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다 / 김행숙 詩人
애야, 구닥다리 살림살이
산뜻한 새것으로 바꿔보라지만
이야기가 담겨있어 버릴 수가 없구나
네 돌날 백설기 찌던 시루의 채반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고
투박한 접시의 어설픈 요리들
신접살림 꾸리며 사 모은 스테인리스 양동이
어찌 옛날을 쉽게 버리랴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립다
코흘리개 맨발의 가난한 시절
양지쪽 흙 마당의 웃음소리
오늘이 끝인 양 마침표 찍고
내일부터 새 목숨 살아갈 수 없지
유유한 강물로 흐르면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가는 것
지난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
한 번 맺은 인연도 끊을 수 없는 거란다.
☀ 사람이 정 둔 것은 쉽게 어쩌지 못한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구닥다리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장만할 때, 또는 그것에 얽힌 사연들을 생각하면 하나같이 귀한 자식 같아서 버리지 못한다.
시루와 채반, 접시와 스테인리스 양동이에는 갖가지 사연과 추억들이 담겨 있다.
귀여운 아이의 생일날 시루와 채반을 이용해서 백설기를 만들어서 이웃과 나누었던 그 아름다운 추억을 어떻게 잊겠는가?
어려운 신접살림 때 큰맘 먹고 장만한 접시들과 양동이들을 보면 배 아파가며 낳은 자식들처럼 애틋할 것인데 어떻게 버리겠는가?
그래서 차곡차곡 쌓아두다 보면 집 한쪽이 이것들로 꽉 채워지기도 한다.
오늘이 끝인 양 마침표를 찍고 살아가면 편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맺은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한때 애지중지하며 쓰던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시적 화자의 따뜻한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詩로 여는 人文學 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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