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사랑은 비를 타고"
오은희/작
[등장인물]
정동욱 : 남. 40세. 중학교 음악교사
정동현 : 남. 31세. 공사판 일용직 근로자.
유미리 : 여. 22세. 웨딩센타 아르바이트생.
[막이 오르기 전에 들리는 빗소리와 음악소리]
M1-OPENING-빗소리와 함께 들리는 실내악( 맑은 피아노소리 )
<막이 올라가면서 빗소리 점점 작아지고 음악소리도 점점 작아진다.
조명 서서히 밝아진다.
소박한 거실의 풍경.
격자무늬의 유리창 너머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유리창 한쪽에 흔들의자가 놓여있다.
흔들의자 위에 놓여져 있는 뜨개질바늘과 털실바구니.
거실 한쪽 뒷면에는 피아노가 두 대 떨어져 놓여있고,
그 옆으로 빨래 건조대가 있다.
건조대위에 널린 여성속옷과 기저귀들.
거실 중앙에는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고, 벽면에는 사진액자가 걸려있다.
사진액자는 교복차림의 여고생 두 명과 교모를 쓴 남중생을 두팔로 가득
안고 찍은 남자의 모습과 상장과 꽃다발을 든 남고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남자의 모습이 있다.
그 남자는 동일한 인물이다.
앞치마를 두른 동욱 촛대와 테이블 보를 들고 등장한다.
동욱은 사진 속의 그 남자다.
동욱,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밑으로 내려놓고 그 위에 테이블 보를
정성스럽게 깔고 그 위에 촛대를 놓아둔다.
테이블 보는 손뜨개된 것이다.
동욱, 앞치마 앞에서 걸레 꺼내서 피아노도 닦고, 소파도 닦으면서
신나게 청소하며 노래한다.>
M2-"모두 모이는 거야'-동욱의 독창
<동욱, 만족스러운 듯 흥얼거리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울리는 전화벨.
동욱, 국자 들고뛰어 나와 소파로 몸을 날린다.>
동 욱 : 간다 가!
<동욱, 테이블 위를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전화기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그제서, 전화를 테이블 밑에 둔 걸 깨닫고, 전화기 꺼내 받는다.>
동 욱 : 여보세요, 아, 영희구나, 잠깐만....
<동욱, 일어나 리모콘으로 음악 끄고 소파에 앉아 전화 받는다.
전화 받는 동안에도 연신 소파와 테이블 위를 정리한다.
아주 깔끔하게 각도까지 맞취가면서>
동 육 : 응, 뭘 좀 만드느라고, 넌 어때? 그래, 장마철이라 더니....지겹게 오는
구나. 오늘? 토요일이라 일찍 왔지 뭐. 왜 여태 출발 안 했어? 잠실서
예까지 오려면 꽤 막힐 텐데......전철 타고 오게? 하긴 술 한잔 하려면
차 놓고 오는 것도 좋지......, 못 와......(실망한 표정 애써 감추며)
아, 아니다......시어머님 오신다는데 하는 수 없지 뭐.
상의할 일.......별 일 아니고....그냥 같이 모여서 밥이나 한끼 먹자는거지,
얼굴 본지도 오래됐고.......신경 쓰지마, 그래. 아, 난 괜찮대 두.
그나저나 시어머님 드실 음식은 좀 장만했니? 아니, 얘가 얘가!
오랜만에 부산서 올라오신다는데. 얼른 끊고 시장 가봐! 봄 나물이 제철이라
꽤 입맛이 당길 게야. 시장 파하기 전에 어서 가봐, 그럼 끊자!
<동욱, 실망한 것을 감추기 위해 바삐 전화 끊으려는데 전화 저편에서 뭔가
얘기하는지 다시 수화기 귀에 대고>
동 욱 : 응? 소라 조림하게? 그래, 어른들에겐 괜찮은 반찬이지. 그거 간단해.
지금? 좋아(빠르게)우선 소라하고 장조림간장, 사골국물, 고춧가루, 다진
마늘, 사과와 양파 간 것, 물엿, 설탕, 청주, 잣을 준비하고....빨랐지?
알았어. 이 오빠가 차근차근 불러줄게.
M3-"요리노래'-동욱의 독창
동 욱 : (노래 끝나고) 그리고 소라조림은 .....(달칵 끊기는 전화기소리)
......(빈 수화기에 대고)그래, 맛있게 만들어. 그래야 시어른들께 사랑받지.
<동욱, 실망해서 수화기 놓고 부엌으로 들어가려는데 다시 울리는 전화벨.
동욱, 신나서 다시 가서 수화기 든다>
동 욱 : 또 뭘 잊었.....아, 정희구나. 난 영흰줄 알고.....그래, 방금 전에
니 언니랑 통화했다. 시어른들이 오셨다지 뭐냐. 뭘 장만할까 고민 고민하더라
....뭐? 너희들도 못 와.......신경 쓸 것 없어. 직장상사집들이라는데......
거기 가야지. 갈땐 빈손으로 가지 말고......알았어, 공연한 노파심에서
해 본 말이야. 민서방은 잘 있지? 어이, 민서방인가.....아니야,
그저 함께 모여서 밥이나 한끼 먹자는 건데......
다음 기회에 하지뭐......그럼 부장님 초대라는데......최서방네두 힘들 다는군.
.....오늘만 날인가 뭐....(밖보며) 비오는데 운전 조심하고......아, 정희냐?
왜? 그래, 월요일 퇴근 길에 들려 다 다려 놨다.
그래! 근데 웬만하면 주름치마는 안 보낼 수 없냐? 아냐, 괜찮아.
어차피 내 옷 빨면서 하면 되는 건데......세탁소는 뭐......오늘 용석이
안 봐줘도 되니? 그래? 참 용석이가 감기 기운이.....
<하는데 이미 저편의 전화가 끊긴 듯 "뚜우"소리가 난다.
수화기를 한참을 들고 있는 동욱>
동 욱 : 단단히 옷 입혀 가야겠더구나......아니 참 얘가 기관지도 약한 애를......
<그러나 신호음만 들리는 전화기.
동욱, 수화기 놓다가 손이 저린 듯 수화기 떨어뜨린다.
동욱, 손을 천천히 접었다 폈다 해본다.
주머니에서 꺼내보는 종이쪽지(진단서).
한숨 내쉬고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다 수화기 전화에 올려 놓고 일어나 천천히 앨범이 달린 벽으로 가서
사진들 보며 노래한다.>
M4-"아무도 오지 않는 밤"-동욱의 독창
<동욱, 노래 끝나고 천천히 불 끄고 흔들의자에 가서 대바늘로 뜨개질을 한다.
이어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비에 흠뻑 젖은 한 남자가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들어온다.
그의 어깨에 매어져 있는 연장가방.
마치 도둑처럼 소리내지 않고 여기 저기 살펴본다.
흔들의자는 들어오는 문과 반대방향으로 있어서 들어온 남자는 흔들의자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동욱이 보이지 않는다.
남자, 돈이 될만 한 것을 살피는지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사진액자를 바라본다.
동욱, 흔들의자에서 일어서다가 남자를 발견하고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다가
못찾아 그냥 "물 스프레이"를 뽑아 위협하며>
동 욱 : 꼼짝마!
<순간, 뒷모습의 남자 놀란 듯 고개를 숙인다.>
동 욱 : 난 지금 가스총을 들고 있으니깐 섣불리 행동했다간 목을 찔러 버릴 꺼야!
손들어!
<남자, 한 손든다>
동 욱 : 두 손 다들어!
<남자, 마저 한 손들어 올린다>
동 욱 : 천천히 밖으로 나가! 아주 천천히!
<남자,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동욱, 얼른 불 키고 문 닫으러 현관문쪽으로 가서 문 닫으려는 순간 활짝 열고
들어오는 남자.
동욱, 물 스프레이를 휘저으며 한바탕 싸움을 벌리며 하지만 이마 상대편의 힘에
눌려 남자 밑에 깔린다.
남자, 주먹을 들어 치려는 포즈를 잡으며>
남 자 : 그게 가스총이야!
동 욱 : 아니!
남 자 : 아예, 문을 활짝 열어놓지 그래.
동 욱 : 너!
남 자 :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문을 열어두고 있어.
동 욱 : 도대체!
남 자 : 자 이제됐어.
동 욱 : 동현아!
동 현 : 그 가스총 언제까지 들고 있을 거야.
동 욱 : 정말 동현이 맞아!
동 현 : (손 내밀며)잘 지냈어?
동 욱 : 정동현!
동 현 : 언제까지 들고 있을 꺼야!
동 욱 : (물 스프레이 던지며)정동현!
동 현 : 이름 닳겠수, 그만 불러! 여기 있는 사람 동현인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
형 막내 동생 정동현!
<동현, 손잡아 동욱 일으켜 준다>
동 욱 : 이 자식!
<동욱과 동현 서로 반가움의 사인을 주고받는다.
동욱, 갑자기 반가움에 와락 어깨를 치자 동현, 비명 지르며 주저앉는다>
동 현 : 악!
동 욱 : (놀라서)뭐야?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동 현 : (이내 웃으며)속았지!
동 욱 : 짜식, 사람 놀래키는 건 여전하군.
동 현 : 형이야 말로(형말투 흉내내며)뭐야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그 잔소린 여전하군.
동 욱 : 저런 다 젖었구나, 우산은?
동 현 : 깜빡했지 뭐.
동 욱 : 예전에도 맨날 우산없이 다니더니....야임마 잠깐 기다려. 감기 들라라.
(화장실로 들어감)
동 현 : 어떻게 지냈어?
동 욱 : 맨날맨날 좋았다. 너는 어떻게 지냈냐?
동 현 : 나도 뭐 맨날맨날 좋았다.
-피아노앞 동현-
동 욱 : 꽝! 쳐볼래?
동 현 : 형이나쳐! 이제 이런 건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으니까.
동 욱 : 알았다 임마 슛 골인!
동 현 : 별꼴이다.
동 욱 : 몇년만이지? 무작정 가출한 게.
동 현 : 한.. 오년.
동 현 : 으윽!
동 욱 : 왜?
동 현 : 속옷까지 다 버렸는거, 지독한 비야.
동 욱 : 지독한 놈! 그럴게 아니라 윗도리좀 벗어봐.
동 현 : 괜찮아.
동 욱 : 괜찮긴 장마철일수록 몸을 마르게 해야돼.
-"여전하군"-동욱과 동현의 이중창
<동욱, 노래하면서 동현에게 옷을 입혀주는데 팬티와 티를 입혀주는데
티가 공교롭게도 정희의 옷이다.>
동 욱 : 뭐하고 지냈니?
정확히 오년하고 칠개월 팔일동안 뭐하고 지냈냐?
동 현 : 달력에 표시하고 지냈수?
동 욱 : 그동안 뭐하고 지냈냐구?
동 현 : 뭐 이것저것.
<하면서 동현이 개고 있는 빨래를 옆에서 이리저리 본다.
여성 빨래들이다.
그리고 기저귀도 있다>
동 현 : 형꺼유?
동 욱 : 네 눈엔 이게 내 것으로 보이니?
동 욱 : 용석이꺼야.
동 현 : 용석이?
동 욱 : 정희 아들.
동 현 : 둘째 누나?
동 욱 : 감기기운이 있는 애를 데리고 외출하다니.....걱정이구나.
동 현 : 그 독신주의자를 부르짖으며 자유로운 여성상을 위한 모임의 강력한 지도자가 되기를
목놓아 외치던 정희누나? 결혼은 곧 여성들의 무덤이라고 외치던 정희누나?
동 욱 : 그래, 벌써 3년이나 됐는가, 걔 결혼할때 말도 아니였어, 그 모임 회원들이
결.결.투.위 결혼 결사반대 투쟁 위원회까지 조직해서 막는걸, 제주도로 도망가서
결혼했다니깐, 그리구.. 용석인 다섯달만에 낳구.
동 현 : 젠장, 돌아버리겠군.
동 욱 : 그땐 나도 돌았었지. 얼른 옷이나 갈아입어.
동 현 : 형은 조카 보모노릇까지 하는 거야?
동 욱 : 나야 주말엔 시간이 있으니깐.. 혼자 있는것도 그렇구.
용석이 그 녀석이 얼마나 순한지 우유도 잘 먹고...영희야 그냥 집에서 살림만 하지만.
동 현 : 형.
동 욱 : 정희야 맞벌이인데다 주말엔 아이봐주는 사람도 없고해서 내가 좀 봐주고 있어.
녀석이 내 자장가를 아주 좋아해.
동 현 : 누가 앤지 모르겠다.
동 욱 : 실없는 자식! 너 왜이리 바짝 골았냐?
밥 아직 안 먹었지?
(빨래 보며)
동 현 : 빨래방도 차렸어?
동 욱 : (나오며)국 앉혀 놨다. 미역국인데..
동 현 : 누나 빨래까지 해주는 거야?
동 욱 : 그냥 세탁기가해.
