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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음악 산조가 주제인 수필

작성자◐애플민트◑|작성시간04.03.18|조회수159 목록 댓글 0
수필문학론 수강생 여러분

음악을 듣고 음악과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쓰는 방식입니다. 음악에 대한
감상문으로서 시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썼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 번 읽어봅시다.



거문고 산조 -그윽한 음색과 구수한 가락이 펼쳐 가는 정서의 별천지

한명희

거문고는 가야고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우리 나라 현악기 중의 하나이다.
거문고의 줄은 여섯이요, 가야고의 줄은 열 둘이다. 거문고가 그윽한 저음
을 특색으로 한다면 가야고는 투명한 음색에 청량한 맛이 있다.
이처럼 서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수십 세기를 내려오며 민족의 정서를
북돋아 온 거문고요 가야고이지만 아무래도 우리네 내면적인 음악 정신에
한 발 가까운 악기라면 역시 거문고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거문고
소리는 의젓한 품도가 있고 그윽한 정취가 있으며 심오한 철학이 있다. 그
래서 일찍이 선인들은 거문고를 벗삼아 풍류를 즐겼고, 거문고를 벗삼아 인
격을 도야했으며, 또한 거문고를 벗삼으며 인생을 담론해 왔다. '흥어시 입
어예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이라는 {논어}의 글귀가 대변하듯이,
특히 유교 사상이 풍미하던 조선시대에 와서는 음악으로 인격 완성을 도모
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지식 계급인 선비층에서는 으레 거문고
를 수양의 상징처럼 서책과 함께 옆을 지키게 했다. 그들에게 거문고는 우
선 破寂(파적)의 방편일 뿐 아니라 우주의 철리, 삶의 대도를 터득해 가는
신비의 靈媒(영매)이기도 했다.
' 거문고 줄 골라 놓고 홀연히 잠이 드니, 시비(柴扉)에 개 짓으며 반가
운 손 오노매라 '하는 옛 시조에서는 淸遊(청유)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고,
'세사(世事)는 금삼척(琴三尺)이요, 생애는 酒一杯(주일배)로다' 라는 시
구에서는 짤막한 3척 거문고로 세상사를 미루어 달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뿐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거문고의 매력은 오히려 그 둔탁하기 그지없는
순박한 소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가야고처럼 낭랑하지도, 단소처럼 영롱하
지도, 그리고 해금처럼 구성지거나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그 粗野(조야)한
듯한 투박한 음향은 가히 귀인의 벗이요, 군자의 知己(지기)가 되기에 족했
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일찍이 송강 정철은 '거문고 대현(大絃)을 타니 마음이 다눅더니,
자현(子絃)의 우조(羽調) 올라 막막조 쇠온 말이 섧기는 전혀 아니 하되
이별 어찌 하리' 하고 거문고와의 정회를 읊었고, 만해 한용운은 <거문고를
탈 때>라는 시 제목으로 시대의 아픔을 담아 냈음이 분명하다.

달 아래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있을까 함이러니,
춤 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는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 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마지막 소리가 바람을 따라서 느티나무 그늘로 사라질 때에,
당신은 나를 힘없이 보면서 아득한 눈길을 감습니다.
아아,
당신은 사라지는 거문고 소리를 따라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거문고의 이름이 신성하다는 뜻의 '검'이나 '감'이라는 고어에서 왔다든지
혹은 검은 학의 전설에서 유래했다든지 하는 기록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거문고는 결코 예사로운 악기의 차원만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 부여와 심오한 상징성이 내포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은 바뀌어서 이처럼 고아하고도 의미심장한 정서와 철학을 대
변해 오던 거문고로 요즘에는 자유분방한 산조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으니
여기서도 우리는 세태의 무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세태의 무상만이 아
니라 한때는 품격 있는 거문고로 산조를 연주하는 것을 망국적인 풍조라고
까지 비난하던 시대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
다.
오늘의 우리 세대에서 거문고 산조 음악은 음악의 현장에서 분리될 수 없
는 중추적인 곡이 되었으며, 그만큼 우리의 정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
다. 만추의 고엽이 인생의 본질을 반추하게 해 주는 차분한 계절의 호젓한
시간에, 부드러우면서도 점잖게 울려 퍼지는 한바탕의 거문고 산조! 차라리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이기에 앞서 하나의 경탄이요, 계시며 삶의 해법이다
. 그만큼 거문고 산조는 한바탕은 기막힌 데가 있다.
거문고 산조를 창시했다는 백낙준 이후도 거문고 산조의 명인은 가야고에
비해서 그리 많지 않았다. 20세기 후반기에 활약했던 명인으로서 세인의 賞
讚(상찬)에 회자되던 인물로는 고작 김윤덕, 한갑득, 신쾌동 정도에 불과하
며 그나마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신라의 왕이 지리산에 은
둔한 貴金(귀금) 선생의 琴道(금도)를 애오라지 이어 놓으려 했듯이, 유구
한 거문고 음악의 단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형세이다.
거문고 산조 하면 역시 우리는 신쾌동 명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임
종 전까지 자신의 산조를 이어 갈 흡족한 제자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는 신
쾌동의 이름은 아무래도 거문고 산조음악과는 동의어이자 대명사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그의 산조에는 개성이 흐르고 신기가 배어 있다.
느짓한 진양조에서 시작해서 점입가경의 악흥의 미로를 따라 잦은몰이까지
몰아붙이는 그의 산조 한 판을 감상해 가노라면, 우리는 어느 새 내가 나
아니고 네가 너 아닌 깊숙한 감성의 심연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만큼 그
의 산조에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흡인력이 있고 우리의 얼까지 흘려 가
는 최면력이 있으며, 목석같이 무딘 가슴에도 끈끈한 서정을 흥건히 배어나
게 하는 신명기가 넘친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흔해빠진 말처럼 한때 뜨르르 했던 명인은
갔지만, 그의 음악은 아직도 우리 곁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생전의 예인은
훤칠한 키에 깡마른 용모였지만 그의 윤기 있는 음악만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우리네 가슴을 더없이 가멸차고 훈훈하게 적셔 주고 있는 것
이다. 신쾌동의 거문고 산조 한 장을 벗해 보는 인생 ! 거기엔 미지의 신천
지를 체험하는 감격과 새로운 삶의 예지를 감득하는 희열이 약속될 것이다.
음악이 진정한 음악일 때는 이처럼 절절한 감흥과 위대한 힘을 용출시키는
구나 하는 새삼스런 각성이 뒤따를 것이다.

* 여기에 인용된 여러 노래는 우리 학교 음향 자료실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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