 병아리를 달구새끼라 하는 이유다.
달구에 伐은 벌판 즉 느른 평야를 뜻하는 것으로 달구벌이란, 대구란 도시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분지이기에 위에서 보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터라해서 달구벌이라고 했다. 이 달구벌이란 순수 우리말을 한자음으로 假借하여 達句伐이 되어 達城(달성공원/달성군)이란 지명이 생겨난 연유이다. 지금도 대구의 중심 도로를 달구벌 대로라 하고, 달구벌 만평 등 이 남아있다.
大丘(대구)라는 명칭이 처음 역사에 나타나기는 신라 757年(경덕왕 16年) 주, 군, 현 의 명칭을 중국식 이름으로 고친 때부터이다. 대구를 한자로 풀어쓰면 큰 언덕이란뜻인데, 닭이 뛰어놀 만큼 큰 벌판을 한자로 의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경덕왕대 이래 변함없이 '대구(大丘)'로 사용되어 오던 지명은 조선 영조때에 이르러 한자 표기가 대구(大邱)로 바뀌었다.
당시 이양채라는 대구의 유생이 대구(大丘)의 구(丘)가 공자의 이름인(丘)와 같아 향교 대성전에서 축문을 읽을 때 공자(孔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게 되어 좋지 않다고 이를 바꾸자고 상소하였다.당시에는 영조로부터 윤허를 받지 못하였지만,이후에 구(丘)와 구(邱)자가 섞여 사용되다가 정조이후 1850년대경부터 점차 대구(大邱)라는 지명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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