동 현 : 젠장 (소파에 앉아)
그 좀생원같은 일좀 그만 둘 수 없어?
동 욱 : 그러지 말고 밖에서 지낸 얘기나해.
동 현 : 제발 이런 구질구질한 일좀 그만해.
동 욱 :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동 현 : (통증 감추며)형이 그런 식으로 하니깐 영희누나나 정희누나가 자꾸 그러는
거 아냐?
동 욱 : 하늘 아래 우리 사남매다.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지.
<동욱, 천천히 다가온다>
동 현 : 왜? 안돼.
동 욱 : 뭘 그렇게 놀래니? 세탁기안에 넣으면 돼.
동 현 : (화들짝 놀라면서)
동 욱 : 무슨 비밀스런 귀중품이라도 들었니?
거기 무슨 다이너마이트라도 들었냐?
동 욱 : 세탁기안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거지?
동 욱 : 그래. 이마. 세탁기가 해.
동 욱 : 마침 니가 좋아하는 조기찜도 올려 놨다.
그거 빨리 세탁기안에 넣어 안 그러면 냄새배.
동 현 : 알았어.
<동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동 욱 ; (빨래건조대 접으며)모두 모여서 저녁이나 했으면 했는데 생각지 않게
너만 왔구나.
동 현 : 왜? 나혼자 와서 섭섭해?
동 욱 : 그래 임마! 섭섭하다.
네가 올줄 알았으면 영희나 정희도 왔을 텐데데.....
다음 주말에는 꼭 그러자. 이번 주엔 일들이 다들 바쁘니깐.
동 현 : (소리)일은 무슨.....비도 오고하니까 나오기 싫어서......그런 거지....뻔하잖아!
젠장 화장실 물이 새잖아! 언제부터 샌 거야!
동 욱 : 꽤 됐어! 알다시피 난 그런 일엔 형은 젬병이잖냐.
동 현 : 어이 잠뱅이 내 가방 좀 줘.
동 욱 : 알았어. 잠뱅아.
<동욱, 그제서 동현이 가져온 가방을 본다.
동욱, 가방 들다가 손가락에 힘이 빠져 가방 놓친다.
연장들이 흩어진다.
동욱, 연장 바라본다.
동현, 나와서 연장들을 주워담는다.>
동 현 : 형두 몸 보신 좀 해야겠어. 이런 연장가방 하나 제대로 못들고.
동 욱 : (엄숙하게)좀 앉아라.
동 현 : (몽키 스패너 들고)그동안 수도요금 꽤 냈겠어.
동 욱 : (좀 더 굳어진 얼굴로)좀 앉아.
동 현 : 매형이라도 부르지 그랬어.
동 욱 : (버럭)앉아!
동 현 : 좋아. 그렇게 인상 쓰지 말라구(소파에 앉는다)
동 욱 : 어떻게 된 거야?
동 현 : 그냥 지방에 공사가 좀 있었어.
동 욱 : 공사?
동 현 :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지, 공사판 일도 할만하더라구.
동 욱 : 피아노 치는거 포기하고 하느 일이 겨우 공사판 일이냐?
동 현 : (비아냥거리며)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동 욱 : 이 장마철에도 공사를 해?
동 현 : 꼬치구이를 드셨나?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동 욱 : 동현아.
동 현 : 여기저기 쏘다녔지뭐. 젊은 놈들 다 그렇잖아.
동 욱 : 밥은 제때 먹고 다니긴 한 거야?
동 현 : 공사판 노가다라고 기니도 못 때우는 줄 알아?
동 욱 : 이 장마철에 공사도 없었을 텐데.
동 현 : 이거 무슨 냄새야?
동 욱 : (그제사)미역국!
<동욱, 황급히 부엌으로 간다.
동현, 몽키 스패너 연장가방에 넣고 연장가방 치우다 다시 어깨의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부엌에서 나오는 동욱 보며 다시 여유로운 미소 보인다>
동 현 : 국 다 쫄았겠다.
동 욱 : 얘기 좀 하자.
동 현 : 그래(담배 꺼내 피려는데)
동 욱 : 폐에도 안 좋다는 담배를.....
동 현 : 본론만 얘기해.
동 욱 : 알았어(재떨이 갖다 주며)쭉 그렇게 살았니?
동 현 : 뻔하잖아.
동 욱 : 언제까지 이럴 꺼야?
동 현 : 뭘?
동 욱 : 공사판 쫓아다니는 거.
동 현 : 그게 어때서.
동 욱 : 네가 다시 공부를 하겠다면...
동 현 : 공부하고 담쌓은 놈이란거 형이 더 잘 알잖아.
동 욱 : 다시 피아노를 치면 안되겠니?
동 현 : (일어나며)갈게.
동 욱 : (붙잡으며)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유나 좀 알자.
동 현 : 내가 뭘! 무슨 이유?
동 욱 : 넌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어. 그때 김교수님도 그러셨잖아.
근데 졸업도 하기 전에 군대로 내빼더니, 군대 갔다 오자마자 가출을 해?
왜 그랬니?
동 현 : 그냥 답답해서.
동 욱 : 그건 이유가 안돼!
동 현 : 하기 싫은 피아노 억지로 공부하는 건 이유가 되구?
동 욱 :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봐.
동 현 : 갈게.
동 욱 : 앉아!
동 현 : 이런 얘기 들을 줄 알았으면 안왔어.
<동욱, 나가려는 동현을 잡는다.
동현, 어깨의 통증 느끼며 어깨 감싸고 주저앉는다>
동 욱 : (놀라며)무슨 일이야? 왜 그래? 어디 아파?
동 현 : 한가지씩만 물어.
동 욱 : 뭐야? 팔은 괜찮아?
동 현 : 좀 삐었어. 공사판에선 다반사야.
동 욱 : (버럭)공사판 일은 그만뒤! 그러다 팔 병신이라도 되면 어쩔려구
그래, 아직 장가도 안간 놈이!
동 현 : (키득거리며)총각귀신 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피아노를 못칠까봐,
걱정하는 거 아냐?
동 욱 : ......
동 현 : 잘됐지 뭐. 그럼 형이 포기할 꺼 아냐.
동 욱 : 동현아!
동 현 :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환영인사가 너무 거친 거 아냐.
동 욱 : ....
동 현 : 술 좀 줄래?
<동욱, 장식장에서 술과 술잔을 꺼내 동현에게 따라 주려는데 동현 맥주를
병째 들이킨다>
동 현 : 형이 마시진 않을꺼구. 학생들이 선물로 준건가봐.
동 욱 : 아...아냐. 난 못마셔.
동 욱 : 왜 그러는지 이유나 알고 있자.
동 현 :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지.
동 욱 : 있지.
동 현 : 하기 싫은 게 이유야.
동 욱 : 그건 이유가 안돼.
동 현 : 그럼 뭐가 이유가 되지?
동 욱 : 다시 피아노를 해! 넌 할 수 있어.
동 현 : 코메디 해? 나 서른 하나야. 서른 하나에 피아니스트가 되라구?
말이 되는 소릴 해.
동 욱 : 넌 콩쿨에서 1등까지 한 놈이야.
동 현 : 고등학교 2학년때 일이야.
동 욱 : 교수님도 된다고 했어.
동 현 : 그 교수는 늘 그런 식으로 얘기해.
동 욱 : 내가 보기에 넌 돼!
동 현 : 내가 보기엔 안돼!(맥주병을 table에 거칠게 내려놓는다)
동 욱 : 동현아!
동 현: (애써 통증 참으며)형땜에 억지로 피아노 한거야. 알아?
동 욱 : 병원에 좀 가보자.
동 현 : 괜찮아.
동 욱 : 공사판 일은 네 적성에 맞구?
동 현 : 그런대로.
동 욱 : 넌 소질있어.
동 현 : 그런 소리 한번만 더 하면 여기서 뛰어 내릴 꺼야.
동 욱 : 어쩌다 이랬어?
동 현 : 신경꺼.
동 욱 : 난 말이야....
동 현 : 내 걱정말고 형이나 걱정해.
동 욱 : 내 걱정?
동 현 : 나이 사십에 아직도 노총각이라구! 그 인생으로 계속 그렇게 썩을 꺼야?
동 욱 : 그런 일이라면 난 옛날에 포기했다.
동 현 : 남자이길 포기한 거야? 그래?
동 욱 : 난........, 밥 차려올께.
동 현 : (잡으며)형이야말로 결정적인 순간에 피하려고 하지마!
동 욱 : 피하는거 아냐.
동 현 : 형은 늘 이런 식이야!
-"형은 늘 그런 식이야"-동현의 독창
동 현 : 그래서 결혼할 뻔한 조선생님도 놓쳤잖아.
동 욱 : 조선생님을 니가 어떻게 알았니?
동 현 :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해?
동 욱 : 저어, 조선생님은....같은 학교에 계시는 동료교사일뿐이야.
동 현 : 조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할까?
동 욱 : 난....
<초인종 소리>
동 욱 : (아주 반가운 듯)아마 정희일꺼야. 부장 집들이 가면서 들렀나 보다.....
널 보면 무척 반가워 할꺼야. 문 열렸다.
<그러나 계속 요란하게 울리는 초인종소리.
동욱, 동현에게 "그것 봐라"는 식으로 바라보며>
동 욱 : 쟨 늘 저렇게 전투적이라니깐!
<동욱, 가서 문 연다.
그러자 마자 갑자기 축포가 터지고 뛰어들어와 동욱과 동현의 주의를 돌며
혼이 빠지게 노래하며 춤추는 유미리.
하지만 그 춤과 노래라는게 영 시원찮다>
문을 열어주면-"결혼 축하해요"-유미리의 독창과 춤
미 리 : 결혼 축하해요.
<하다가 팬티차림의 동현을 보자 갑자기 비명지르며 밖으로 나간다>
동 현 : 형!
동 욱 : 동현아!
두사람 : (동시에)결혼했구나.
두사람 : (동시에)아니!
<얼굴 돌린채 다시 들어오는 유미리>
미 리 : 죄송하지만......여기다 사인을.....
<종이를 동현에게 내민다>
동 현 : 장미꽃 7만원, 케익 3만원......
동 욱 : (동현의 차림보고)동현아.....
동 현 : 노래 2만원, 춤 2만원....
동 욱 : 동현아....
동 현 : 보고 있잖아. 성냥 2만원...
동 욱 : 동현아......
동 현 : 왜 그래? 폭죽 만원, 포장비 5천원.
동 욱 : (동현의 아랫도리를 가리킨다)
동 현 : 진작 얘기를 하지!
<동현, 얼른 가서 피아노 옆에서 아무거나 입는데 그게 하필 치마다>
동 욱 : 누, 누구시죠?
미 리 : 웨딩센터에서 왔어요. 어색한 신혼의 분위기를 부드러운 무드로 꾸며
주는 쥑인다 웨딩센타요.
동 현 : 쥑인다 웨딩센타?
동 현 : 이름 한번 죽이네.
미 리 : (이제서 얼굴들 바로 보며)하지만 이런 건 계약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어요.
동 현 : 엉?
미 리 : 저어.....동성결혼은 우리 계약에 들어 있지 않거든요,
두사람 : 응?
두사람 : 동성결혼이라니?
미 리 : (치마 가리키며)거기가 와이프고, 여기가 남편이죠?
동 욱 : 저어 우린...
동 현 : 이봐요, 아가씨1
미 리 : 괜찮아요! 동성을 희구한다는 것은 그 뭐냐....사회가 갖는 관습에 대한
일탈이나 반항의 심리같은 것으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안적 가족관이라고나
할까요.
동 현 : 뭐예요?
미 리 : 그럼요, 밀레니엄. 즉 새로운 천녀이 도래하는 이 시기에, 또한 세기말인
1999년에 새롭게 조명해봐야할 결혼이죠.
동 욱 : 아가씨, 뭔가 잘못 생각한 거 같은데....
미 리 : (아주 빠르게)잘못된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연습이 없었다는거예요.
우리는 신혼이 될 수 있는 여러 예비자들을 상대로 서로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런 분위기는 첨이거든요. 잠시 생각할 여유를 주시겠어요.
학문적으론 이해를 했는데 직업적으론 쬐금 정리가 덜 됐거든요.
동 현 : 이봐요.
미 리 : 잠깐만 정리할 시간을 주시면 알맞는 분위기를 연출해 드리죠.
동 욱 : 말할 기회 좀 주겠어요?
미 리 : 물론이죠. 하지만 다 이해해요. 그럼요, 동성결혼이 갖는 말 못할 사회적
소외감과 외로움......단지 전......
동 현 : 이봐, 어딜 찾아온거요?
미 리 : 네?
동 욱 : 삼백 삼호 맞아요?
미 리 : 그럼요, 삼두아파트 삼백 삼호.
동 현 : 젠장, 그럼 그렇지.
미 리 : 왜요?
동 욱 : 여긴 삼영아파트 삼백삼호예요. 삼두아파트는 두 블록 더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미 리 : 삼두아파트가 아니라구요.
