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첫 눈이다!
2011년 11월. 군대에서 처음으로 첫눈을 맞았다. 곧 일병 5호봉이 되는 것을 축하라도 하듯 새하얀 눈이 하늘에서 펑펑 내렸다.
아니 쏟아졌다. 20년간 여수에서 살아온 남쪽 사람이라 이렇게 알이 굵은 눈은 처음 보았다.
대학교 2학년까지 서울에서 두 번의 겨울을 지내는 동안 보았던 눈과도 달랐다. 너무나 새하얗고 알이 굵어 땅에 떨어져도 녹지
않고 포근포근 쌓여가는 눈이 어찌나 신기하고 예쁘던지…. 성당을 시키는 군종 병으로 근무하던 나는, 넓은 성당 앞마당에 눈이
쌓여가는 것을 사무실 안에서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따르르릉~ 따르르릉” 군종 사무관에게 걸려온 전화.
“화식아, 전화 받는 거 보니까 눈 안치우고 있구나?
성당 마당이랑 차량 진입로는 다 네가 치우는 거야. 얼기 시작하면 답 없어. 얼른 가”
제설 삽을 챙겨 들고 마당으로 향했다. 사람이 다니는 길부터 눈을 쓸고 밀고…. 한참 공을 들였는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 분명 쓸고 왔는데?’ 눈이 그대로다. 눈을 쓸고 앞으로 가는 동안 하늘에서 그 굵은 결정체가 다시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똑같은 작업을 몇 시간째,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도록 멈출 생각을 않고 계속 퍼부어댔다.
그렇게 나의 강원도 군 생활 첫눈은 허벅다리 위까지 차오른 후 멈추었다. 겨우 겨우 사람이 다닐 정도만 치워놓고 늦은 저녁에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생활관 선후임 모두 각자 맡은 구역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눈에 질려서, 보일러가 켜지만 따뜻한 물에
샤워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생활관에 들어오자 라디에이터에도 뜨끈뜨끈 열이 올라온다.
‘아, 오늘 따뜻하게 자겠구나.’
몇 시간 후 새벽 4시. “툭툭툭” 생활관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오는데
“당직 사관이 전파한다. 강원지역 폭설 주의보 발령으로 현 시간부로 전 인원,
제설 작전에 나설 채비를 하고 4시 30분까지 생활관 앞으로 모인다. 이상!”
제설 작전에 투입되어 종교시설로 향하는데 7시면 항상 기도하러 오시는 군단장님이 생각나 마음이 바빠졌다.
새벽 사이 더 쌓인 눈을 거의 헤엄치듯 헤치며 겨우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건물 입구부터 교육관까지, 교육관에서 종교시설 입구까지, 다시 성당 건물 입구부터 교육관까지,
교육관에서 성당 입구까지…. 아침 해가 떠오를 시간인데 구름에 가려 해도 뜨질 않는다. 마음을 졸이며 ‘하느님, 군당장님 올 때
성당까지 걸어갈 수 있게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눈을 파고 또 파고…. 옷 속은 땀으로 샤워를 했지만 무심한 눈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날 다행히도 군단장님은 성당에 방문하지 않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무거운 몸으로 다시 제설을 시작하는데 저쪽에서 서른 명 정도의 무리가 눈삽을 들고 이쪽으로 노는 것이 보였다. 설마 했는데 성당 쪽으로 방향을 잡더니 무서운 속도로 눈을 치워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정보통신단장님이 종교시설 전체에
제설지원군을 보내셨다고 한다. 성당뿐만 아니라 교회, 법당 앞까지 눈을 모조리 치워주었다. 그 넓은 종교시설 앞의 눈이 치워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 군대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구나.’ 그 이후에도 강원도의 눈은 무섭게 내리고 꼭 쌓였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 정보통신단의
지원군들이 와주었다. 고생한 병사들에게는 각 종교시설에서 초코바, 초코파이, 음료수를 제공해주어 서로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 첫눈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으로 뒤덮인 새하얀 세상, 굵은 눈,
눈에 파묻힌 예수님 상, 영국 병정 모자가 씌워진 듯한 성당 외등.
간혹 군대 동기들을 만나 그때 이야기를 하면 한 명 한 명 핏대 세우며 제설 무용담을 펼치기 바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제설? 별거 아니던데, 기도한방이면 하느님이 도와주셔. 진짜여~”
글; 이화식 / 피아노 연주자 <가톨릭 다이제스트 통합지 월간독자 Reader 20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