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버음악단 창단 기
2010 - 2014
사람은 사실 누구나 음악적 리듬 감각을 지니고 있다. 비록 나이가 들어 병들고 쇠약한 육신 일지라도 알고 보면 음악적 감각이 자신도 모르게 내재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어르신들에게 좋아 하는 멜로디를 들려 드리고 또 간단한 리듬 악기로 연주하게 하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 된다. 요양원이나 양로원의 어르신들은 항상 공연을 관람하는 것에 익숙하여 있다. 그러나 실버음악 교실에서는 관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공연자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가족이나 그 외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며 자기 솜씨를 뽐낼 수 있으니 그 즐거움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나는 오랜 기간 연주생활을 한 경험을 살려 퇴직한 후에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왔다. 옳지! 퇴직을 하면 실의에 빠진 양로원 어르신들에게 합주단을 조직하여 신나는 음악 인생을 만들어 드려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나 좀처럼 더 구체적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6년이란 세월을 허비하고 말았다. 합주방법을 생각하는데도 3년이 걸리고 말았다. 이러다가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서 작정하고 이를 기어코 실천에 옮겨보기로 다짐하였다..
어느 날 드디어 실천할 행동개시를 하였다. 큰북과 작은북, 그리고 탬버린, 캐스터네츠, 마라카스 등 리듬악기를 구입 한 것이다. 2010년 8월 무더위에 준비한 악기와 음향장비를 차에 싣고 송정동에 있는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성심의 집’ 양로원을 방문하였다. 처음 시도하는 노인 합주를 해 보기 위한 것이다. 큰북은 리듬감이 있는 할머니 한 분을 연습시켜 연주하게 하였고 다른 어르신들에게는 탬버린, 마라카스, 캐스터네츠 등 리듬악기를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박자 연습을 하였다. 2박자, 3박자, 4박자를 여러 번 반복 연습하였다. 나는 한 손으로 녹음기를 동작하면서 또 한 손으로는 작은북을 쳤다. 그토록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합주가 꿈같이 이루어졌다. 박자 연습도 생각 보단 잘되었다.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웃으시는 모습이 보였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수녀님들도 같이 연주하며 기뻐하셨다. 처음에는 ‘작은 별’과 같은 쉬운 동요에 리듬악기로 박자를 맞추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좋아 하시는 트로트 가요 음악에 맞추어 리듬을 쳤다. 점점 더 흥이 났다. 그리고 민요가 연주 될 때는 몇 분의 할머니가 일어서서 덩실 덩실 춤을 추셨다. 치매환자 어르신도 박자를 정확하게 맞추어 리듬악기를 연주 하였다. 사람은 태어 날 때부터 리듬감을 타고 나온다는 말이 맞은 것 같다.
40분 동안의 연주가 끝났다. 9년 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노인 합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즉 시도를 해 볼걸.”
수녀님과 앞으로 연습할 시간을 의논하였다. 매주 한 시간씩 합주를 하기로 하였다.
어르신들의 합주에 자신이 생긴 나는 그 뒤로 80곳이나 되는 요양원 주소록을 뒤적이며 그 다음 타깃 지점을 골랐다. 필요한 악기를 구입할 경비는 오랜만에 만난 대만 대사로 있는 사촌 동생이 사정 이야기를 듣고 기꺼이 부담해 주겠다고 자청하였다. ‘성심의 집’ 합주는 틀이 잡혀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9월이 되었다. 우선 규모가 작은 요양원을 찾았다. 송하동에 있는 ‘효사랑 고향의 집’ 요양원이다. 교섭이 잘되어 ‘효사랑 고향의 집’ 에는 2010년 9월 1일부터 합주를 시작하기로 약속하고 일단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음악선곡을 위하여 집에 있는 CD와 녹음테이프는 물론 옛날에 사용하던 LP레코드 까지 뒤져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찾았다. 그 많은 음악 중에 적당한 곡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시내 레코드 가게들을 다니며 CD를 구입했다. 그리고 선곡된 곡을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또 이동에 편리한 녹음기도 물색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번에는 미국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한국에 없는 장비를 공수해 오게 했다. 미국 동생도 나의 가상한 취지를 듣고 앞장서 나서 준 것이다. 또 노안성당의 이관호씨와 사진작가인 윤혜숙씨, 그리고 ‘은빛 합주반’ 조재현씨와 노경란씨가 악기와 음향 장비들을 친절하게 솔선하여 구입해 주었다. 그렇게 하여 드디어 ‘효사랑 고향의집’에서도 성공적으로 합주가 이루어졌다. 침대에 누워 계신 할머니 한 분은 발가락으로 박자를 맞추셨고 우울증 환자 할머니도 덩실 덩실 춤을 추시며 박자를 맞추셨다. ‘성심의 집’ 보다는 더욱 발전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합주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다. 그리고 내가 방문하는 시설도 점점 더 많아졌다.
