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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음악(판소리)을 주제로 한 수필

작성자◐애플민트◑|작성시간04.03.18|조회수141 목록 댓글 0
2000년 11월,박미영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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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론 수강생 여러분

음악을 듣고 음악과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쓰는 방식입니다. 음악에 대한
감상문으로서 시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썼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 번 읽어봅시다.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 춘향가의 페이소스를 가장 적절히 압축해 낸 비감의 절정

한명희

'스타'라는 말은 아마도 요즘의 젊은 세대가 가장 선망하는 낱말 중의 하
나일 것이다. 그만큼 이 금빛 찬란한 어휘는 온통 젊은이의 넋과 얼을 한
손에 휘어잡은 채 우상처럼 군림하고 있다. 마치 이름 그대로 만인이 우러
러 꿈을 키우고 희망을 가꾸는 밤하늘의 영롱한 별빛처럼 말이다.
스타의 시대에 만날 수 있는 스타란 굳이 물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마
이클 잭슨 같은 팝송 가수나 GOD 같은 국내 가수, 아니면 모모한 영화 배우
나 이름난 야구 선수, 골프 선수임에 틀림없겠기 때문이다. 세월을 7,8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스타'란 말이 없던 시대의 스타란 과연 누구였
을까. 그 또한 두말할 나위 없이 소리 광대였다.
스타가 없던 시대의 스타, 즉 왕년의 내로라 하는 명창들의 노래가 요즘 L
P나 CD로 복각되어 애호가의 갈채를 받고 있다. 옛날의 유성기판, 즉 SP 음
반을 체계적으로 수집해서 착실하게 음반으로 간행해 내는 '신나라 레코드
사'의 일련의 작품이 곧 그것이다. 스타가 없던 시대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
의 육성을 다시 듣는 감회는 여간 유별난 게 아니다. 지글지글하는 잡소리
를 헤치고 저만큼 뒤켠에서 또렷하고도 우람하게 울려오는 명창의 소리에
귀를 맞추면 이내 마음은 그처럼 까마득하던 우리네 역사의 뒤안길, 정서의
문전옥답으로 어느덧 빠져들고 만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 찬 자리에 생각느니 임뿐이로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이별 후로 일 장 수서(手書)를 못 받았으니,
부모봉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연이신혼(宴爾新婚) 금슬우지(琴瑟右之) 나를 잊고 이러는가
계궁항아(桂宮姮娥) 추월같이 번 듯이 솟아서 비취고저
막왕막래(莫往莫來) 막혔으니 앵무서(鸚鵡書)를 어찌보며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드니 호접몽(胡蝶夢)을 어이 꿀 수 있나
손가락에 피를 내여 이 사정을 편지헐까
간장의 썩은 눈물로 님의 화상을 그려볼까
이화일지 춘대우(梨花一枝 春待雨)로 내 눈물을 뿌렸으면
야우문령 단장성(夜雨聞鈴 斷腸聲)의 빗소리만 들어도 임의 생각
녹수부용 연 캐는 채련녀(綠水芙蓉 採蓮女)와
제롱망채(提籠忘採)에 뽕 따는 여인네들 낭군생각은 일반이나.
뽕도 따고 연도 캐니 날보다는 좋은 팔자
옥문밖을 못나가고 임을 다시 못 뵈오니,
이 몸이 죽게 되면
무덤 앞에 섰는 돌은 망부석(望夫石)이 될 것이니
생전 사후 이 원통을 알어 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퍼뜨리고 앉아서 울음을 운다