두사람 : (고개 끄덕인다)
미 리 : 나한다씨 집 아니에요?
동 현 : 나한다?
미 리 : 네.
동 현 : 하긴 뭘해.
동 욱 : 거, 이름 한번 끝내주는군. 나 한대.
-"실수투성이"-미리의 독창
미 리 : 젠장!
동 욱 : 괸찮아요? 아가씨 진정제 좀 갖다줄까요?
미 리 : 물 좀 주시겠어요?
<동욱, 부엌으로 간다>
미 리 : 어쩐지 이번엔 집을 쉽게 찾았다 했는데.....
동 현 : 집 찾는 덴 꼴통인가 보지?
미 리 : 비웃지 말아요.
동 욱 : 물 여기있어요.
<동욱, 부엌에서 물 갖다 준다.
미리, 벌컥 벌컥 물 마시고>
미 리 : 벌써 여섯집째 허탕이라구요. 하루종일 빗속에서 걸었는데.....
전화 좀 쓸게요.
동 욱 : 아.....
<미리, 동욱이 뭐라고 하기 전에 수화기 집어 들고 번호를 마구 누른다>
동 욱 : 쓰세요.
미 리 : 쥑인다 웨딩센타죠? 아 주선생님! 저 유미린데요......(하자마자 수화기에서
귀를 뗀다)죄송합니다.....그게 첫 번째 집에서 시간이 좀 늦어서.....
서울교통이 지옥통인데다......오늘은 비까지 내려서요......
두번째는 신혼부부를 잘못 알아서.....아니 그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신혼부분지
알았나요. 손자들쪽이 훨씬 그런 분위기라서.....세번째 는.......
(다시 수화기에서 귀때면서)내참 더러워서(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막는다)
그, 그래, 더럽다고 했다 왜?(이제는 이판사판이다)그래! 그래! 알았어!
그만두면 될꺼아냐! 그래. 거기서 관두라고 하기 전에 내가 관둬! 그래!
붙잡지나 말아라!
<수화기 거칠게 놓고 한참을 씩씩거린다.
동욱과 동현 불안하게 바라보는데 미리,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동욱, 동현에게 어떻게 달래보라고 하는데 동현도 동욱에게 미룬다>
동 욱 : 저어.....어떻게 좀 해봐.
동 현 : 뭘?
동 욱 : 난..... 여자 앞에선 말도 못하잖니?
동 현 : 난 하구?
동 욱 : 나보단 낫잖아.
동 현 : 젠장.
동 욱 : 어서!
동 현 : 이봐요, 아가씨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여긴......
미 리 : 무슨 냄새죠?
두사람 : (동시에 마주보며)조기찜!
<두사람,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간다.
와장창 부엌살림 떨어지는 소리.
미리, 진정하고 콧물 닦고 물건들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부엌에서 몽클몽클 솟아나오는 연기>
동 현 : (기침하면서 나오다)괜찮아요.
미 리 : 괜찮지 않음요. 이런 기분 이해해요? 어렵게 구한 첫 직장인데, 구한 지
8시간만에 그만둔 기분요.
동 현 : 알지요. 난 두시간만에 그만뒀으니깐.
미 리 : 두시간만에요/ 무슨 일인데요.
동 현 : 노가다
동 현 : 응. 스물 두 살 때였지, 그래도 지금은 기술자 소린 들어.
미 리 : 제 나이 때네요.
동 현 : 그래. 누구나 그 나이땐 실수를 하지요.
No.9-"언제나 그나이땐"-동현과 미리의 이중창
<노래 중간에 동욱 들어오다가 두 사람이 다정히 있자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현, 미리의 어깨를 다독거리려다 괜히 어색해서 헛기침을 하는데>
동 현 : 나도 그 나이엔 그랬는걸.
미 리 : 정말 그럴까요? 위로의 말은 아니겠죠? 전 혼자만 멍청한 것 같아
두렵기만 한걸요.
미 리 : 그렇게 안 보이는데.....노가다에요?
동 현 : 무슨 소리. 정확히 말해서 일용직 근로자라고나 할까.
미 리 : 어쨌든 고마워요(나가려고 한다)
동 현 : 가게?
미 리 : 그래야죠. 비도 퍼붓는데 공연히 집에 늦게 들어갔다간 집에서도 잔소릴
들어요. 이젠 백수가 됐으니 집에서라도 잘 보여야죠.
<미리, 일어나 가려는데 동현,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부엌쪽으로 보다가
미리를 붙잡는다>
동 현 : 잠깐! 잠깐만!
미 리 : 넷?
미 리 :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동 현 : (잡아 끌어 앉히며)오늘이 첫 출근이라고 했지?
미 리 : 첫출근이자 보시다시피 마지막 퇴근이죠.
동 현 : 그 퇴근을 성공적인 퇴근으로 마치고 싶지 않아?
미 리 : 그러고야 싶지만 이미 짤렸구, 고객도 없는걸요.
동 현 : 저...이리와서 앉아봐
미 리 : 왜요?
동 현 : 좀 앉아봐.
동 현 : 이런 행사해주는데 얼마야?
미 리 : 뭘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꽃과 케잌이 곁드리면 십만원선이고요.
노래까지 곁드리면 두장은 줘야돼요. 그리고 삼십만원 이상이면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해 드리죠.
동 현 : 그런걸 다 준비해 갖고 다녀?
미 리 : 그럼요.
동 현 : 좋아.
<동현, 피아노 의자 속에서 비닐봉투 꺼내서 그 속에 있는 돈을 센다.
미리, 슬쩍 보고>
미 리 : 와! 노가다 아저씨 돈 짱 많다.
동 현 : 쉬!
<동현, 그 돈 중에 몇장을 꺼내고 다시 피아노 의자속에 넣는다>
동 현 : 삼십만원이상이면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해준다고 했지. 자아! 삼십 일만원!
미 리 : 넷?
동 현 : 실은 오늘이 형 생일이야(진지하게), 결혼은 아니짐나 생일축하쇼도 물론 하겠지?
미 리 : 생일요?
동 현 : 늘 속만 썩힌 동생이라..... 오늘만은 좀 즐겁게 해주고 싶거든.
미 리 : 글쎄요. 근본적으로 결혼과 생일은 다르지만 철학적으로 동질성을 가지고
있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는 점에서요.
동 현 : 꽤 어려운 말을 하네.
미 리 : 이래뵈도 동양철학과를 전공했거든요.
동 현 : 동양철학을 했다니 철학적으로 부탁인대 난 급진개혁파거든, 근데 형은
점진보수파야, 그래서 말인데 나한테 돈 받은 거 비밀로 하고 아가씨가
개인적으로 축하해주는 걸로 하면 안될까?
미 리 : 제가 개인적으로요?
동 현 : 철학적으로 비밀로 해야 하거든, 우린 소 닭보는 사이라서.
미 리 : 형하고 그렇게 사이가 나빠요?
동 현 : (돈 그냥 거두며)싫음 말구!
미 리 : (돈 잡으며)싫긴요. 근데 어떻게 생일을 알았다고 하죠?
동 현 : 그냥. . . 그런 예감이 들었다고 하지 뭐. . .
미 리 : 좋아요! 계약!
동 현 : 계약!
미 리 : 가요!
동 현 : 어딜?
미 리 : 형님집요.
동 현 : 여기가 형님집이야!
미 리 : 어머, 형님이 이해심이 참 좋은신가봐요. . . 동성결혼을 한 동생을. . .
동 현 : 응?
미 리 : 아, 아녜요. 그럼 형님은 언제 오시죠?
동 현 : 무슨 소리야?
미 리 : 형님이 오셔야 일을 하죠.
동 현 : 부엌에 간 사람이 우리 형이야.
미 리 : 저어. . . 동성애인 아니구요?
동 현 : 애인? 젠장, 내가 그렇게 보여?
미 리 : 의상이. . .
동 현 : 그렇게 됐어. 준비하자구.
미 리 : 좋아요. 노가다 아저씨도 도와줘요.
동 현 : 도와줘? 그쪽이 다 하는 거 아니구?
미 리 : 무슨 소리에요. 아저씨도 쇼 의상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구요!
동 현 : 난. . . 그런 낯 간지런 일은 못해!
미 리 : 어서요!
동 현 : 안돼! 못해!
M15-"형님을 위해"-미리와 동현의 이중창과 춤
<미리와 동현의 실랑이가 끝나고 부엌에서 소리난다.
동현과 미리 모두 숨으며>
동 현 : 조명실
<무대 위의 불 다 나간다.
동욱이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동 욱 : 어쩜 그렇게 까맣게 타도록 몰랐을까? 어? 여기 왜 또 이렇게 까매?
동현아! 동현아!
<하자 와학 불 켜지며 축포가 터진다.>
동 욱 : (당황하며)또 결혼하니?
미 리 : 생일 축하합니다.
동 현 : (무척 놀란 듯)형 생일이였어? 그랬으면 진작 얘길하지!
동 욱 : 아니 어떻게. . .
동 현 : 그게. . . 저어. . .
미 리 : 별자리에 다 나와 있어요.
동 욱 : (동현에게)네가?
동 현 : 내가 알 리가 있어. 갑자기 이 아가씨가 형 관상을 보더니 오늘이
생일이래잖아.
미 리 : 이래뵈도 동양철학을 공부했거든요.
동 현 : 엉겁결에 나도 광대가 됐다구, 하여튼 낯간지럽지만 축하해.
미 리 : 그런 축하가 어딨어요? 아마 제가 여기 온 건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인 것 같아요.
동 욱 : 운명?
미 리 : 네, 축복 받을 운명같은 거 말이에요.
동 욱 : 그런 거창한. . .
동 현 :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미 리 : 자아 즐거운 파티를 시작하죠!
M16-"즐거운 파티"-동욱, 동현, 미리의 삼중창과 춤
<미리에 의해 어울리지 않는 파티모자까지 쓴 동욱.
세사람의 즐거운 춤과 노래.
동욱, 춤추는 동안, 동욱의 주머지에서 진단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미리, 노래가 끝날 즈음 케이크를 꺼내 놓는다.>
미 리 : (초 꺼내들고)몇 살이죠?
동 현 : 형, 연세, 춘추!
동 욱 : 서른 아홉. . .
동 현 : 형!(꼬집는다.)
동 욱 : 만으로.
동 현 : (고개 젓는다.)똑바로
동 욱 : 마흔
미 리 : 어머, 어쩌죠? 초가 모자라는 데.
동 욱 : (일어서며)부엌서랍에 많이 있어요. 내가 갔다 올께요.
동 현 : (형 앉히며)내가 가져올께, 주인공은 기다리고 있어.
동 욱 : 야! 나 혼자 못해.
동 현 : 주인공은 이라따운 아가씨랑 얘기나 하고 있어.
동 욱 : 못해. 넌 어디있는 줄도 모르잖아. 내가 찾아볼께.
동현아, 알았어. 아이~ 꼭꼭 숨겨놨는데.
동 현 : 얼른!
<동현,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동욱에게 파이팅 사인을 한다.
단 둘이 남은 동욱과 미리.
동욱, 자신도 모르게 자꾸 떨린다.>
미 리 : 축하해요.
동 욱 : (떨며)고마워요... 이런 생일파티는 첨이예요.
미 리 : 뭘요.
<어색한 침묵.
동욱, 자신도 모르게 미리의 짧은 치마에 시선이 간다.
미리 시선 느끼고>
미 리 : 좀 짧죠.
동 욱 : 네, 좀 그렇군요.
미 리 : (치마 억지로 끌어서 당긴다.)
동 욱 : (어색해서)아마 초를 못 찾나봐요.
미 리 : (어색하게)그런가봐요.
동 욱 : (부엌에 대고)싱크대 두 번째 서랍에 봐.
<부엌에서 우당탕 소리난다.
동욱도 안절부절 하다가 흔들의자에 있는 뜨개질 도구에 시선이 간다.
얼른 뜨개질 도구 가져다 뜨개질 시작한다.>
동 욱 : 좀 거친 녀석이죠?
미 리 : (빤히 보며)좀 그러네요.
동 욱 : (좀 편안해지면서)막내라 그런 면도 있어요.
미 리 : 네.
동 욱 : 위로 누나가 둘 있는데 둘 다 시집갔어요.
미 리 : 네.... 하지만 맘은 참 좋아보여요.
<우당탕 소리, 떠들석한 소리>
동 현 : (소리)젠장!
동 욱 : 그랬었죠.
미 리 : 뜨개질을 좋아하시나봐요?
동 욱 : 맘이 좀 진정되죠.
미 리 : 네... 뭘 뜨세요?
동 욱 : 알아맞춰 보세요.
미 리 : 목도리?
동 욱 : 쉐탄데. . .
미 리 : 아. . .. 네. . .. 그러고보니 쉐타처럼 보이네요.
동 욱 : 그. . .렇죠. . .
미 리 : 네. . ..
<어색한 침묵.