2010년 10월 1일 ---‘효사랑 주월의 집’
10월 7일 ---담양 ‘마음의 집’
10월 20일 --송하동 ‘효다움 병원’
11월 4일 --담양 ‘화인케어 요양원’
12월 13일 --용산동 ‘꽃 메 요양원’
2011년 1월 6일 -- 대촌동 ‘한희 요양원’
1월 11일 --송하동 ‘성 요셉 요양원’
1월 18일 --신창동 ‘바라밀 실버타운’
2월 9일 --풍암동 ‘평안의 집’
2월 14일 --무의탁 어린이집 ‘영신원’
2012년 1월 12일 --‘전사랑 힐링 센터’
7월 17일 --전주 ‘성 요셉 동산’
2013년 1월 19일 -- 장성 ‘가나 실버 홈’
요양시설의 대부분은 개신교 신자나 목사가 운영하고 있고 불교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곳이 몇 곳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열심히 연습한 합주를 발표 할 때면 가장 기뻐하고 대견해 하는 것은 그들의 가족이었다. 담양의 ‘예수마음의 집’ 합주 발표 때는 전국에서 온 가족들이 즐겨 관람하였는데 그 높은 음악수준에 모두가 놀랐다. 8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코디언과 피아노를 연주하며 드럼을 능숙하게 연주 하는 것을 관람하시던 신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음악을 누가 80대 할아버지 할머니의 연주라고 믿겠는가?”
이렇게 합주반이 15곳으로 불어나면서 나 혼자서 감당하기가 무척 어려워 졌다. 합주에 사용하는 음악 장비도 녹음기에서 CD플레이어로 바뀌었으며 그 후로 다시 MP3플레이어로 바꿨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노인 합주를 이끌어 갈 보조 교사를 양성하기로 했다. 급한 것은 큰북과 작은북을 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건강한 어르신들의 합주단을 조직한 뒤 이들 단원 중 양로원 합주단에서 활동 할 사람을 찾기로 한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한 끝에 ‘빛고을 노인 건강타’ 이란 곳을 찾았다. 이곳은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매우 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이런 노인 타운이 없다고 했다. 160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하루 점심을 먹는 어르신들이 2,000명이나 되는 초대형 시설 이었다. 공연장과 체육관은 물론 수영장까지 있었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지도하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는 같은 악기를 수 십 명이 단조롭게 연습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살펴보았지만 합주부는 없었다. 나는 이곳에 합주부를 조직하기로 결심하고 본부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서류들을 다 갖추는 데는 1주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강사를 모집하기 위하여 면담을 할 때 나의 계획을 차분히 발표했다. 또 두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그것은 연습을 활발히 할 수 있는 넓은 장소와 악기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자유로이 사용 하는 것이었다. 그곳 건강타운에서도 여러 가지로 연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연락이 왔다. 합주부를 위한 강사임명을 허락하며 예의 두 가지 요구도 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힘이 솟아났다. 수많은 양로원과 요양원의 외로운 노인들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합주부 모집을 하였으나 잘 알려 지지 않은 탓에 희망자가 적었다. 결국 폐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뜻하지 않게 아내가 원군이 되어 주었다. 아내의 친구인 장 영자 씨가 친구들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합주부를 조직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다니는 농성동 성당에서 9명의 단원을 추가 모집했다. 그리고 ‘꽃 메 요양원’에서 건강하신 할머니 3명이 합류해 주었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2011년 9월 5일 33명의 ‘은빛 합주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연습 장소는 그곳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공연장의 무대였다. 음향과 조명 시설이 잘 되어있고 분에 넘치게 무대에는 언감생심 그랜드 피아노도 놓여 있었다.
단원들은 아코디언, 기타, 색소폰이 주류를 이뤘으며 악기 연주에 경험이 없는 분도 반 수 이상이었다. 이들 무경험자들에게는 쉬운 리듬 악기를 지도하기로 하고 그날 당장에 큰북과 작은북 그리고 심벌즈와 라틴 리듬악기를 구입했다.
1주일 후에 연습 할 곡을 선정하고 편곡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리듬악기 지도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아코디언과 기타 연주자들은 몇 년 씩 연습을 해온 실력자들이었다. 이들과 초보자들과는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 방해가 안 되게 합주를 하려면 초보자들은 별도의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생각 끝에 드럼 연주할 멤버들을 우리 집으로 오게 하여 연습 하였다. 큰북과 작은북 그리고 심벌즈를 기초부터 가르쳤다. 1주일간 열심히 연습 하였더니 행진곡의 어려운 리듬도 제법 연주 할 수 있게 되었다.
