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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과 묵상

2009/7/16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작성자맹물|작성시간09.07.16|조회수31 목록 댓글 0

 

 

2009/7/16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연중 제14주일 기도문>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 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순종과 굴욕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소명을 내리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이집트 임금은 보내려 하지 않겠지만 당신께서 도와주겠다고 하신다. 기적을 일으켜 민족의 이동이 성공하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모세는 하느님의 실존을 체험하고 용기를 얻는다(제1독서). 무거운 짐은 율법의 가르침이다. 고생스럽고 힘들다면 주님께 오라고 하신다. 당신께서 안식과 편안함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편하고 가벼운 멍에라고 표현하신다(복음).
<나는 있는 나다.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13-20
그 무렵 [떨기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16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05(104),1과 5.8-9.24-25.26-27(◎ 8ㄴ)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 주님은 당신 백성을 크게 늘리시어, 그들의 적들보다 강하게 만드셨네. 저들의 마음을 바꾸시어, 당신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고, 당신 종들에게 간계를 부리게 하셨네. ◎
○ 그분이 당신 종 모세와, 몸소 뽑으신 아론을 보내시니, 저들 가운데에서 그분의 표징들을, 함족 땅에서 이적들을 일으켰네. ◎
마태 11,2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알렐루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34(33),9 참조
너희는 먹고 깨달아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간절히 청하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새벽 3시, 모두들 잠들어 있을 때 장사하는 이들은 깨어 있습니다. 생선을 실어 나르는 ‘활어차’들이 제일 먼저 움직인다는군요. 그 말을 듣고 횟집에 가니까 숙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찌 그들뿐이겠습니까? 새벽에 움직이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삶은 활기를 띱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삶은 공평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무거운 짐은 율법입니다.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면 당신께 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삶의 휴식을 알려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삶의 한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열정을 갖고 대해야 합니다. 온전히 봉헌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남는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 때우기의 믿음이라면 ‘멍에의 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열정과 기쁨’을 추구합니다. 욕심이나 ‘야망의 충족’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율과 규칙은 단지 잘못된 방향을 알려 주는 ‘계기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늘 주님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찾기에 열정은 식고 야망이 커집니다. 열정은 다른 말로 ‘주님의 뜻을 찾는 노력’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할 때 만나를 주시면서 여섯 째 날에는 다음날 분량까지 내리시어 하루를 쉬게 하셨다. 그 안식일을 기념해 유다인들은 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다음날 어두워질 때까지 휴식하며 거룩히 보낸다고 한다. 분가한 식구들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여 자존감을 높이며 즐겁게 지내는 일은 과연 선민답다.
가장들에게 하루의 짐이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당신 짐은 가볍다 하신다. 가볍게 사는 방법이 따로 있나 궁리를 좀 해보고 싶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어떨까? 오늘이 음력으로 윤 5월 24일, 그러면 별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의 방해꾼인 달님이 하현달로 이울어 느즈막히 나타나니, 오늘 밤은 별 보기에 딱이다. 구름만 없으면 앙증스런 돌고래도 볼수 있다. 연길에 갔을 때 푸르청청 탁 트인 밤하늘, 저 남쪽에 곱디고운 궁수가 아른아른 떠오르는 모습에 황홀했던 적이 있다. 벚꽃 철, 단풍 철 되면 매연 뿜어대며 고속도로를 메우며 찾아가기도 한다. 별은 반쪽 하루에 사철 피는 꽃이 아닐까. 오늘 같은 날, 구름 없는 때를 찾아 별을 보러 가족들과 함께 길을 나서는 일은 어떨까?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확인하고, 아크투루스, 왕관자리, 전갈의 안타레스도 두루 찾아 인사하며 밤하늘의 주인이 되어보면 주님 주시는 안식과 평화와 기쁨이 그리 멀리 있지도 않으리.

“전깃불이 가려지는 산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직녀별과 견우별은 서쪽으로 기울어 있고, 머리 위에는 페가수스의 사각형이 안드로메다의 별들을 긴 꼬리처럼 달고 하늘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다. ”(곽영직,「별자리 여행」)

임원지 수녀(살레시오수녀회)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5주간 목요일 - 평안함을 누리기 위해서

 

 

 

얼마 전에 오랜만에 동기모임을 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동기들이어서 참 반가웠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동기 신부들도 본당이나 사목 현장에서는 근엄한 목자들이고 책임자들이지만 동기 신부 모임에서는 모두 신학교 때의 천진난만했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장난치며 뒹굴고 신자들 앞에서는 할 수 없었던 농담도 스스럼없이 해 가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이렇게 동기모임이 편안하고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동기 신부들은 오래 전부터 함께 해 왔고 또 같은 신부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해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사실입니다.

이야기하는 것들을 들어보았더니 어떤 동기들은 신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신자들 앞에서는 경직되고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하다 보니 신자들을 대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부님은 술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혼자서나 사제들과는 술자리를 자주 하지만 아예 신자들과는 거의 함께 술자리를 하지 않습니다.

저도 말도 몇 번 해 보지 않은 수녀님이 저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듣고는 다른 수녀님들 대할 때도 항상 조심하고 경직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만날 때 마음이 편한 사람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다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휴식이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입니다. 예수님께 달려가서 아무 이야기를 해도 그 분은 다 받아주십니다. 다만 그분께 달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수님은 모든 투정까지 다 받아주십니다. 그분은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힘들고 지친 모든 사람을 당신께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사람의 육체가 잠과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버티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휴식을 무시하고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병들고 지쳐 쓰러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영혼의 휴식을 우리는 ‘기도’라고 부릅니다.

