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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바쿠후(막부) (室町幕府)

작성자산 과 바다|작성시간02.01.23|조회수24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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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바쿠후(막부) (室町幕府)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세운 무가 정권으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1378년 교토의 무로마치에 저택을 짓고 그 곳을 바쿠후(幕府)로 해서 무로마치 바쿠후 또는 아시카가 바쿠후하고도 부른다. 정권으로서 무로마치 바쿠후는 1336년 다카우지가 <겐무 시키무쿠(建武式目)>를 공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만, 남북조 동란기를 거쳐 바쿠후가 체제를 정비하고 완성한 것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때였다.

정치 조직은 가마쿠라 바쿠후를 본떠 중앙에는 관령(管領)·사무라이도코로(侍所)·만도코로(政所)·문주소(問注所)·효죠슈(評定衆)·히키쓰케슈(引付衆)를 설치했다. 중앙의 정치 기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령과 사무라이도코로이며, 실제 정치는 쇼군과 관령·사무라이도코로에 임명되는 3관 4직이 맡았다. 효죠슈는 아시카가씨 일족이나 유력 다이묘들이 임명되었으나 일찍부터 그 회합은 의례적인 것이 되었다. 히키쓰케슈도 주로 영지 관계의 소송을 취급하는 기관이었지만 가키쓰의 난 이후 폐지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 정무를 취급하던 만도코로는 무로마치 바쿠후에서는 재정과 민사 소송을 담당했고, 문주소는 기록문서의 보관과 증명·감정을 담당했다.

  지방에는 가마쿠라에 가마쿠라부를 설치하여 중앙의 정치 기구와 같은 기구를 두었다. 가마쿠라부의 장인 관동관령(關東管領)은 나중에 구보(公方), 집사를 관동관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밖에 규슈에는 규슈탄다이(九州探題),오우 지방에는 오슈탄다이(奧州探題)·우슈탄다이(羽州探題)를 설치했다. 바쿠후의 재정은 직할령인 고료소(御料所)에서 얻는 수입 외에, 고리대인 (土倉)·사카야(酒屋)에 영업세를 부과하거나, 단전(段餞)이나 동별전(棟別餞)을 임시로 부과하여 보충했다. 또 명과의 무역에서 얻은 이익이나 관문의 통과세인 관전(關餞)·진전(津餞), 바쿠후의 보호 아래 금융활동을 하는 5산(五山) 선원(神院)이 바치는 헌전 등도 주요 재원이었지만, 고료소가 적었고 다른 재원도 임시 과세가 많았기 때문에 바쿠후의 재정 기반은 약했다.

  무로마치 바쿠후는 다카우지에서 시작해서 15대 요시아키(善昭)로 끝났는데, 실질적으로는 8대 요시마사(義政)까지로 그 뒤 쇼군의 권위는 없어졌다. 오닌의 난이 시작되면서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고 요시아키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의해 추방됨으로써 무로마치 바쿠후는 멸망했다. 무로마치 바쿠후는 군사·경제적 기반에서 슈고들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하지 못했으며, 천황과 사원·신사의 권한을 흡수하면서도 그 권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쇼군의 권력은 전제적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남북조 내란 동안 권한이 강화된 슈고들의 연합 정권이라는 성격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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