‘빛고을 노인 건강 타운’에서의 첫 번째 연습 시간이 되었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악기를 배정하고 음계연습부터 시켰다. 집에서 드럼 연습을 한 덕분에 어려운 곡을 제법 연주 할 수 있었다. 특히 행진곡을 연주 할 때는 자신만만하였다. 그리고 준비한 음악 반주에 맞추어 민요를 연주했다. 모두들 흥겹게 연주했다. 양로원에서 처음으로 연주 할 때의 기분이었다. ‘은빛합주단’은 규모가 크고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것만 달랐다. 이제 자신이 생겼다.
집에 오면 다음 연습 할 음악을 정하고 편곡을 하였다. 노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건강한 사람이나 양로원의 부자유스러운 사람이나 비슷하였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내가 유행가 종류의 음악만을 연주 할 수가 없었다. 어르신들에게는 좀 어려운 쌍두취, 라쿰파르시타 등의 유행가가 아닌 음악도 연주 하였다. 악보는 같은 곡을 6가지로 만들어야 했다. 악기마다 조가 다르고 연주 수준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연습하는 금요일 오전을 기다렸다.
성당에서 나중에 모집한 교우 단원들은 양로원의 합주에 적극 참여했다. 나 혼자 다닐 때 보다 훨씬 즐겁게 어르신들과 연주 할 수 있었다. 양로원 협조 단원들을 두 사람씩 배정하였다. 그리고 혹시 내가 못나가게 되어도 스스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장비와 도구들을 마련해 주었다.
드디어 ‘은빛 합주단’이 발표를 하게 되었다. 처음 발표는 짧은 시간 이었지만 넓은 체육관에서 수많은 관객을 모아놓고 그동안 연습한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발표는 규모가 작은 현관에서 하였고 세 번째 발표는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그 후 몇 달이 지나고 네 번째 발표가 이루어 졌다. 이번 발표는 ‘은빛 합주반’ 만으로 1시간을 연주하는 큰 공연이었다. 장소는 지금까지 연습장이었던 공연장 무대였다. 발표 때는 여러 사람들이 협조를 해 주었다. 나의 취지를 듣고 가상히 여겼던지 가수 임 금덕 씨와 무용을 하신 신순자 씨는 찬조 출연하여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꾸며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정기적으로 연습이 이루어졌다.
단조로운 악기 편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관악기인 바리톤 혼과 알토 혼을 구입하여 내 집에서 연습 시켰다. 두 달 정도 연습을 하니 합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저음을 연주 할 유포니움을 추가하였다. 그 후 색소폰 연주자가 일곱 명이나 추가로 들어왔다. 이제 악단의 짜임새가 균형을 맞추어 갔다. 벌써 ‘은빛합주단’이 조직 된지 일 년 삼 개월이 되었다. 이젠 어지간히 어려운 곡도 악보를 나주어 주면 척척 연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다섯 번에 걸쳐 ‘은빛합주단’의 활동 모습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양로원의 합주도 점점 더 잘 되어가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어르신들이 합주시간을 기다리지만 자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체력이 달리고 ‘은빛합주단’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합주 횟수를 늘릴 수 가 없었다.
양로원의 합주 발표는 어느 행사보다도 뜻이 있었다. 어르신들의 가족과 친지들을 초청해서 놓고 발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준비도 많이 해야 했다. 시설에 부모를 보내고 마음 아파하는 가족들은 무대에서 의젓하게 음악을 발표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놀라워하고 고마움을 느낀 듯 했다.
요양원 음악지도가 순탄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 2010년 11월, 나에게 평지풍파가 하나 일어났다. 교통사고를 낸 것이다. 충돌한 앞차가 폐차하기에 이르고 집 담 벽이 무너졌으며 담 벽 안쪽에 있는 보일러까지 망가졌다. 그런데 비천한 이 몸을 주님께서 돌보아 주셨는지 나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내차는 수리를 했지만 이젠 무서워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사고 이후 요양원에 가는 것이 문제였다. 나의 사고 내용을 전해들은 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의 합주를 중단 할 수 없어 요양원 차량시간을 배정하여 나와 보조 교사들을 출퇴근 시켜 주었다.
그 후로 다시 조심스런 운전을 하게 되면서 중단했던 요양원 3곳의 합주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이 나에게 건강만 허락하신다면 나는 더 열심히 더 여러 곳의 요양원에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이것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나의 조그만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