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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샘터

[광야소리]미물도 아는 것

작성자맹물|작성시간09.11.21|조회수18 목록 댓글 0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미물도 아는 것>

2008년 5월, 강도 7.8의 강진으로 20,000만 명이 넘은 인명피해를 낸 스촨(四川)성 대지진이 발생하기 3일전 5월 9일, 시난(西南)진 탄무(檀木)촌의 한 제약공장 도로변에서는  기이한 소동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출몰하여 13Km에 달하는 긴 군락을 이루며 차도를 뛰쳐다니다 수만 마리가 깔려죽는 난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로부터 3일 후, 스촨성의 대지진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2만명 이상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습니다.

2004년에서 2009년 계속되는 쓰나미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고 이재민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쓰나미가 몰아친 스리랑카의 최대 야생 동물 보호지역인 '얄라' 국립공원에서는 단 한 마리의 짐승 사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해일과 지진이 닥칠 때 마다 이를 감지하고 모두가 고지대로 대피했던 결과였지요.

지진이 있을 것임을 가장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동물은 뱀이라고 합니다. 뱀은 12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되는 지진파를 3-5일 전에 이미 감지를 해서 겨울잠을 자고 있다가도 밖으로 뛰쳐나올 정도라 하고, 또 출항을 하는 배에서 쥐가 밖으로 빠져나오면 그 배는 타지 말라고 할 정도로, 인간들보다 미물인 짐승들이 재앙을 감지하고 예견하며 몸을 보전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연약한 존재일수록 더 예민한 촉수를 갖는 법입니다. 자신이 가장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더 영민하게 깨어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강하다는 생명들은 본질적으로 위험 징후에 '무뇌(無腦)'합니다. 예민한 촉수도 더듬이도 없습니다. 큰 덩치와 날카로운 이빨만 믿고 호령을 부렸던 공룡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었는지, 지금도 어렵지 않은 미스테리입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생명체, 슈퍼 컴퓨터에 위성에 최첨단 장비로 무장했다고 하면서도 오만 가지의 재앙은 고스란히 다 당하고 있는, 이 지구상에 생명체의 출현이후 가장 강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둔감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닥쳐올 재앙 앞에서도 아랑곳 않고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짓고 하는"(루가 17,28) 존재는 인간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멸망을 읽는 식견도 떨어집니다. 망조가 들고, 파국으로만 치닫는 세상에 대한 통찰도 부족합니다.  

30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를 떠들고 기름과 물의 고갈로 인한 공멸의 경고를 아무리 떠들어도 내가 쓸 건 다 써야 하고 내가 누릴 것은 다 누려야 합니다. 조금의 불편도 받아들이지 않고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굳이 뜻풀이를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권력의 속성이 뻔한데도 똑똑하다는 선비들마저 갓끈 풀고 머슴 밥상을 덥석덥석 받아 먹습니다. 제 아무리 법관 옷을 입고, 제 아무리 총리 의전을 받아도 하는 짓을 보면 그저 힘 있는 사람들의 비위 맞추는 '매춘부'들처럼 아양만 떠는 꼬락서니인데도 그것이 수치인지 부끄러움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그게 바로 화무십일홍, 자기 죽을 길인 줄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시고 우십니다. 성경에 몇 안 되는 예수님의 눈물이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연민'입니다. 처녀처럼 화려했던 그 예루살렘 성이 이민족에 칼날에 사방에서 무너져 내릴 것임을, 남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이고 여자들은 굶주린 폭군들에게 처참히 발가벗겨 질 것임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런데도 이 자들은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아니 이미 멸망의 검은 그림자가 인간들의 썩은 정신 위에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는데도 여전히 '사고 팔고 심고 짓는 일'만이 전부인 줄 압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정신이 썩으면 그것이 바로 망조이고 그것이 바로 모든 재앙의 징후가 됩니다.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하늘의 때와 하늘의 뜻을 읽는 일입니다. 세상은 어짜피 모든 것을 정해져 있는 곳입니다. "심어진 때가 있으며 거둘 때가 있는 곳이고,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는 곳이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는"(전도 3,2-4) 곳입니다.

하지만 정신이 팔려 있으면 그 때를 모르게 됩니다. 웃어야 할 때 울고, 울어야 할 때 웃습니다. 죽어야 할 때 살려 하고 살아야 할 때 죽고자 합니다. 정신을 돈에 팔고 힘과 권력과 거짓 평화에 정신을 팔 때 그렇게 됩니다.

지금 눈을 들어 세상 속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파국의 현장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십시오. 거기에는 단 한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썩은 정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썩은 정신들이 하늘의 뜻과 하늘의 때를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에게 예산을 속여가면서도 기어이 4대강을 파겠다고 합니다. 부동산 업자들과 토건 재벌들이 떠드는 소리에 입과 귀를 막았습니다. 제 나라 국민이 불타 죽은 현장에는 300일 넘도록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일본 관광객 불타 죽은 자리에는 대통령이라는 자부터 갖은 장관까지 머리 조아리고 법석을 피웁니다. 영국도 독일도 명분 없이 하루하루 수렁 속으로 빠져만 드는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발을 빼려 하는 판에, 미국 대통령 한국엘 오자 광화문에서 성조기 휘날리며 대규모 파병으로 아양을 부립니다. 공생의 파국을 앞당기면서도 썩은 정신은 여전히 국익 타령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망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가장 서럽게 웁니까? 누가 생존의 위협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누가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촉수를 세워, 심각한 위험을 제 때에 알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연민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깨어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일입니다.

한낱 미물도 다 알고 있는 공생의 질서를 '영장(令狀)'이라 불리는 인간으로 나서,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루가 19,42 공동번역)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지으며 쏟아내신 예수님의 탄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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