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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16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할 때 만나를 주시면서 여섯 째 날에는 다음날 분량까지 내리시어 하루를 쉬게 하셨다. 그 안식일을 기념해 유다인들은 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다음날 어두워질 때까지 휴식하며 거룩히 보낸다고 한다. 분가한 식구들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여 자존감을 높이며 즐겁게 지내는 일은 과연 선민답다. 임원지 수녀(살레시오수녀회)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15주간 목요일 - 평안함을 누리기 위해서
얼마 전에 오랜만에 동기모임을 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동기들이어서 참 반가웠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동기 신부들도 본당이나 사목 현장에서는 근엄한 목자들이고 책임자들이지만 동기 신부 모임에서는 모두 신학교 때의 천진난만했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장난치며 뒹굴고 신자들 앞에서는 할 수 없었던 농담도 스스럼없이 해 가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이렇게 동기모임이 편안하고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동기 신부들은 오래 전부터 함께 해 왔고 또 같은 신부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해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사실입니다. 이야기하는 것들을 들어보았더니 어떤 동기들은 신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신자들 앞에서는 경직되고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하다 보니 신자들을 대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부님은 술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혼자서나 사제들과는 술자리를 자주 하지만 아예 신자들과는 거의 함께 술자리를 하지 않습니다. 저도 말도 몇 번 해 보지 않은 수녀님이 저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듣고는 다른 수녀님들 대할 때도 항상 조심하고 경직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만날 때 마음이 편한 사람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다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휴식이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입니다. 예수님께 달려가서 아무 이야기를 해도 그 분은 다 받아주십니다. 다만 그분께 달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수님은 모든 투정까지 다 받아주십니다. 그분은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힘들고 지친 모든 사람을 당신께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사람의 육체가 잠과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버티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휴식을 무시하고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병들고 지쳐 쓰러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영혼의 휴식을 우리는 ‘기도’라고 부릅니다. 어떤 자매님이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은 매일 정해놓은 시간대로 하느님께 기도하고 안식을 찾으며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지고 그래서 기도시간도 줄어들고 마음의 평화도 줄어드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제들도 동기모임이나 우리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휴식이고 에너지를 얻는 것이 되고, 신자들이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되어야할까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만이 휴식이고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휴식을 깨뜨리는 것이고 힘이 드는 것이 되어야할까요? 예수님은 당신을 만나는 기도만이 안식이 되기를 원치는 않으십니다. 물론 기도가 절대적인 휴식의 원천이 되는 것은 맞지만 사람을 만나는 데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안식을 얻는 방법은 그 분과 함께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에게서 배우는 것에도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즉, 기도 때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배운다면 그 때서야 비로소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성격 유형 검사에서 상담을 해 주신 분은 저를 내향적이라고 하셨고 그래서 저는 혼자 있을 때 힘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기도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저를 아는 한 분은 제가 수백 명 앞에서 강의를 할 때도 전혀 떨지 않는 면을 말하며 외향적인 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면 힘을 얻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노래도 못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커 가면서 사람이 두려워지는 이유는 바로 나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나는 내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라고 몇 번이고 되새깁니다. 내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데 긴장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희한하게 정말 떨리는 마음이 사라지고 편안하게 강론이나 강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의 겸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하셨기에 전혀 긴장함이 없으셨던 것처럼 내 영광을 포기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할 때 뭐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겸손을 배우면 사람들 앞에서조차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평안하고 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완전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마태 11,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그분과 나 둘만이 남아있는 감미로운 순간> 안식(安息)이란 무엇입니까? 말마디 그대로 ‘편히 쉼’을 의미합니다. 편안한 안락의자에 거의 몸을 파묻다시피 깊숙이 앉아 좋아하는 비디오 한편 보는 것도 좋은 안식이 될 것입니다. 시원한 계곡 흐르는 물 위에 차양을 친 다음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어도 엄청 편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쉬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계속 그러고 있다 보면 슬슬 무료해집니다. 지루하고 심심해집니다. 더 의미 있는 휴식이 되려면 그 ‘누군가’ 필요합니다. 결국 가장 좋은 휴식, 그간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안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그 자체가 가장 효과적인 휴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경치나, 분위기, 주변 상황은 더 이상 그리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요, 다른 것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의 옆에 있는 그 자체로, 그의 존재 자체로 가장 감미로운 휴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안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 결코 변치 않는 영원한 연인, 다른 모든 사람이 다 변하고, 다 떠나가는 반면 우리가 백발이 되더라도 우리를 떠나가지 않으시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사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체 앞에 앉아있는 순간, 미사에 몰입하는 순간, 하느님을 찬미하는 순간, 영적독서에 깊이 심취하는 순간, 깊은 묵상에 잠기는 순간, 이 세상 모든 대상이 내 앞에서 사라지고 그분과 나 둘만이 남아있는 감미로운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참된 안식의 순간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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