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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

안중근(도마) 의사

작성자루치아|작성시간10.11.01|조회수30 목록 댓글 0


※ 생애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현감 안인수의
손자이자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천주교 성당건축에 참여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
자신도 1895년 천주교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프랑스어를 배웠다.

1904년 평양에서 석탄 장사를 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어 삼흥 학교를
세우고 돈의 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쓰다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하였다.

※ 업적

항일 독립투사. 구한말의 독립의사이자 교육가로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응칠이었다. 16세 때 가톨릭(천주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공부하였으며, 사격 솜씨도
남달랐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우리나라에 더욱 압력을 가하여, 이듬해에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우리나라의 자치적인 외교권마저 빼앗자 울분을 느낀 안중근은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일본군과 싸웠다. 그 후 1907년에는 남포에 삼포 학교와 돈의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러냈다. 그러던 중 한일협약에 의해 우리나라 군대가 해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의병 운동에 참가하였다.

1908년 의병 부대의 참모장이 되어 일본국과 싸웠으며, 이듬해 뜻을 함께 하는 11명의 동지들과 죽음으로써 구국 투쟁을 벌일 것을 다짐하였다. 그 해 10월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일제 침략의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체포되었다.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지만 모진 고문에도 굽히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지키다가 이듬해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 당하였다.

저서로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동양 평화론>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주어졌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순국 직전 동포들에게 남긴 의사의 마지막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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