그럴수록 동욱의 뜨개질 솜씨는 빨라진다.>
미 리 : 준비가 덜 됐죠.
동 욱 : 넷?
미 리 : 결혼 40주년 되는 분들은 별로 없거든요, 초는 두개나 세개정도만
준비하면 된댔어요... 죽인다 웨딩센타에서요.
동 욱 : 아, 넷.
미 리 : 요즘은 이혼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웨딩센타 산업도 전망이 매우
밝대요. 한 사람을 고객으로 하고 있으면 서너번 고객이 될 수 있거든요.
동 욱 : 그렇겠군요.
미 리 : (동시에)결혼하셨어요?
동 욱 : (동시에)결혼하셨어요?
두사람: 아뇨!
미 리 : 이제 겨우 졸업반인걸요.
동 욱 : (부러운 듯)좋을 떄다.
미 리 : 좋긴요! 취직은 안돼죠. 집에선 닥달하죠. 친구들 보면 벌써 직장 잡아서
제 갈길을 가는 데, 전 뭘 해야할지도 모르고 (한숨 내쉬며) 빨리 나일
먹었으면 좋겠어요.
동 욱 : 그렇지도 않아요. 전 할 일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은 걸요.
미 리 : 그래도 직장이 있잖아요. 직업이 뭐예요?
동 욱 : 중학교 음악선생요.
미 리 : 어머, 너무 좋겠다.
동 욱 : 생각만큼 좋지도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음악선생이라 담임도 맡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늘 음악실에 혼자 있죠. 공부하는 시간이거나 부족한 잠을
때우는 시간 정도밖에 여기지 않아요.
미 리 : 제가 학교다닐 떄, 음악시간이 제일 좋았는데.
동 욱 : (뜨개질을 멈추고)정말요?
미 리 : 그럼요, 더구나 음악선생님을 짝사랑하기까지 했는걸요.
동 욱 : 전 나름대로 이 음악 저 음악 들려주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시간뿐인데다
다들 영어,수학밖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깐... 자꾸 힘이 빠져요.
<동현, 초 가지고 나오다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들고 본다.
동현, 얼굴이 굳어진다.
동욱과 미리는 알지 못하고 대화에 열중한다.>
미 리 : 제 나이때는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
동 욱 : . . . . 말 못해요.
미 리 : 말해 보세요.
동 욱 : . . . .
미 리 : 어서요.
동 욱 : 피. . 피아니스트요. . .
미 리 : 지금도 피아노를 치시잖아요.
동 욱 : 피아노는 저보다 동현이가 잘 쳤죠.
미 리 : 노가다 아저씨가요?
동 욱 : 콩클에서 1등을 해서 피아노까지 탔는걸요. 보세요, 이 피아노예요.
미 리 : 아, 그래서 피아노가 두 대군요.
동 욱 : 함께 라흐마니노프를 칠 땐. . . . 너무 행복했어요.
미 리 : 근데 왜 노가다가 됐어요?
동 욱 : 그건. . . . .
<미리, 동현을 발견하고>
미 리 : 노가다 아저씨! 피아노 친다는 거 정말이예요?
동 현 : . . . . . .
동 욱 : 초 못 찾았구나. 그러게 내가 가져온다니깐.
동 현 : 계속 숨길 생각이였어?
동 욱 : 뭘?
동 현 : 왜 그 모양이야!
동 욱 : 그게 무슨 말이야?
동 현 : (동욱 앞에서 진단서 보인다.)이게 뭐야?
동 욱 : (얼른 주머니 속을 뒤져보다가)어디서 찾았니?
동 현 : 바닥에 떨어져 있더군.
미 리 : 뭐예요? (힐금보며)진단서 같은데. . .
동 욱 : (얼른 빼앗아 주머니에 넣으며)별 거 아냐.
동 현 :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데도 별 거 아니라구? . . . 형은 음악선생이야.
손가락이 마비되는데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미 리 : 세상에. . . . .
동 욱 : 나중에 얘기하자.
동 현 : 형!
동 욱 : 그런 얘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손님도 계시잖니.
동 현 : 온 몸이 다 굳은 뒤에.
동 욱 : 동현어!
미 리 : (얼른 일어나)초. . . 초 가져올께요.
<미리,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 욱 : 아니. . . .초는. . .
동 현 : (동욱 잡으며)형!
동 욱 : . . . 심각한 거 아냐.
동 현 : (화를 참으며)누나들도 알아?
동 욱 : 뭐 좋은 일이라구. . . .
동 현 : 늘 그런 식이야! 그런 식으로 혼자만 잘났다구. 도대체 슈퍼맨이라도
되는거야? 이런 식으로 형 인생을 허비해서 어쩌자는 거야?
동 욱 :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이 어떻게 인생을 허비한 거냐?
난 한번도 그런 생각헤 본 적 없다. 나는 말이다. . . .
동 현 : 그만!
M16-"내 꿈은 바로 너야"-동욱과 동현의 이중창
동 현 : 그만! 그만! 그만!
동 욱 : 동현아, 이제 다시 시작하자. 넌 피아노를 치고. . . . 난 . . . 그래,
뜨개질을 해도 괜찮겠지. 수예점을 열까? 그래, 그게 좋겠다.
동 욱 : 다들 나보고 솜씨가 좋데니깐. . . .그래, 영희가 시간이 좀 있으니깐.
도와줘도 되구. . . . 모두 네 장래를 위해서. . . .
동 현 : 제발 형 생각을 내게 강요하지마.
동 욱 : 동현아. . . .
동 현 : 형은 항상 우리의 장래를 막아왔을 뿐이야! 왜 영희누나가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는줄 알아! 정희누나는 왜 그렇게 열렬한 페미니스트처럼 미친 듯이
밖으로 돌았는 줄 알아? 다 형 때문이야! 형의 그 짐스러운 간섭!
아니, 형 인생을 저당잡히고 우릴 돌본다는 그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거라구!
동 욱 : 동현아. . . .
<동욱,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린다.>
동 현 : 우린 늘 답답했어. 가난이, 이 집이, 그리고 우리에게 매달려 사는 형이!
동 욱 : . . . . .
동 현 : 우리에게 뭘 바라는 거야? 현모양처, 세련된 직업여성, 훌륭한 피아니스트!
형, 현실을 직시해! 우린 현모양처도, 세련된 직업여성도, 그리고. . . 피아니스트도
아니야. . . .우린 그저 평범한 우리일뿐이라고!
동 욱 : . . . (나즉히)나라고. . .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은 줄 아니. . . . 너희들만 없었다면. . .
그래, 나도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을꺼야. . . .
동 현 : 그런데 왜 조선생님을 그냥 보냈지?
동 욱 : 조선생님은 . . . 그냥 동료교사일뿐이야.
동 현 : 조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동 욱 : (바라본다.)
동 현 : 조선생님이 형하고 결혼할뻔한 거 알아. 나땜에 깨진거지. 그래, 형은 날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으니깐. . . . 내 뒷바라지를 해야했고. . . .
조선생님이 원한 건 형의 사랑이였어! 피아니스트 시동생이 아니라. . .
그냥 동료교사. . . .훗훗훗. . . 조선생님이 찾아와 한 얘기가 있어.
형을 설득해달라고. . . 하지만 난 형을 알아. . . . 내가 말한다고 들을 형이
아니란 걸. . . .
동 욱 : 그럼 네가 집을 나간. . . .
동 현 : 그래, 형의 기대가 무거웠어. 모래짐을 나르는 것보다 더 무거웠다고.
동 욱 : 동현아, 그런거라면 다시 시작하자.
동 현 : 싫어! 제발 이제 그만해! 제발 현실을 바로 보라구!
동 욱 : 동현아!
동 현 : 난 형이 아냐! 현실을 바로 봐. 형은 날 통해 형이 피아니스트가 되려한 거라구!
알아!
동 욱 : (눈 질끈 감으며)
동 현 : 이제 더 이상 형의 희생은 필요없어! 더 이상 필요없다구.
동 욱 ; 이 자식, 이 자식, 이 자식아!
<동욱, 동현을 주멱으로 때린다.
미리, 황급히 부엌에서 뛰어나온다.>
미 리 : 왜들 이러세요?
동 현 : 이제 속 시원해? 더 이상 뭘 바라는 거야? 우리들 땜에 형 인생을 포기했다는
위안을 얻고 싶은 거야?
동 욱 : 나가!
동 현 : 누나들이나 내가 얼마나 형을 부담스러워 하는 줄 알아?
동 욱 : (돌아선다.)
<동현, 일어나 피아노 의자에 있는 비닐봉투속의 돈을 꺼내 동욱에게 던진다.>
동 현 : 형에게 진 빚이야!
동 욱 : (말없이 바라본다.)
동 현 : 형이 허비한 인생에 대한 빚이야! 하지만 이 돈이 지금와서 무슨 소용이 있지?
형은 지금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도, 병원에 함께 가줄 사람도 없는데. . . .
미 리 : 그만하세요, 너무 심하잖아요.
동 현 : 그게 마흔 생일날 보는 형의 인생이라구.
미 리 : 이러지 마세요. 오늘은 주인공을 기쁘게 해주는 날이잖아요.
동 현 : 그저 우연히 찾아 들어온 여자에게 축하나 받고 괜히 웃음짓는 형꼴이
어떤줄 알아? 어떤 줄 아느냐구!
미 리 : 그만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전 적어도 마흔이나 서른이 되면 이거보다
나을꺼라고 생각했어요....그런데 뭐죠? 서로에게 할퀴고 상처주면서
형제라는건가요? 이러지 말아요! 형은 환자고 오늘은 생일이라구요!
그리고 동생분은 형님을 사랑해요... 오늘이 생일이란걸 알려준 분도
동생이시구요......일부러 축하하러 이 비를 뚫고 왔데요....그런데 뭐죠?
이게 형제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인가요?
동 욱 : .....
동 현 : ......
미 리 : (짐 싸들고 나가며)계속들 할퀴고 싸우며 사세요! 젠장!
<미리 나간다>
No.14-B.G
<침묵>
동 욱 : ......미안하다.
동 현 : 지금이라도 조선생님이 결혼하자면 할꺼야?
동 욱 : 무슨 돈이냐?
동 현 : (돈 주워 모으며)노가다판에서 모은 돈하고 보상금.
동 욱 : 보상금?
동 현 : 어깨 빠진.
동 욱 : .....
동 현 : ....형.
동 욱 : 왜?
동 현 : 이제 우리 뭐하지? 노가다판 인생 어깨 빠졌구, 음악선생 손가락은 그 모양이니.....
동 욱 : 밥이나 먹지 뭐.
동 현 : (힘없이)젠장......
<동욱,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는 방안을 정리한다.
동현, 가만히 서있다 자신도 하나씩 도와준다.
동욱, 피아노 앞에 와서 피아노 어루만지며>
동 욱 : 이젠 피아노 영희네하고 정희네한테 줘야겠다.......둘다 병신이니.
<동욱, 천천히 어루만지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천천히 피아노 치기 시작한다>
-"고향의 봄"-동욱의 연주.
<그 음악에 이글리듯 피아노 앞으로 다가오는 동현.
나즉히 흐르는 음악.
그러나 연주 도중에 손가락이 마비된 듯 음정이 틀린다.
서너 차례 반복하다가 피아노 앞에 무너지듯 고개 숙이는 동욱.
동현, 천천히 다른 피아노 옆에 가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동욱이 틀린 부분부터
연주하기 시작한다.
동욱, 동현쪽을 바라본다.
동현과 눈이 마주치는 동욱.
동욱,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동욱과 동현의 이중주
<호흡은 때로는 빨라지고 때로는 늦어지면서 아주 좋은 하모니를 이룬다.
두 대의 떨어져 있던 피아노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하나가 된다.
마침내 연주 마친 두 사람.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손 내밀어 악수를 한다.
어느 새 들어와 박수를 치는 미리>
동 현 : 안 갔어?
미 리 : (동욱 몰래 동현에게 아까 받은 돈 주며)하던 일은 끝내고 가야죠.
<미리, 초를 하나씩 주고 성냥을 동욱에게 켜 준다.
동욱, 초에 차례로 불 붙인다.
동현의 초에, 미리의 초에, 그리고 초 하나는 미리 케이크에 꽃혀있다.>
미 리 : 소원을 말하세요.
동 욱 : (동현의 손을 꽉 잡으며)내 소원은 벌써 이루어졌는데요.
미 리 : 그럼 그 소원이 계속 되길 비세요.
<두형제가 마주본다. 동현이가 나가라고 얼굴짓하며>
-"사랑"-동욱, 동현, 미리의 삼중창
<세사람, 촛불을 중심으로 모인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띄다 촛불을 끄는 동욱.
옆에서 도와주는 동현과 미리.
잠시의 어둠.
이어 환상적인 조명빛이 들어오면 스냅사진처럼 초를 불고 있는 세사람의
정지된 모습 보이면 다시 천천히 어두워지는 무대>
No.17-"OVERTURE"-반복
오은희/작
[등장인물]
정동욱 : 남. 40세. 중학교 음악교사
정동현 : 남. 31세. 공사판 일용직 근로자.
