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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님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가장 값진 선물을 주신 분이시다. 성모님의 탄생은 세상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탄생은 인류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것은 바로 성모님의 삶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성모님의 탄생에 대해서보다 성모님의 삶을 조명해 보는 것이 나의 삶에 희망을 더하게 되리라고 본다. 김석인 신부(포콜라레한국본부)
![]()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마태오 1장 1-23절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존재의 기반, 존재의 이유> 자녀를 위해 철저하게 헌신(獻身)하는 부모님들을 만납니다. 자신의 인생 안에 자신은 애당초 없습니다. 모든 안테나가 오로지 자녀에게로 맞춰져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에너지 전부를 자녀에게 쏟아 붓습니다. ‘도대체 인생 왜 저렇게 사나?’ 해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녀 앞길 잘 풀리는 것만이 소원입니다. 자녀 인생만 잘 풀린다면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문제없습니다. 약간은 어리석어 보이고,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그분들의 삶에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성모님, 그분 존재의 이유는 바로 아들 예수님이셨습니다. 성모님, 그분 존재의 기반 역시 아들 예수님이었습니다. 성모님의 운명은 예수님의 운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자녀에게 목숨 바치는 부모님들, 자녀를 얼마나 끔찍이도 챙기는지, 자녀가 가는 곳 마다 따라다니는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어머니의 스케줄은 오직 자녀에게 달려있습니다. 등교시간이 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운전기사 노릇을 자처합니다. 학교 문 앞까지 태워줍니다. 끝나는 시간 맞춰 정문 앞에 차를 대령합니다. 곧바로 학원으로, 또 다시 집으로...자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척척’ 입니다. 이 세상에 하녀도 그런 하녀가 없습니다. 성모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모님은 그야말로 ‘주님의 종’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이나 고통도 달게 참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떤 노고도 힘들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성모님의 Fiat(순명)은 단 한번으로 족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따라 부단한 ‘예!’가 필요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성장해 가신 예수님에 따라 성모님 역시 성장해 가셔야 했습니다. 나자렛에서의 오랜 준비를 끝낸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위해 길 떠나실 때, 성모님 역시 또 다른 먼 신앙의 길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공생활을 무사히 마치신 예수님께서 지상생활을 마무리 짓고 아버지께로 향해 가실 때, 성모님 역시 또 다른 기약 없는 먼 길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한평생 요구되었던 지속적인 떠남의 삶, 수시로 요청되었던 지속적인 자기포기의 삶이 바로 성모님의 삶이었습니다. 단 한번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었던 Fiat(예!)의 삶, 끝도 없이 요구되었던 변화와 쇄신의 삶, 안주하지 않고, 고집하지 않았던 영원한 이방인의 삶이 바로 성모님의 삶이었습니다. 한 평생 아들 예수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던 분이 성모님이셨습니다. 깨어날 때나 잠이 들 때나, 길을 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 언제든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과의 일치 속에 계셨던 분이 성모님이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 “마리아, 당신 아드님의 딸”
오늘 조금 어렵거나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잘 묵상해보시면 성모님의 참 모습을 더 깨닫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요한 세례자는 그의 어머니 태중에서 마리아의 인사를 들었을 때 성령으로 가득 차 기뻐 뛰놀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성령으로 가득 차니 태중의 아들도 성령으로 가득 차고 성령의 열매인 기쁨을 이미 태중에서부터 누렸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당신 어머니의 태중에서 당신의 선구자로 선택된 요한을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이미 태중에서부터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 하느님께 봉헌된 나지르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몸에서 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큰 사람은 없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태중에서는 예수님께서 요한을 영적으로 새로 나게 하셨지만 성장하셔서는 그 상황이 역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찾아가셔서 당신에게 세례를 베풀어 줄 것을 청합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줌으로써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바로 그 때부터 요셉의 아들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로서 공생활이 시작됩니다. 이번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새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두 분이 서로 상대를 탄생시키는 모습은 우리 그리스도교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닙니다. 먼저 삼위일체 안에서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모든 인간관계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이렇게 서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삶이 아니라면 아직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들어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령 안에서 성자를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성자가 없었다면 아버지도 있을 수 없고 성령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서로서로가 존재하기 위해 상대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없어서 당신의 모든 것인 성령님을 보낼 대상이 없다면, 또 아들이 아버지께 받은 성령님을 다시 아버지께 돌려드리지 않는다면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님도 존재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각자 혼자서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당신의 모든 것인 성령님을 보내심으로써 아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고, 또 아들이 당신이 받은 성령님을 다시 아버지께 보내심으로써 아버지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움직임입니다. 즉, 사랑 자체가 상대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요 목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 아니라면 하느님도 세상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새로 태어나고 새로 탄생시키는 움직임이 없는 누구도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생기기 전부터 자녀를 사랑합니다. 물리적 시간이 아닌, ‘이성적인 시간 안에서’ 아버지와 성령님은 성자께서 생기기 전부터 그 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자를 통해서만이 아버지는 참 아버지가 되고 성령님은 참 사랑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한 두 사람은 그 사랑 안에 충분한 행복을 누리지만 그 사랑의 열매를 바라고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앞으로 생기게 될 자녀를 사랑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부와 성자께서도 성령 안에서 사랑하시며 새로 탄생될 열매를 이미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마치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와 한 몸을 이루듯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태어나신 분이 계셨으니 바로 ‘마리아’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알고 있지만, 그 이전에 성자께로부터 마리아가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에 교회 안에서 자주 마리아는 “당신 아드님의 딸”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창조 이전에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첫 열매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을 위해서 태어나게 하셨듯이 마리아도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마리아 또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룸으로써 교회를 탄생시키십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불립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열매로 탄생 이전부터 그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교회는 마리아와 한 몸을 이룸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됩니다. 마치 마리아께서 성자와 한 몸을 이루어 아버지와 일치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나았으며...’ 라고 끝까지 가다가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족보에서 여자는 빠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가 되어야 하는데 느닷없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셨다.’고 여자가 족보에 들어가고 예수님께서 스스로 태어나신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수동적으로 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여자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의미와 성모님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하시는데 요셉과의 부부관계에서 탄생하신 것이 아님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쓴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모님께서 하느님과 일치하여 나셨으며 성모님과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모든 교회의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며 성모님과 한 몸을 이루고 성모님과 한 몸을 이룸으로써 결국 성령 안에서 성자와 성부와 한 몸을 이룹니다. 그리스도는 인간과 하나 되기 위해 성자께서 마리아께로부터 육신을 취하신 분이십니다. 성자께서 성모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으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성모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참 성자를 만날 수 없습니다. 오늘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마리아께서 요아킴과 안나를 부모님으로 두고 있지만 그 분의 참 부모님은 하느님이십니다. 그 분만이 성자께로부터 직접 창조된 첫 번째 열매이고 그래서 그 뒤에 오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성자께로부터 태어나셨지만 다시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십니다. 마치 예수님과 요한이 서로를 탄생시키셨던 것처럼 성자와 마리아는 서로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부부가 혼인하여 살다보면 서로 변해갑니다. 한 사람만 변하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서로를 새로 태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안에서 이웃의 어머니가 되고 또 이웃의 자녀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관계가 중요하고 사랑으로만 새로 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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