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8일 연중 26주간 월요일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9,46-50
그때에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땅벌에 쏘여 죽을 뻔
추석명절을 앞두고 산소에 벌초할 때 특별히 벌에 쏘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내 동생은 1학년 이었는데 동네의 알아주는 개구쟁이들이 땅벌(그때는 ‘오빠시’라고 했습니다.)을 소탕하여 꿀을 따먹자고 쳐들어갔습니다. 이 때 다른 친구들은 완전무장을 하였지만 나와 동생은 구경도 할 겸 꿀을 좀 얻어먹으려는 생각으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따라갔다가 그만 독한 땅벌에 사정없이 쏘여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머리에 벌을 쏘여서 벌침을 사십여 개 뽑아냈고 3일 동안 기절했다가 겨우 4일 만에 살아났는데 나는 그 때 10방정도 벌을 쏘였는데 신부님이 된 동생 때문에 죄인으로 말도 못하고 홀로 구석에 처박혀 울던 생각이 나곤 합니다. 만약 그때 내가 벌에 쏘여 죽었다가 살아났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금쯤 큰 인물이 되었을 텐 데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니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겸손할 줄 모르고, 머리도 별루인 것 같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동생 신부님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어린이는 어른들을 모범을 보고 배우며 성장합니다.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는 어른이 되면 힘도 세고 할일도 많을 것 같고, 그리고 편할 것 같고 매번 시키는 심부름이나 공부정도는 안 해도 되는 것 같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어른들의 신발을 신어보거나 어른들의 흉내를 자주 내기도 했는데 막상 어른이 되니 정말 어린아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이 들면 다시 어린 아이가 되고 싶어서, 철부지가 되고 싶어서 치매도 오고 어린아이로 사는 가 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어린이를 하늘나라의 가장 큰 사람으로 삼으셨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듯도 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항상 의문이 드는 것은 어린이처럼 정말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갈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마태18,4)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을 생각하면서 세상에서 비록 작은 사람이라고 해도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용기 있는 신앙인으로 하늘나라에 들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정말 작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답니다.
2)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18,3) 우리는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정직하고 솔직하여 잘못을 곧 잘 시인합니다. 그러나 어른인 우리는 정직하지도 못하고 체면과 위신 때문에 잘못을 합리화 하며 회개할 줄 모르고 살았던 삶을 항상 반성하면서도 항상 제 자리에 항상 머물고 맙니다. 이제 회개의 은총을 청하며 진정으로 회개의 삶을 살 것을 결심한답니다.
3)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태9,37)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처럼 부모는 늘 자식을 안고 싶고 곁에 두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면 문제없이 자유롭게 잘 살 수 있다고 자만합니다. 부모는 가산을 탕진한 방탕한 아들이라도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가슴에 안고 싶은 것입니다. 어린이들도 주님처럼 언제나 모든 것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도 잘 받아들이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는데 어른인 우리는 무얼 좀 안다고 하느님의 말씀도 거부하고, 선별해서 받아들이며 아주 큰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어린이처럼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 품으로 달려들며 받아주시기를 늘 기도하며 주님께 기대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4) 어린아이들은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어른이 되면서 살며시 꿈이 없어졌습니다. 우리의 꿈과 이상은 하느님 나라에 드는 것입니다. 이웃과 함께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헛된 것에 눈을 감으며 영원한 생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5)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루가18,17)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세상의 오욕으로 더렵혀진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각종 성사의 은총으로 항상 목욕도 하고, 몸은 깨끗이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내 영혼은 아직도 그 순수함과 더러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지자만물지역려(天地者萬物之逆旅)란 이태백의 시에 <이 세상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여관이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권력을 잡고 큰 인물이 되고 싶어 해도 우리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잠시 머물다 가는 여인숙에 묵은 나그네일 뿐입니다. 이제는 정말 철이 들어서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저희를 이 세상에서 어린아이로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 저희가 교만함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어 어린아이처럼 깨끗하여 회개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잠시 머물다 당신의 품으로 돌아갈 인생을 주님 뜻에 따라서 세상을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 저희의 체면과 위신 때문에 작아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당신의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저희의 뉘우침을 생활에서 실천으로 옮기게 하소서. 언제나 저희의 성화를 이끌어 주시는 주님!!!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