유미리 : 여. 22세. 웨딩센타 아르바이트생.
[막이 오르기 전에 들리는 빗소리와 음악소리]
M1-OPENING-빗소리와 함께 들리는 실내악( 맑은 피아노소리 )
<막이 올라가면서 빗소리 점점 작아지고 음악소리도 점점 작아진다.
조명 서서히 밝아진다.
소박한 거실의 풍경.
격자무늬의 유리창 너머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유리창 한쪽에 흔들의자가 놓여있다.
흔들의자 위에 놓여져 있는 뜨개질바늘과 털실바구니.
거실 한쪽 뒷면에는 피아노가 두 대 떨어져 놓여있고,
그 옆으로 빨래 건조대가 있다.
건조대위에 널린 여성속옷과 기저귀들.
거실 중앙에는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고, 벽면에는 사진액자가 걸려있다.
사진액자는 교복차림의 여고생 두 명과 교모를 쓴 남중생을 두팔로 가득
안고 찍은 남자의 모습과 상장과 꽃다발을 든 남고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남자의 모습이 있다.
그 남자는 동일한 인물이다.
앞치마를 두른 동욱 촛대와 테이블 보를 들고 등장한다.
동욱은 사진 속의 그 남자다.
동욱,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밑으로 내려놓고 그 위에 테이블 보를
정성스럽게 깔고 그 위에 촛대를 놓아둔다.
테이블 보는 손뜨개된 것이다.
동욱, 앞치마 앞에서 걸레 꺼내서 피아노도 닦고, 소파도 닦으면서
신나게 청소하며 노래한다.>
M2-"모두 모이는 거야'-동욱의 독창
<동욱, 만족스러운 듯 흥얼거리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울리는 전화벨.
동욱, 국자 들고뛰어 나와 소파로 몸을 날린다.>
동 욱 : 간다 가!
<동욱, 테이블 위를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전화기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그제서, 전화를 테이블 밑에 둔 걸 깨닫고, 전화기 꺼내 받는다.>
동 욱 : 여보세요, 아, 영희구나, 잠깐만....
<동욱, 일어나 리모콘으로 음악 끄고 소파에 앉아 전화 받는다.
전화 받는 동안에도 연신 소파와 테이블 위를 정리한다.
아주 깔끔하게 각도까지 맞취가면서>
동 육 : 응, 뭘 좀 만드느라고, 넌 어때? 그래, 장마철이라 더니....지겹게 오는
구나. 오늘? 토요일이라 일찍 왔지 뭐. 왜 여태 출발 안 했어? 잠실서
예까지 오려면 꽤 막힐 텐데......전철 타고 오게? 하긴 술 한잔 하려면
차 놓고 오는 것도 좋지......, 못 와......(실망한 표정 애써 감추며)
아, 아니다......시어머님 오신다는데 하는 수 없지 뭐.
상의할 일.......별 일 아니고....그냥 같이 모여서 밥이나 한끼 먹자는거지,
얼굴 본지도 오래됐고.......신경 쓰지마, 그래. 아, 난 괜찮대 두.
그나저나 시어머님 드실 음식은 좀 장만했니? 아니, 얘가 얘가!
오랜만에 부산서 올라오신다는데. 얼른 끊고 시장 가봐! 봄 나물이 제철이라
꽤 입맛이 당길 게야. 시장 파하기 전에 어서 가봐, 그럼 끊자!
<동욱, 실망한 것을 감추기 위해 바삐 전화 끊으려는데 전화 저편에서 뭔가
얘기하는지 다시 수화기 귀에 대고>
동 욱 : 응? 소라 조림하게? 그래, 어른들에겐 괜찮은 반찬이지. 그거 간단해.
지금? 좋아(빠르게)우선 소라하고 장조림간장, 사골국물, 고춧가루, 다진
마늘, 사과와 양파 간 것, 물엿, 설탕, 청주, 잣을 준비하고....빨랐지?
알았어. 이 오빠가 차근차근 불러줄게.
M3-"요리노래'-동욱의 독창
동 욱 : (노래 끝나고) 그리고 소라조림은 .....(달칵 끊기는 전화기소리)
......(빈 수화기에 대고)그래, 맛있게 만들어. 그래야 시어른들께 사랑받지.
<동욱, 실망해서 수화기 놓고 부엌으로 들어가려는데 다시 울리는 전화벨.
동욱, 신나서 다시 가서 수화기 든다>
동 욱 : 또 뭘 잊었.....아, 정희구나. 난 영흰줄 알고.....그래, 방금 전에
니 언니랑 통화했다. 시어른들이 오셨다지 뭐냐. 뭘 장만할까 고민 고민하더라
....뭐? 너희들도 못 와.......신경 쓸 것 없어. 직장상사집들이라는데......
거기 가야지. 갈땐 빈손으로 가지 말고......알았어, 공연한 노파심에서
해 본 말이야. 민서방은 잘 있지? 어이, 민서방인가.....아니야,
그저 함께 모여서 밥이나 한끼 먹자는 건데......
다음 기회에 하지뭐......그럼 부장님 초대라는데......최서방네두 힘들 다는군.
.....오늘만 날인가 뭐....(밖보며) 비오는데 운전 조심하고......아, 정희냐?
왜? 그래, 월요일 퇴근 길에 들려 다 다려 놨다.
그래! 근데 웬만하면 주름치마는 안 보낼 수 없냐? 아냐, 괜찮아.
어차피 내 옷 빨면서 하면 되는 건데......세탁소는 뭐......오늘 용석이
안 봐줘도 되니? 그래? 참 용석이가 감기 기운이.....
<하는데 이미 저편의 전화가 끊긴 듯 "뚜우"소리가 난다.
수화기를 한참을 들고 있는 동욱>
동 욱 : 단단히 옷 입혀 가야겠더구나......아니 참 얘가 기관지도 약한 애를......
<그러나 신호음만 들리는 전화기.
동욱, 수화기 놓다가 손이 저린 듯 수화기 떨어뜨린다.
동욱, 손을 천천히 접었다 폈다 해본다.
주머니에서 꺼내보는 종이쪽지(진단서).
한숨 내쉬고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다 수화기 전화에 올려 놓고 일어나 천천히 앨범이 달린 벽으로 가서
사진들 보며 노래한다.>
M4-"아무도 오지 않는 밤"-동욱의 독창
<동욱, 노래 끝나고 천천히 불 끄고 흔들의자에 가서 대바늘로 뜨개질을 한다.
이어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비에 흠뻑 젖은 한 남자가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들어온다.
그의 어깨에 매어져 있는 연장가방.
마치 도둑처럼 소리내지 않고 여기 저기 살펴본다.
흔들의자는 들어오는 문과 반대방향으로 있어서 들어온 남자는 흔들의자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동욱이 보이지 않는다.
남자, 돈이 될만 한 것을 살피는지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사진액자를 바라본다.
동욱, 흔들의자에서 일어서다가 남자를 발견하고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다가
못찾아 그냥 "물 스프레이"를 뽑아 위협하며>
동 욱 : 꼼짝마!
<순간, 뒷모습의 남자 놀란 듯 고개를 숙인다.>
동 욱 : 난 지금 가스총을 들고 있으니깐 섣불리 행동했다간 목을 찔러 버릴 꺼야!
손들어!
<남자, 한 손든다>
동 욱 : 두 손 다들어!
<남자, 마저 한 손들어 올린다>
동 욱 : 천천히 밖으로 나가! 아주 천천히!
<남자,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동욱, 얼른 불 키고 문 닫으러 현관문쪽으로 가서 문 닫으려는 순간 활짝 열고
들어오는 남자.
동욱, 물 스프레이를 휘저으며 한바탕 싸움을 벌리며 하지만 이마 상대편의 힘에
눌려 남자 밑에 깔린다.
남자, 주먹을 들어 치려는 포즈를 잡으며>
남 자 : 그게 가스총이야!
동 욱 : 아니!
남 자 : 아예, 문을 활짝 열어놓지 그래.
동 욱 : 너!
남 자 :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문을 열어두고 있어.
동 욱 : 도대체!
남 자 : 자 이제됐어.
동 욱 : 동현아!
동 현 : 그 가스총 언제까지 들고 있을 거야.
동 욱 : 정말 동현이 맞아!
동 현 : (손 내밀며)잘 지냈어?
동 욱 : 정동현!
동 현 : 언제까지 들고 있을 꺼야!
동 욱 : (물 스프레이 던지며)정동현!
동 현 : 이름 닳겠수, 그만 불러! 여기 있는 사람 동현인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
형 막내 동생 정동현!
<동현, 손잡아 동욱 일으켜 준다>
동 욱 : 이 자식!
<동욱과 동현 서로 반가움의 사인을 주고받는다.
동욱, 갑자기 반가움에 와락 어깨를 치자 동현, 비명 지르며 주저앉는다>
동 현 : 악!
동 욱 : (놀라서)뭐야?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동 현 : (이내 웃으며)속았지!
동 욱 : 짜식, 사람 놀래키는 건 여전하군.
동 현 : 형이야 말로(형말투 흉내내며)뭐야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그 잔소린 여전하군.
동 욱 : 저런 다 젖었구나, 우산은?
동 현 : 깜빡했지 뭐.
동 욱 : 예전에도 맨날 우산없이 다니더니....야임마 잠깐 기다려. 감기 들라라.
(화장실로 들어감)
동 현 : 어떻게 지냈어?
동 욱 : 맨날맨날 좋았다. 너는 어떻게 지냈냐?
동 현 : 나도 뭐 맨날맨날 좋았다.
-피아노앞 동현-
동 욱 : 꽝! 쳐볼래?
동 현 : 형이나쳐! 이제 이런 건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으니까.
동 욱 : 알았다 임마 슛 골인!
동 현 : 별꼴이다.
동 욱 : 몇년만이지? 무작정 가출한 게.
동 현 : 한.. 오년.
동 현 : 으윽!
동 욱 : 왜?
동 현 : 속옷까지 다 버렸는거, 지독한 비야.
동 욱 : 지독한 놈! 그럴게 아니라 윗도리좀 벗어봐.
동 현 : 괜찮아.
동 욱 : 괜찮긴 장마철일수록 몸을 마르게 해야돼.
-"여전하군"-동욱과 동현의 이중창
<동욱, 노래하면서 동현에게 옷을 입혀주는데 팬티와 티를 입혀주는데
티가 공교롭게도 정희의 옷이다.>
동 욱 : 뭐하고 지냈니?
정확히 오년하고 칠개월 팔일동안 뭐하고 지냈냐?
동 현 : 달력에 표시하고 지냈수?
동 욱 : 그동안 뭐하고 지냈냐구?
동 현 : 뭐 이것저것.
<하면서 동현이 개고 있는 빨래를 옆에서 이리저리 본다.
여성 빨래들이다.
그리고 기저귀도 있다>
동 현 : 형꺼유?
동 욱 : 네 눈엔 이게 내 것으로 보이니?
동 욱 : 용석이꺼야.
동 현 : 용석이?
동 욱 : 정희 아들.
동 현 : 둘째 누나?
동 욱 : 감기기운이 있는 애를 데리고 외출하다니.....걱정이구나.
동 현 : 그 독신주의자를 부르짖으며 자유로운 여성상을 위한 모임의 강력한 지도자가 되기를
목놓아 외치던 정희누나? 결혼은 곧 여성들의 무덤이라고 외치던 정희누나?
동 욱 : 그래, 벌써 3년이나 됐는가, 걔 결혼할때 말도 아니였어, 그 모임 회원들이
결.결.투.위 결혼 결사반대 투쟁 위원회까지 조직해서 막는걸, 제주도로 도망가서
결혼했다니깐, 그리구.. 용석인 다섯달만에 낳구.
동 현 : 젠장, 돌아버리겠군.
동 욱 : 그땐 나도 돌았었지. 얼른 옷이나 갈아입어.
동 현 : 형은 조카 보모노릇까지 하는 거야?
동 욱 : 나야 주말엔 시간이 있으니깐.. 혼자 있는것도 그렇구.
용석이 그 녀석이 얼마나 순한지 우유도 잘 먹고...영희야 그냥 집에서 살림만 하지만.
동 현 : 형.
동 욱 : 정희야 맞벌이인데다 주말엔 아이봐주는 사람도 없고해서 내가 좀 봐주고 있어.
녀석이 내 자장가를 아주 좋아해.
동 현 : 누가 앤지 모르겠다.
동 욱 : 실없는 자식! 너 왜이리 바짝 골았냐?
밥 아직 안 먹었지?
(빨래 보며)
동 현 : 빨래방도 차렸어?
동 욱 : (나오며)국 앉혀 놨다. 미역국인데..
동 현 : 누나 빨래까지 해주는 거야?
동 욱 : 그냥 세탁기가해.
