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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있었다 | The Solemnity of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

작성자Stephen Kim|작성시간26.06.06|조회수57 목록 댓글 0

잊지 말아라, 나는 여기 있었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잊으며 삽니다. 어제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지난주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바쁘게 살다 보면 중요한 것들이 소리 없이 흐릿해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무감각해졌나 싶은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 하나를 명합니다.

기억하여라.” 광야 사십 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선포되는 시점은 백성이 약속의 땅 문턱에 막

다다른 때입니다. 가장 풍요로워지려는 그 순간에, 모세는 가장 궁핍했던 시절을 잊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왜입니까? 풍요는 망각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배가 부르고, 편안해지면 누가 곁에 있었는지를 잊습니다. 모세가 두려워한 것은 가나안의 적군이 아니었습니다. 백성의 마음 안에서 조용히 자라날 안주와 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광야의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삶에도 광야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울었던 밤들,

작은 위로 하나에 무너지지 않았던 시간들. 그 안에서 분명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미사에서 우리가 받아 모시는 성체와 성혈은 바로 그 기억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처음 이 말씀을 들은 이들은 당혹스러워했습니다. 너무 직접적이고,

너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선포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성체는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현재화하고’, 그 기억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 리는 너를 위해 내어준 몸이라는 그 사실을 다시 몸 안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쪼개지셨다는 것, 그 사랑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성체를 받아 모심은 과거의 사건을 현재로 불러오는 살아있는 기억, 곧 구원 사건의 현재화입니다.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도 하나라고 말이지요.

성체는 나 혼자만의 기억이 아닙니다. 같은 빵을 나누어 먹는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입니다.

이들은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몸을 나눕니다. 사랑의 공동체는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은 특히 기억의 날입니다.

우리의 광야를 기억하고, 시련 때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를 위해 빵이 되신 그분을 기억하며, 그분 사랑이 오늘도 변함없이 함께하고 있음을 되새겨봅시다.

 

글 : 鄭淳澤 Peter 大主敎 |서울大敎區長

빵의 레시피 - 하삼두 Stephen 作

방구석이 좋을 리 있나

 

지난달 말, 한 북 토크에 다녀왔습니다. 고립과 은둔의 시간을 견뎌낸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직접 들려주는

자리였습니다. 짧게는 7, 길게는 13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던 청년들은 왜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나올 용기를 얻게 되었는지를 담담히 털어놓았습니다.

 

청년들이 은둔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청년은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지키려다 결국 자신마저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극단적 선택까지 실패한 후엔, 아예 세상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랐던 또 다른 청년은 어느 순간 자신이

정말 무가치한 존재라고 믿게 되었고, 결국 방 안으로 숨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반복적으로 부정당하고,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살아온 이들에게 방 안은 마지막 피난처였지만 동시에 감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방구석이란 감옥에서 나올 용기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독방 체험을 통해 성찰 기회를 제공

하는 행복공장이었습니다. 청년들은 그 단체의 고립 은둔 청년 회복캠프가 자신들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도움이 된 프로그램은 비난과 방어라는 역할극이었답니다. 이 역할극의 목적은 참가자들이 가해자가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그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고, 가해자 역을 맡은 이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대신 들으며

맺힌 응어리를 풀고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이 과정에서 상처를 준 사람 역시 또

다른 절망 속에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순간 자신을 오래 붙들고 있던 증오와 분노의 사슬이 조금은

느슨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30대 한 청년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는 역할극을 통해 가정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던 시기의 아버지가 현재 자신과 같은 30대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IMF 때 사업에 실패해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떠안은 채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렸을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동안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던 아버지가 삶의 벼랑에 몰린 한 인간으로 다가왔고,

처음으로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스도께서 네가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거기에서, 어쩌면 그곳에서만 너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묵상한 토마스 할리크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히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려면 우리 역시 이 청년처럼 이웃의 상처에 연민을 느끼고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글 : 권태선 Mary | 放送文化振興會 理事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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