판소리 <춘향가>가의 [쑥대머리] 대목이다. 잘 알다시피 [쑥대머리]는 그
유명한 옥중가의 일부이다. 춘향이가 변 사또의 수청을 끝내 거절하다가 곤
장을 맞고 옥중에 갖히는데 이 때 부르는 노래가 곧 [옥중가]이다.
[옥중가]는 느릿한 진양조로 옥중의 음습하고도 으시시한 장면이 묘사되는
부분과, 춘향이가 꿈속에 정절의 화신인 멀리 중국의 이비묘(二妃墓:아황
과 여영이라는 이상적인 왕비)를 찾아가는 부분, 또한 옥에서 억울하게 죽
어간 숱한 원혼들의 울음 소리를 묘사하는 이른바 귀곡성 대목, 그리고 춘
향이가 모진 매를 맞아 머리가 쑥대머리처럼 헝클어지고 몰골이 참혹한 지
경에서도 일편단심 이도령을 그리는 정을 노래하는 세칭 [쑥대머리] 대목으
로 짜여져 있다.
[옥중가]가 판소리 <춘향가>의 비탄적인 정감의 절정이듯이 [쑥대머리]대
목 역시 [옥중가] 중에서도 가장 듣는 이의 심금을 비통한 슬픔의 계곡으로
몰아 넣는 소리 부분이다. 따라서 [쑥대머리]는 판소리 <춘향가>의 페이소
스적인 측면을 가장 적절하게 압축 상징해 낸 결정적인 소리목인 셈이다.
적어도 춘향가의 비극적 절정은 여기서 단원을 내리고 되고 곧 이어서부터
는 장면도 내용도 판이하게 변하는 판소리 후반부의 과거 장면이 펼쳐지며
차츰 해피 엔딩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중몰이 장단의 쑥대머리는 단가처
럼 따로 떼어서 자주 불린다. 마치 수궁가에서 토끼 화상을 걸머진 자라가
육지로 나오면서 부른 [고고천변] 대목처럼 말이다.
그래서 [쑥대머리]는 [옥중가]의 일부라기보다는 아예 독립된 단가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만큼 단가처럼 널리 불리는 노른자위 소리 대목이었
다. 특히 50년 대까지 명성을 날리던 임방울 명창의 [쑥대머리]는 남달리
유명해서 임방울과 쑥대머리는 마치 임 명창의 간판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거의 등식처럼 따라 붙는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처럼, 살다 보면 누구나 만남의 기쁨과 함께 또
한 이별의 고통을 경험하게 마련이다. 결국 석별의 아쉬움 즉 헤어짐의 비
통이란 삶의 내용이자 피지 못할 속성인 셈이다. 그러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자연히 이별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터이고 그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치고 춘향이의 불행에 연민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
다.
그래서 [쑥대머리] 소리 대목을 들으면 우리는 이내 춘향이의 비탄이 곧
자신의 비탄이요, 춘향이의 고통이 곧 자신의 그것인 양 쉽사리 동감하며
절절하게 소리에 젖어드는 것이다. 더욱 만인을 웃기고 울리는 당대의 명창
이 풀어놓은 구성지고도 간곡한 소릿조 앞에서랴.
임방울 명창 하면 여러 가지 일화도 많지만, 그가 작고한 후의 장례 행렬
은 아직도 한 장의 선명한 삽화로 눈에 선연하다. 당시 사춘기이던 필자의
감성으로는 광화문에서 화신까지 꼬리를 문 장례 행렬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 하얗게 소복한 여인들이 상여 뒤에 흰 광목 끈을 열 지어 잡고는 장안의
대로를 수 백 미터가 넘게 도열해 가는 엄숙한 장면이었다.
고작해야 '예술은 길로 인생은 짧다'라는 상투적인 말 이외에 예술이라고
는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풋내기의 나에게 처음으로 '예술가의
삶도 위대하구나'하는 심증을 확신케 해주던 장면이었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 찬 자리에 생각느니 임뿐이로다......" [쑥대머리] 노래가
있어서 우리는 한 때 풍요로웠고 임방울 명창이 있었기에 우리의 어제가 조
금은 가며로웠는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도 한 때는 국민의
애도 속에 서울 장안의 대로를 통해서 한 가난한 음악가의 마지막 길을 보
낸 행복한 시절도 있었다는 점이다.

* 여기에 인용된 여러 노래는 우리 학교 음향 자료실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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