동 현 : 젠장 (소파에 앉아)
그 좀생원같은 일좀 그만 둘 수 없어?
동 욱 : 그러지 말고 밖에서 지낸 얘기나해.
동 현 : 제발 이런 구질구질한 일좀 그만해.
동 욱 :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동 현 : (통증 감추며)형이 그런 식으로 하니깐 영희누나나 정희누나가 자꾸 그러는
거 아냐?
동 욱 : 하늘 아래 우리 사남매다.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지.
<동욱, 천천히 다가온다>
동 현 : 왜? 안돼.
동 욱 : 뭘 그렇게 놀래니? 세탁기안에 넣으면 돼.
동 현 : (화들짝 놀라면서)
동 욱 : 무슨 비밀스런 귀중품이라도 들었니?
거기 무슨 다이너마이트라도 들었냐?
동 욱 : 세탁기안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거지?
동 욱 : 그래. 이마. 세탁기가 해.
동 욱 : 마침 니가 좋아하는 조기찜도 올려 놨다.
그거 빨리 세탁기안에 넣어 안 그러면 냄새배.
동 현 : 알았어.
<동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동 욱 ; (빨래건조대 접으며)모두 모여서 저녁이나 했으면 했는데 생각지 않게
너만 왔구나.
동 현 : 왜? 나혼자 와서 섭섭해?
동 욱 : 그래 임마! 섭섭하다.
네가 올줄 알았으면 영희나 정희도 왔을 텐데데.....
다음 주말에는 꼭 그러자. 이번 주엔 일들이 다들 바쁘니깐.
동 현 : (소리)일은 무슨.....비도 오고하니까 나오기 싫어서......그런 거지....뻔하잖아!
젠장 화장실 물이 새잖아! 언제부터 샌 거야!
동 욱 : 꽤 됐어! 알다시피 난 그런 일엔 형은 젬병이잖냐.
동 현 : 어이 잠뱅이 내 가방 좀 줘.
동 욱 : 알았어. 잠뱅아.
<동욱, 그제서 동현이 가져온 가방을 본다.
동욱, 가방 들다가 손가락에 힘이 빠져 가방 놓친다.
연장들이 흩어진다.
동욱, 연장 바라본다.
동현, 나와서 연장들을 주워담는다.>
동 현 : 형두 몸 보신 좀 해야겠어. 이런 연장가방 하나 제대로 못들고.
동 욱 : (엄숙하게)좀 앉아라.
동 현 : (몽키 스패너 들고)그동안 수도요금 꽤 냈겠어.
동 욱 : (좀 더 굳어진 얼굴로)좀 앉아.
동 현 : 매형이라도 부르지 그랬어.
동 욱 : (버럭)앉아!
동 현 : 좋아. 그렇게 인상 쓰지 말라구(소파에 앉는다)
동 욱 : 어떻게 된 거야?
동 현 : 그냥 지방에 공사가 좀 있었어.
동 욱 : 공사?
동 현 :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지, 공사판 일도 할만하더라구.
동 욱 : 피아노 치는거 포기하고 하느 일이 겨우 공사판 일이냐?
동 현 : (비아냥거리며)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동 욱 : 이 장마철에도 공사를 해?
동 현 : 꼬치구이를 드셨나?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동 욱 : 동현아.
동 현 : 여기저기 쏘다녔지뭐. 젊은 놈들 다 그렇잖아.
동 욱 : 밥은 제때 먹고 다니긴 한 거야?
동 현 : 공사판 노가다라고 기니도 못 때우는 줄 알아?
동 욱 : 이 장마철에 공사도 없었을 텐데.
동 현 : 이거 무슨 냄새야?
동 욱 : (그제사)미역국!
<동욱, 황급히 부엌으로 간다.
동현, 몽키 스패너 연장가방에 넣고 연장가방 치우다 다시 어깨의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부엌에서 나오는 동욱 보며 다시 여유로운 미소 보인다>
동 현 : 국 다 쫄았겠다.
동 욱 : 얘기 좀 하자.
동 현 : 그래(담배 꺼내 피려는데)
동 욱 : 폐에도 안 좋다는 담배를.....
동 현 : 본론만 얘기해.
동 욱 : 알았어(재떨이 갖다 주며)쭉 그렇게 살았니?
동 현 : 뻔하잖아.
동 욱 : 언제까지 이럴 꺼야?
동 현 : 뭘?
동 욱 : 공사판 쫓아다니는 거.
동 현 : 그게 어때서.
동 욱 : 네가 다시 공부를 하겠다면...
동 현 : 공부하고 담쌓은 놈이란거 형이 더 잘 알잖아.
동 욱 : 다시 피아노를 치면 안되겠니?
동 현 : (일어나며)갈게.
동 욱 : (붙잡으며)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유나 좀 알자.
동 현 : 내가 뭘! 무슨 이유?
동 욱 : 넌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어. 그때 김교수님도 그러셨잖아.
근데 졸업도 하기 전에 군대로 내빼더니, 군대 갔다 오자마자 가출을 해?
왜 그랬니?
동 현 : 그냥 답답해서.
동 욱 : 그건 이유가 안돼!
동 현 : 하기 싫은 피아노 억지로 공부하는 건 이유가 되구?
동 욱 :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봐.
동 현 : 갈게.
동 욱 : 앉아!
동 현 : 이런 얘기 들을 줄 알았으면 안왔어.
<동욱, 나가려는 동현을 잡는다.
동현, 어깨의 통증 느끼며 어깨 감싸고 주저앉는다>
동 욱 : (놀라며)무슨 일이야? 왜 그래? 어디 아파?
동 현 : 한가지씩만 물어.
동 욱 : 뭐야? 팔은 괜찮아?
동 현 : 좀 삐었어. 공사판에선 다반사야.
동 욱 : (버럭)공사판 일은 그만뒤! 그러다 팔 병신이라도 되면 어쩔려구
그래, 아직 장가도 안간 놈이!
동 현 : (키득거리며)총각귀신 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피아노를 못칠까봐,
걱정하는 거 아냐?
동 욱 : ......
동 현 : 잘됐지 뭐. 그럼 형이 포기할 꺼 아냐.
동 욱 : 동현아!
동 현 :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환영인사가 너무 거친 거 아냐.
동 욱 : ....
동 현 : 술 좀 줄래?
<동욱, 장식장에서 술과 술잔을 꺼내 동현에게 따라 주려는데 동현 맥주를
병째 들이킨다>
동 현 : 형이 마시진 않을꺼구. 학생들이 선물로 준건가봐.
동 욱 : 아...아냐. 난 못마셔.
동 욱 : 왜 그러는지 이유나 알고 있자.
동 현 :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지.
동 욱 : 있지.
동 현 : 하기 싫은 게 이유야.
동 욱 : 그건 이유가 안돼.
동 현 : 그럼 뭐가 이유가 되지?
동 욱 : 다시 피아노를 해! 넌 할 수 있어.
동 현 : 코메디 해? 나 서른 하나야. 서른 하나에 피아니스트가 되라구?
말이 되는 소릴 해.
동 욱 : 넌 콩쿨에서 1등까지 한 놈이야.
동 현 : 고등학교 2학년때 일이야.
동 욱 : 교수님도 된다고 했어.
동 현 : 그 교수는 늘 그런 식으로 얘기해.
동 욱 : 내가 보기에 넌 돼!
동 현 : 내가 보기엔 안돼!(맥주병을 table에 거칠게 내려놓는다)
동 욱 : 동현아!
동 현: (애써 통증 참으며)형땜에 억지로 피아노 한거야. 알아?
동 욱 : 병원에 좀 가보자.
동 현 : 괜찮아.
동 욱 : 공사판 일은 네 적성에 맞구?
동 현 : 그런대로.
동 욱 : 넌 소질있어.
동 현 : 그런 소리 한번만 더 하면 여기서 뛰어 내릴 꺼야.
동 욱 : 어쩌다 이랬어?
동 현 : 신경꺼.
동 욱 : 난 말이야....
동 현 : 내 걱정말고 형이나 걱정해.
동 욱 : 내 걱정?
동 현 : 나이 사십에 아직도 노총각이라구! 그 인생으로 계속 그렇게 썩을 꺼야?
동 욱 : 그런 일이라면 난 옛날에 포기했다.
동 현 : 남자이길 포기한 거야? 그래?
동 욱 : 난........, 밥 차려올께.
동 현 : (잡으며)형이야말로 결정적인 순간에 피하려고 하지마!
동 욱 : 피하는거 아냐.
동 현 : 형은 늘 이런 식이야!
-"형은 늘 그런 식이야"-동현의 독창
동 현 : 그래서 결혼할 뻔한 조선생님도 놓쳤잖아.
동 욱 : 조선생님을 니가 어떻게 알았니?
동 현 :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해?
동 욱 : 저어, 조선생님은....같은 학교에 계시는 동료교사일뿐이야.
동 현 : 조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할까?
동 욱 : 난....
<초인종 소리>
동 욱 : (아주 반가운 듯)아마 정희일꺼야. 부장 집들이 가면서 들렀나 보다.....
널 보면 무척 반가워 할꺼야. 문 열렸다.
<그러나 계속 요란하게 울리는 초인종소리.
동욱, 동현에게 "그것 봐라"는 식으로 바라보며>
동 욱 : 쟨 늘 저렇게 전투적이라니깐!
<동욱, 가서 문 연다.
그러자 마자 갑자기 축포가 터지고 뛰어들어와 동욱과 동현의 주의를 돌며
혼이 빠지게 노래하며 춤추는 유미리.
하지만 그 춤과 노래라는게 영 시원찮다>
문을 열어주면-"결혼 축하해요"-유미리의 독창과 춤
미 리 : 결혼 축하해요.
<하다가 팬티차림의 동현을 보자 갑자기 비명지르며 밖으로 나간다>
동 현 : 형!
동 욱 : 동현아!
두사람 : (동시에)결혼했구나.
두사람 : (동시에)아니!
<얼굴 돌린채 다시 들어오는 유미리>
미 리 : 죄송하지만......여기다 사인을.....
<종이를 동현에게 내민다>
동 현 : 장미꽃 7만원, 케익 3만원......
동 욱 : (동현의 차림보고)동현아.....
동 현 : 노래 2만원, 춤 2만원....
동 욱 : 동현아....
동 현 : 보고 있잖아. 성냥 2만원...
동 욱 : 동현아......
동 현 : 왜 그래? 폭죽 만원, 포장비 5천원.
동 욱 : (동현의 아랫도리를 가리킨다)
동 현 : 진작 얘기를 하지!
<동현, 얼른 가서 피아노 옆에서 아무거나 입는데 그게 하필 치마다>
동 욱 : 누, 누구시죠?
미 리 : 웨딩센터에서 왔어요. 어색한 신혼의 분위기를 부드러운 무드로 꾸며
주는 쥑인다 웨딩센타요.
동 현 : 쥑인다 웨딩센타?
동 현 : 이름 한번 죽이네.
미 리 : (이제서 얼굴들 바로 보며)하지만 이런 건 계약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어요.
동 현 : 엉?
미 리 : 저어.....동성결혼은 우리 계약에 들어 있지 않거든요,
두사람 : 응?
두사람 : 동성결혼이라니?
미 리 : (치마 가리키며)거기가 와이프고, 여기가 남편이죠?
동 욱 : 저어 우린...
동 현 : 이봐요, 아가씨1
미 리 : 괜찮아요! 동성을 희구한다는 것은 그 뭐냐....사회가 갖는 관습에 대한
일탈이나 반항의 심리같은 것으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안적 가족관이라고나
할까요.
동 현 : 뭐예요?
미 리 : 그럼요, 밀레니엄. 즉 새로운 천녀이 도래하는 이 시기에, 또한 세기말인
1999년에 새롭게 조명해봐야할 결혼이죠.
동 욱 : 아가씨, 뭔가 잘못 생각한 거 같은데....
미 리 : (아주 빠르게)잘못된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연습이 없었다는거예요.
우리는 신혼이 될 수 있는 여러 예비자들을 상대로 서로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런 분위기는 첨이거든요. 잠시 생각할 여유를 주시겠어요.
학문적으론 이해를 했는데 직업적으론 쬐금 정리가 덜 됐거든요.
동 현 : 이봐요.
미 리 : 잠깐만 정리할 시간을 주시면 알맞는 분위기를 연출해 드리죠.
동 욱 : 말할 기회 좀 주겠어요?
미 리 : 물론이죠. 하지만 다 이해해요. 그럼요, 동성결혼이 갖는 말 못할 사회적
소외감과 외로움......단지 전......
동 현 : 이봐, 어딜 찾아온거요?
미 리 : 네?
동 욱 : 삼백 삼호 맞아요?
미 리 : 그럼요, 삼두아파트 삼백 삼호.
동 현 : 젠장, 그럼 그렇지.
미 리 : 왜요?
동 욱 : 여긴 삼영아파트 삼백삼호예요. 삼두아파트는 두 블록 더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미 리 : 삼두아파트가 아니라구요.