 

어떤 자매님이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은 매일 정해놓은 시간대로 하느님께 기도하고 안식을 찾으며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지고 그래서 기도시간도 줄어들고 마음의 평화도 줄어드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제들도 동기모임이나 우리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휴식이고 에너지를 얻는 것이 되고, 신자들이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되어야할까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만이 휴식이고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휴식을 깨뜨리는 것이고 힘이 드는 것이 되어야할까요?

예수님은 당신을 만나는 기도만이 안식이 되기를 원치는 않으십니다. 물론 기도가 절대적인 휴식의 원천이 되는 것은 맞지만 사람을 만나는 데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안식을 얻는 방법은 그 분과 함께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에게서 배우는 것에도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즉, 기도 때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배운다면 그 때서야 비로소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성격 유형 검사에서 상담을 해 주신 분은 저를 내향적이라고 하셨고 그래서 저는 혼자 있을 때 힘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기도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저를 아는 한 분은 제가 수백 명 앞에서 강의를 할 때도 전혀 떨지 않는 면을 말하며 외향적인 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면 힘을 얻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노래도 못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커 가면서 사람이 두려워지는 이유는 바로 나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나는 내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라고 몇 번이고 되새깁니다. 내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데 긴장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희한하게 정말 떨리는 마음이 사라지고 편안하게 강론이나 강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의 겸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하셨기에 전혀 긴장함이 없으셨던 것처럼 내 영광을 포기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할 때 뭐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겸손을 배우면 사람들 앞에서조차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평안하고 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완전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마태 11,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그분과 나 둘만이 남아있는 감미로운 순간>


   안식(安息)이란 무엇입니까? 말마디 그대로 ‘편히 쉼’을 의미합니다.


   편안한 안락의자에 거의 몸을 파묻다시피 깊숙이 앉아 좋아하는 비디오 한편 보는 것도 좋은 안식이 될 것입니다.


   시원한 계곡 흐르는 물 위에 차양을 친 다음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어도 엄청 편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쉬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계속 그러고 있다 보면 슬슬 무료해집니다. 지루하고 심심해집니다.


   더 의미 있는 휴식이 되려면 그 ‘누군가’ 필요합니다.


   결국 가장 좋은 휴식, 그간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안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그 자체가 가장 효과적인 휴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경치나, 분위기, 주변 상황은 더 이상 그리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요, 다른 것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의 옆에 있는 그 자체로, 그의 존재 자체로 가장 감미로운 휴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안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 결코 변치 않는 영원한 연인, 다른 모든 사람이 다 변하고, 다 떠나가는 반면 우리가 백발이 되더라도 우리를 떠나가지 않으시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사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체 앞에 앉아있는 순간, 미사에 몰입하는 순간, 하느님을 찬미하는 순간, 영적독서에 깊이 심취하는 순간, 깊은 묵상에 잠기는 순간, 이 세상 모든 대상이 내 앞에서 사라지고 그분과 나 둘만이 남아있는 감미로운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참된 안식의 순간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기 3,13-20
복음 마태오 11,28-30
 
 
영국에 살던 한 백인부부가 아프리카로 이민을 계획했습니다. 그들은 곧 전 재산을 처분하여 아프리카로 가서 큰 농장을 경영하였지요. 넓은 농토와 수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백인부부는 얼마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온지 삼 년도 채 못 되어 남편이 풍토병에 걸려 그만 죽고 말았어요. 더구나 그 해는 심한 가뭄으로 잘 되던 농사까지 망쳐 백인부인은 아주 난처한 지경에 이르렀지요. 부인은 남편도 잃은데다가 농사도 잘 되지 않자 결국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부인이 떠날 때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하녀의 어린 딸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주인 여자에게 선물을 주었답니다. 그것은 소녀가 벌판에서 주워 가지고 놀던, 자신이 가장 아끼던 빛나는 돌이었지요.

고향으로 돌아간 부인은 소녀가 준 돌이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임이 밝혀져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흑인 소녀는 차차 부인에게서 잊혀 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자신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준 흑인소녀가 생각난 부인은 싸구려 인형을 하나 사서 아프리카로 보냈습니다. 흑인소녀는 그 인형을 받고 너무 좋아했어요. 날마다 인형과 함께 놀면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지요. 그리고 소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가 걸어 다니고 말을 할 즈음 그녀는 그 인형을 자기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 딸은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형과 더불어 행복하게 지냈지요.

한편 부인은 자신의 돈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의 권모술수에 수없이 시달려야 했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상속 문제로 자식들과 불화가 생겨 집안이 둘로 갈라져 원수처럼 지내야만 했습니다. 결국 백인부인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양로원에서 쓸쓸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고 해요.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속적으로는 백인부인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것을 누릴 수가 있었지만,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에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흑인소녀는 자그마한 인형이지만 그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행복해질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주님께서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에서 안식을 찾기보다는 당신에게로 오라고, 그래야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만 참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쫓고 있는지요?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쫓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한 사람의 인간이 최고의 사랑을 성취한다면 그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가진 미움을 해소시키는데 충분하다.(마하트마 간디)




마음에 사랑이 넘치면(‘좋은 생각’ 중에서)

마음에 사랑이 넘치면 눈이 맑아집니다.

부정적인 말로 남을 판단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말로 남을 이해하려 애쓰게 됩니다.

마음에 사랑이 넘치면 맑은 웃음이 늘 배경처럼 깔려있어 만나는 이들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매우 사소한 것일 지라도 다른 사람 배려하고 그를 위해서 열려있는 사랑의 행동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보석 입니다.

찾기만 하면 늘 널려있는 이 보석을 찾지 못하는 것은 저의 게으름 때문이겠지요.

늘 감사하며 사는 맑은 마음엔 남을 원망하는 삐딱한 시선이 들어올 틈이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고운 마음이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남을 비난하고 흥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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