두사람 : (고개 끄덕인다)
미 리 : 나한다씨 집 아니에요?
동 현 : 나한다?
미 리 : 네.
동 현 : 하긴 뭘해.
동 욱 : 거, 이름 한번 끝내주는군. 나 한대.
-"실수투성이"-미리의 독창
미 리 : 젠장!
동 욱 : 괸찮아요? 아가씨 진정제 좀 갖다줄까요?
미 리 : 물 좀 주시겠어요?
<동욱, 부엌으로 간다>
미 리 : 어쩐지 이번엔 집을 쉽게 찾았다 했는데.....
동 현 : 집 찾는 덴 꼴통인가 보지?
미 리 : 비웃지 말아요.
동 욱 : 물 여기있어요.
<동욱, 부엌에서 물 갖다 준다.
미리, 벌컥 벌컥 물 마시고>
미 리 : 벌써 여섯집째 허탕이라구요. 하루종일 빗속에서 걸었는데.....
전화 좀 쓸게요.
동 욱 : 아.....
<미리, 동욱이 뭐라고 하기 전에 수화기 집어 들고 번호를 마구 누른다>
동 욱 : 쓰세요.
미 리 : 쥑인다 웨딩센타죠? 아 주선생님! 저 유미린데요......(하자마자 수화기에서
귀를 뗀다)죄송합니다.....그게 첫 번째 집에서 시간이 좀 늦어서.....
서울교통이 지옥통인데다......오늘은 비까지 내려서요......
두번째는 신혼부부를 잘못 알아서.....아니 그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신혼부분지
알았나요. 손자들쪽이 훨씬 그런 분위기라서.....세번째 는.......
(다시 수화기에서 귀때면서)내참 더러워서(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막는다)
그, 그래, 더럽다고 했다 왜?(이제는 이판사판이다)그래! 그래! 알았어!
그만두면 될꺼아냐! 그래. 거기서 관두라고 하기 전에 내가 관둬! 그래!
붙잡지나 말아라!
<수화기 거칠게 놓고 한참을 씩씩거린다.
동욱과 동현 불안하게 바라보는데 미리,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동욱, 동현에게 어떻게 달래보라고 하는데 동현도 동욱에게 미룬다>
동 욱 : 저어.....어떻게 좀 해봐.
동 현 : 뭘?
동 욱 : 난..... 여자 앞에선 말도 못하잖니?
동 현 : 난 하구?
동 욱 : 나보단 낫잖아.
동 현 : 젠장.
동 욱 : 어서!
동 현 : 이봐요, 아가씨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여긴......
미 리 : 무슨 냄새죠?
두사람 : (동시에 마주보며)조기찜!
<두사람,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간다.
와장창 부엌살림 떨어지는 소리.
미리, 진정하고 콧물 닦고 물건들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부엌에서 몽클몽클 솟아나오는 연기>
동 현 : (기침하면서 나오다)괜찮아요.
미 리 : 괜찮지 않음요. 이런 기분 이해해요? 어렵게 구한 첫 직장인데, 구한 지
8시간만에 그만둔 기분요.
동 현 : 알지요. 난 두시간만에 그만뒀으니깐.
미 리 : 두시간만에요/ 무슨 일인데요.
동 현 : 노가다
동 현 : 응. 스물 두 살 때였지, 그래도 지금은 기술자 소린 들어.
미 리 : 제 나이 때네요.
동 현 : 그래. 누구나 그 나이땐 실수를 하지요.
No.9-"언제나 그나이땐"-동현과 미리의 이중창
<노래 중간에 동욱 들어오다가 두 사람이 다정히 있자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현, 미리의 어깨를 다독거리려다 괜히 어색해서 헛기침을 하는데>
동 현 : 나도 그 나이엔 그랬는걸.
미 리 : 정말 그럴까요? 위로의 말은 아니겠죠? 전 혼자만 멍청한 것 같아
두렵기만 한걸요.
미 리 : 그렇게 안 보이는데.....노가다에요?
동 현 : 무슨 소리. 정확히 말해서 일용직 근로자라고나 할까.
미 리 : 어쨌든 고마워요(나가려고 한다)
동 현 : 가게?
미 리 : 그래야죠. 비도 퍼붓는데 공연히 집에 늦게 들어갔다간 집에서도 잔소릴
들어요. 이젠 백수가 됐으니 집에서라도 잘 보여야죠.
<미리, 일어나 가려는데 동현,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부엌쪽으로 보다가
미리를 붙잡는다>
동 현 : 잠깐! 잠깐만!
미 리 : 넷?
미 리 :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동 현 : (잡아 끌어 앉히며)오늘이 첫 출근이라고 했지?
미 리 : 첫출근이자 보시다시피 마지막 퇴근이죠.
동 현 : 그 퇴근을 성공적인 퇴근으로 마치고 싶지 않아?
미 리 : 그러고야 싶지만 이미 짤렸구, 고객도 없는걸요.
동 현 : 저...이리와서 앉아봐
미 리 : 왜요?
동 현 : 좀 앉아봐.
동 현 : 이런 행사해주는데 얼마야?
미 리 : 뭘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꽃과 케잌이 곁드리면 십만원선이고요.
노래까지 곁드리면 두장은 줘야돼요. 그리고 삼십만원 이상이면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해 드리죠.
동 현 : 그런걸 다 준비해 갖고 다녀?
미 리 : 그럼요.
동 현 : 좋아.
<동현, 피아노 의자 속에서 비닐봉투 꺼내서 그 속에 있는 돈을 센다.
미리, 슬쩍 보고>
미 리 : 와! 노가다 아저씨 돈 짱 많다.
동 현 : 쉬!
<동현, 그 돈 중에 몇장을 꺼내고 다시 피아노 의자속에 넣는다>
동 현 : 삼십만원이상이면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해준다고 했지. 자아! 삼십 일만원!
미 리 : 넷?
동 현 : 실은 오늘이 형 생일이야(진지하게), 결혼은 아니짐나 생일축하쇼도 물론 하겠지?
미 리 : 생일요?
동 현 : 늘 속만 썩힌 동생이라..... 오늘만은 좀 즐겁게 해주고 싶거든.
미 리 : 글쎄요. 근본적으로 결혼과 생일은 다르지만 철학적으로 동질성을 가지고
있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는 점에서요.
동 현 : 꽤 어려운 말을 하네.
미 리 : 이래뵈도 동양철학과를 전공했거든요.
동 현 : 동양철학을 했다니 철학적으로 부탁인대 난 급진개혁파거든, 근데 형은
점진보수파야, 그래서 말인데 나한테 돈 받은 거 비밀로 하고 아가씨가
개인적으로 축하해주는 걸로 하면 안될까?
미 리 : 제가 개인적으로요?
동 현 : 철학적으로 비밀로 해야 하거든, 우린 소 닭보는 사이라서.
미 리 : 형하고 그렇게 사이가 나빠요?
동 현 : (돈 그냥 거두며)싫음 말구!
미 리 : (돈 잡으며)싫긴요. 근데 어떻게 생일을 알았다고 하죠?
동 현 : 그냥. . . 그런 예감이 들었다고 하지 뭐. . .
미 리 : 좋아요! 계약!
동 현 : 계약!
미 리 : 가요!
동 현 : 어딜?
미 리 : 형님집요.
동 현 : 여기가 형님집이야!
미 리 : 어머, 형님이 이해심이 참 좋은신가봐요. . . 동성결혼을 한 동생을. . .
동 현 : 응?
미 리 : 아, 아녜요. 그럼 형님은 언제 오시죠?
동 현 : 무슨 소리야?
미 리 : 형님이 오셔야 일을 하죠.
동 현 : 부엌에 간 사람이 우리 형이야.
미 리 : 저어. . . 동성애인 아니구요?
동 현 : 애인? 젠장, 내가 그렇게 보여?
미 리 : 의상이. . .
동 현 : 그렇게 됐어. 준비하자구.
미 리 : 좋아요. 노가다 아저씨도 도와줘요.
동 현 : 도와줘? 그쪽이 다 하는 거 아니구?
미 리 : 무슨 소리에요. 아저씨도 쇼 의상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구요!
동 현 : 난. . . 그런 낯 간지런 일은 못해!
미 리 : 어서요!
동 현 : 안돼! 못해!
M15-"형님을 위해"-미리와 동현의 이중창과 춤
<미리와 동현의 실랑이가 끝나고 부엌에서 소리난다.
동현과 미리 모두 숨으며>
동 현 : 조명실
<무대 위의 불 다 나간다.
동욱이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동 욱 : 어쩜 그렇게 까맣게 타도록 몰랐을까? 어? 여기 왜 또 이렇게 까매?
동현아! 동현아!
<하자 와학 불 켜지며 축포가 터진다.>
동 욱 : (당황하며)또 결혼하니?
미 리 : 생일 축하합니다.
동 현 : (무척 놀란 듯)형 생일이였어? 그랬으면 진작 얘길하지!
동 욱 : 아니 어떻게. . .
동 현 : 그게. . . 저어. . .
미 리 : 별자리에 다 나와 있어요.
동 욱 : (동현에게)네가?
동 현 : 내가 알 리가 있어. 갑자기 이 아가씨가 형 관상을 보더니 오늘이
생일이래잖아.
미 리 : 이래뵈도 동양철학을 공부했거든요.
동 현 : 엉겁결에 나도 광대가 됐다구, 하여튼 낯간지럽지만 축하해.
미 리 : 그런 축하가 어딨어요? 아마 제가 여기 온 건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인 것 같아요.
동 욱 : 운명?
미 리 : 네, 축복 받을 운명같은 거 말이에요.
동 욱 : 그런 거창한. . .
동 현 :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미 리 : 자아 즐거운 파티를 시작하죠!
M16-"즐거운 파티"-동욱, 동현, 미리의 삼중창과 춤
<미리에 의해 어울리지 않는 파티모자까지 쓴 동욱.
세사람의 즐거운 춤과 노래.
동욱, 춤추는 동안, 동욱의 주머지에서 진단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미리, 노래가 끝날 즈음 케이크를 꺼내 놓는다.>
미 리 : (초 꺼내들고)몇 살이죠?
동 현 : 형, 연세, 춘추!
동 욱 : 서른 아홉. . .
동 현 : 형!(꼬집는다.)
동 욱 : 만으로.
동 현 : (고개 젓는다.)똑바로
동 욱 : 마흔
미 리 : 어머, 어쩌죠? 초가 모자라는 데.
동 욱 : (일어서며)부엌서랍에 많이 있어요. 내가 갔다 올께요.
동 현 : (형 앉히며)내가 가져올께, 주인공은 기다리고 있어.
동 욱 : 야! 나 혼자 못해.
동 현 : 주인공은 이라따운 아가씨랑 얘기나 하고 있어.
동 욱 : 못해. 넌 어디있는 줄도 모르잖아. 내가 찾아볼께.
동현아, 알았어. 아이~ 꼭꼭 숨겨놨는데.
동 현 : 얼른!
<동현,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동욱에게 파이팅 사인을 한다.
단 둘이 남은 동욱과 미리.
동욱, 자신도 모르게 자꾸 떨린다.>
미 리 : 축하해요.
동 욱 : (떨며)고마워요... 이런 생일파티는 첨이예요.
미 리 : 뭘요.
<어색한 침묵.
동욱, 자신도 모르게 미리의 짧은 치마에 시선이 간다.
미리 시선 느끼고>
미 리 : 좀 짧죠.
동 욱 : 네, 좀 그렇군요.
미 리 : (치마 억지로 끌어서 당긴다.)
동 욱 : (어색해서)아마 초를 못 찾나봐요.
미 리 : (어색하게)그런가봐요.
동 욱 : (부엌에 대고)싱크대 두 번째 서랍에 봐.
<부엌에서 우당탕 소리난다.
동욱도 안절부절 하다가 흔들의자에 있는 뜨개질 도구에 시선이 간다.
얼른 뜨개질 도구 가져다 뜨개질 시작한다.>
동 욱 : 좀 거친 녀석이죠?
미 리 : (빤히 보며)좀 그러네요.
동 욱 : (좀 편안해지면서)막내라 그런 면도 있어요.
미 리 : 네.
동 욱 : 위로 누나가 둘 있는데 둘 다 시집갔어요.
미 리 : 네.... 하지만 맘은 참 좋아보여요.
<우당탕 소리, 떠들석한 소리>
동 현 : (소리)젠장!
동 욱 : 그랬었죠.
미 리 : 뜨개질을 좋아하시나봐요?
동 욱 : 맘이 좀 진정되죠.
미 리 : 네... 뭘 뜨세요?
동 욱 : 알아맞춰 보세요.
미 리 : 목도리?
동 욱 : 쉐탄데. . .
미 리 : 아. . .. 네. . .. 그러고보니 쉐타처럼 보이네요.
동 욱 : 그. . .렇죠. . .
미 리 : 네. . ..
<어색한 침묵.
그럴수록 동욱의 뜨개질 솜씨는 빨라진다.>
미 리 : 준비가 덜 됐죠.
동 욱 : 넷?
미 리 : 결혼 40주년 되는 분들은 별로 없거든요, 초는 두개나 세개정도만
준비하면 된댔어요... 죽인다 웨딩센타에서요.
동 욱 : 아, 넷.
미 리 : 요즘은 이혼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웨딩센타 산업도 전망이 매우
밝대요. 한 사람을 고객으로 하고 있으면 서너번 고객이 될 수 있거든요.
동 욱 : 그렇겠군요.
미 리 : (동시에)결혼하셨어요?
동 욱 : (동시에)결혼하셨어요?
두사람: 아뇨!
미 리 : 이제 겨우 졸업반인걸요.
동 욱 : (부러운 듯)좋을 떄다.
미 리 : 좋긴요! 취직은 안돼죠. 집에선 닥달하죠. 친구들 보면 벌써 직장 잡아서
제 갈길을 가는 데, 전 뭘 해야할지도 모르고 (한숨 내쉬며) 빨리 나일
먹었으면 좋겠어요.
동 욱 : 그렇지도 않아요. 전 할 일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은 걸요.
미 리 : 그래도 직장이 있잖아요. 직업이 뭐예요?
동 욱 : 중학교 음악선생요.
미 리 : 어머, 너무 좋겠다.
동 욱 : 생각만큼 좋지도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음악선생이라 담임도 맡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늘 음악실에 혼자 있죠. 공부하는 시간이거나 부족한 잠을
때우는 시간 정도밖에 여기지 않아요.
미 리 : 제가 학교다닐 떄, 음악시간이 제일 좋았는데.
동 욱 : (뜨개질을 멈추고)정말요?
미 리 : 그럼요, 더구나 음악선생님을 짝사랑하기까지 했는걸요.
동 욱 : 전 나름대로 이 음악 저 음악 들려주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시간뿐인데다
다들 영어,수학밖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깐... 자꾸 힘이 빠져요.
<동현, 초 가지고 나오다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들고 본다.
동현, 얼굴이 굳어진다.
동욱과 미리는 알지 못하고 대화에 열중한다.>
미 리 : 제 나이때는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
동 욱 : . . . . 말 못해요.
미 리 : 말해 보세요.
동 욱 : . . . .
미 리 : 어서요.
동 욱 : 피. . 피아니스트요. . .
미 리 : 지금도 피아노를 치시잖아요.
동 욱 : 피아노는 저보다 동현이가 잘 쳤죠.
미 리 : 노가다 아저씨가요?
동 욱 : 콩클에서 1등을 해서 피아노까지 탔는걸요. 보세요, 이 피아노예요.
미 리 : 아, 그래서 피아노가 두 대군요.
동 욱 : 함께 라흐마니노프를 칠 땐. . . . 너무 행복했어요.
미 리 : 근데 왜 노가다가 됐어요?
동 욱 : 그건. . . . .
<미리, 동현을 발견하고>
미 리 : 노가다 아저씨! 피아노 친다는 거 정말이예요?
동 현 : . . . . . .
동 욱 : 초 못 찾았구나. 그러게 내가 가져온다니깐.
동 현 : 계속 숨길 생각이였어?
동 욱 : 뭘?
동 현 : 왜 그 모양이야!
동 욱 : 그게 무슨 말이야?
동 현 : (동욱 앞에서 진단서 보인다.)이게 뭐야?
동 욱 : (얼른 주머니 속을 뒤져보다가)어디서 찾았니?
동 현 : 바닥에 떨어져 있더군.
미 리 : 뭐예요? (힐금보며)진단서 같은데. . .
동 욱 : (얼른 빼앗아 주머니에 넣으며)별 거 아냐.
동 현 :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데도 별 거 아니라구? . . . 형은 음악선생이야.
손가락이 마비되는데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미 리 : 세상에. . . . .
동 욱 : 나중에 얘기하자.
동 현 : 형!
동 욱 : 그런 얘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손님도 계시잖니.
동 현 : 온 몸이 다 굳은 뒤에.
동 욱 : 동현어!
미 리 : (얼른 일어나)초. . . 초 가져올께요.
<미리,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 욱 : 아니. . . .초는. . .
동 현 : (동욱 잡으며)형!
동 욱 : . . . 심각한 거 아냐.
동 현 : (화를 참으며)누나들도 알아?
동 욱 : 뭐 좋은 일이라구. . . .
동 현 : 늘 그런 식이야! 그런 식으로 혼자만 잘났다구. 도대체 슈퍼맨이라도
되는거야? 이런 식으로 형 인생을 허비해서 어쩌자는 거야?
동 욱 :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이 어떻게 인생을 허비한 거냐?
난 한번도 그런 생각헤 본 적 없다. 나는 말이다. . . .
동 현 : 그만!
M16-"내 꿈은 바로 너야"-동욱과 동현의 이중창
동 현 : 그만! 그만! 그만!
동 욱 : 동현아, 이제 다시 시작하자. 넌 피아노를 치고. . . . 난 . . . 그래,
뜨개질을 해도 괜찮겠지. 수예점을 열까? 그래, 그게 좋겠다.
동 욱 : 다들 나보고 솜씨가 좋데니깐. . . .그래, 영희가 시간이 좀 있으니깐.
도와줘도 되구. . . . 모두 네 장래를 위해서. . . .
동 현 : 제발 형 생각을 내게 강요하지마.
동 욱 : 동현아. . . .
동 현 : 형은 항상 우리의 장래를 막아왔을 뿐이야! 왜 영희누나가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는줄 알아! 정희누나는 왜 그렇게 열렬한 페미니스트처럼 미친 듯이
밖으로 돌았는 줄 알아? 다 형 때문이야! 형의 그 짐스러운 간섭!
아니, 형 인생을 저당잡히고 우릴 돌본다는 그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거라구!
동 욱 : 동현아. . . .
<동욱,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린다.>
동 현 : 우린 늘 답답했어. 가난이, 이 집이, 그리고 우리에게 매달려 사는 형이!
동 욱 : . . . . .
동 현 : 우리에게 뭘 바라는 거야? 현모양처, 세련된 직업여성, 훌륭한 피아니스트!
형, 현실을 직시해! 우린 현모양처도, 세련된 직업여성도, 그리고. . . 피아니스트도
아니야. . . .우린 그저 평범한 우리일뿐이라고!
동 욱 : . . . (나즉히)나라고. . .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은 줄 아니. . . . 너희들만 없었다면. . .
그래, 나도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을꺼야. . . .
동 현 : 그런데 왜 조선생님을 그냥 보냈지?
동 욱 : 조선생님은 . . . 그냥 동료교사일뿐이야.
동 현 : 조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동 욱 : (바라본다.)
동 현 : 조선생님이 형하고 결혼할뻔한 거 알아. 나땜에 깨진거지. 그래, 형은 날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으니깐. . . . 내 뒷바라지를 해야했고. . . .
조선생님이 원한 건 형의 사랑이였어! 피아니스트 시동생이 아니라. . .
그냥 동료교사. . . .훗훗훗. . . 조선생님이 찾아와 한 얘기가 있어.
형을 설득해달라고. . . 하지만 난 형을 알아. . . . 내가 말한다고 들을 형이
아니란 걸. . . .
동 욱 : 그럼 네가 집을 나간. . . .
동 현 : 그래, 형의 기대가 무거웠어. 모래짐을 나르는 것보다 더 무거웠다고.
동 욱 : 동현아, 그런거라면 다시 시작하자.
동 현 : 싫어! 제발 이제 그만해! 제발 현실을 바로 보라구!
동 욱 : 동현아!
동 현 : 난 형이 아냐! 현실을 바로 봐. 형은 날 통해 형이 피아니스트가 되려한 거라구!
알아!
동 욱 : (눈 질끈 감으며)
동 현 : 이제 더 이상 형의 희생은 필요없어! 더 이상 필요없다구.
동 욱 ; 이 자식, 이 자식, 이 자식아!
<동욱, 동현을 주멱으로 때린다.
미리, 황급히 부엌에서 뛰어나온다.>
미 리 : 왜들 이러세요?
동 현 : 이제 속 시원해? 더 이상 뭘 바라는 거야? 우리들 땜에 형 인생을 포기했다는
위안을 얻고 싶은 거야?
동 욱 : 나가!
동 현 : 누나들이나 내가 얼마나 형을 부담스러워 하는 줄 알아?
동 욱 : (돌아선다.)
<동현, 일어나 피아노 의자에 있는 비닐봉투속의 돈을 꺼내 동욱에게 던진다.>
동 현 : 형에게 진 빚이야!
동 욱 : (말없이 바라본다.)
동 현 : 형이 허비한 인생에 대한 빚이야! 하지만 이 돈이 지금와서 무슨 소용이 있지?
형은 지금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도, 병원에 함께 가줄 사람도 없는데. . . .
미 리 : 그만하세요, 너무 심하잖아요.
동 현 : 그게 마흔 생일날 보는 형의 인생이라구.
미 리 : 이러지 마세요. 오늘은 주인공을 기쁘게 해주는 날이잖아요.
동 현 : 그저 우연히 찾아 들어온 여자에게 축하나 받고 괜히 웃음짓는 형꼴이
어떤줄 알아? 어떤 줄 아느냐구!
미 리 : 그만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전 적어도 마흔이나 서른이 되면 이거보다
나을꺼라고 생각했어요....그런데 뭐죠? 서로에게 할퀴고 상처주면서
형제라는건가요? 이러지 말아요! 형은 환자고 오늘은 생일이라구요!
그리고 동생분은 형님을 사랑해요... 오늘이 생일이란걸 알려준 분도
동생이시구요......일부러 축하하러 이 비를 뚫고 왔데요....그런데 뭐죠?
이게 형제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인가요?
동 욱 : .....
동 현 : ......
미 리 : (짐 싸들고 나가며)계속들 할퀴고 싸우며 사세요! 젠장!
<미리 나간다>
No.14-B.G
<침묵>
동 욱 : ......미안하다.
동 현 : 지금이라도 조선생님이 결혼하자면 할꺼야?
동 욱 : 무슨 돈이냐?
동 현 : (돈 주워 모으며)노가다판에서 모은 돈하고 보상금.
동 욱 : 보상금?
동 현 : 어깨 빠진.
동 욱 : .....
동 현 : ....형.
동 욱 : 왜?
동 현 : 이제 우리 뭐하지? 노가다판 인생 어깨 빠졌구, 음악선생 손가락은 그 모양이니.....
동 욱 : 밥이나 먹지 뭐.
동 현 : (힘없이)젠장......
<동욱,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는 방안을 정리한다.
동현, 가만히 서있다 자신도 하나씩 도와준다.
동욱, 피아노 앞에 와서 피아노 어루만지며>
동 욱 : 이젠 피아노 영희네하고 정희네한테 줘야겠다.......둘다 병신이니.
<동욱, 천천히 어루만지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천천히 피아노 치기 시작한다>
-"고향의 봄"-동욱의 연주.
<그 음악에 이글리듯 피아노 앞으로 다가오는 동현.
나즉히 흐르는 음악.
그러나 연주 도중에 손가락이 마비된 듯 음정이 틀린다.
서너 차례 반복하다가 피아노 앞에 무너지듯 고개 숙이는 동욱.
동현, 천천히 다른 피아노 옆에 가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동욱이 틀린 부분부터
연주하기 시작한다.
동욱, 동현쪽을 바라본다.
동현과 눈이 마주치는 동욱.
동욱,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동욱과 동현의 이중주
<호흡은 때로는 빨라지고 때로는 늦어지면서 아주 좋은 하모니를 이룬다.
두 대의 떨어져 있던 피아노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하나가 된다.
마침내 연주 마친 두 사람.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손 내밀어 악수를 한다.
어느 새 들어와 박수를 치는 미리>
동 현 : 안 갔어?
미 리 : (동욱 몰래 동현에게 아까 받은 돈 주며)하던 일은 끝내고 가야죠.
<미리, 초를 하나씩 주고 성냥을 동욱에게 켜 준다.
동욱, 초에 차례로 불 붙인다.
동현의 초에, 미리의 초에, 그리고 초 하나는 미리 케이크에 꽃혀있다.>
미 리 : 소원을 말하세요.
동 욱 : (동현의 손을 꽉 잡으며)내 소원은 벌써 이루어졌는데요.
미 리 : 그럼 그 소원이 계속 되길 비세요.
<두형제가 마주본다. 동현이가 나가라고 얼굴짓하며>
-"사랑"-동욱, 동현, 미리의 삼중창
<세사람, 촛불을 중심으로 모인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띄다 촛불을 끄는 동욱.
옆에서 도와주는 동현과 미리.
잠시의 어둠.
이어 환상적인 조명빛이 들어오면 스냅사진처럼 초를 불고 있는 세사람의
정지된 모습 보이면 다시 천천히 어두워지는 무대>
No.17-"OVERTURE"-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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