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공부합시다!!

[[참고자료]]실기문학에 대하여

작성자◐애플민트◑|작성시간04.03.18|조회수384 목록 댓글 0
박미영 교수님의 자료입니다.
=============================================================================
수필론을 수강하는 국문과 학생 여러분

아래 글은 계해반정록의 성격에 해당하는 실기류에 대한 글입니다. 수업시
간에 말한 것에다 * 부분을 보태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강의안을 올리니 정말 한 학기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한 학
기동안 한문에다 아래 아자 들어가는 옛글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
분은 조금씩 능력이 신장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지는 못하시겠지만, 자신
도 모르는 사이에 국문과 전공학생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고 최선을 다해 학기말 고사를 봅시다.
건강조심하시기를 .....



실기류

1. 성격
1) 실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한 글로서 기사문(記事
文)이라고도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 전반에 대해 개략적으로 기
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정식 사서류와는 다른 종류의 글이다. 말하자면
한 사건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사건의 숨은 내막을 기록한
것으로 주로 한문으로 씌어졌는데, 조선조 후기로 오면서 궁중여인들을 중
심으로 하는 한글실기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시
간의 순서대로 기술하기 때문에 일기류와 일부 겹치기도 한다.
2)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대해 다각도로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적당한 글이다. 야사와 잡록을 모은 총서류들이 조선 후기
에 만들어 짐(교재 47∼57면). 여기에 실린 글들에 일화, 시화류도 포함되
어 있지만 대부분이 실기류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에는 사건비화(事件秘話
)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TV에서 다큐멘타리와 드라마를 섞은 장르들
, <사건 25시>, , <그것이 알고 싶다>, <실제상황>등의 류라고도
볼 수 있다.
3) 역사 연구의 보조 자료적 가치로 평가되는 기록물로 보기도 하고, 소설
의 양식으로 보기도 하는데 사실을 한 사람의 주관에 의해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수필 문학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2. 한문 실기류: 교재 47∼57면 참조.
1) {대동야승} 조선초기부터 인조 때까지의 일을 다룬 것으로 59종 수록 (
숙종말, 영조초 쯤) : 자료를 있는 대로 다 모은 것. 광해군의 실정에서
인조반정까지의 경과를 다룬 것들이 두드러진 비중. 임진왜란 기록 - <난
중잡록>(趙慶南, 1570∼1641), <再造藩邦誌>(申炅, 1613∼1653) : <광해군
일기>(실록과 비슷한 체제)에서 <계해정사록>에 이르는 양이 많다. 등등
2) {청구패설} 조선초기부터 순조조까지의 자료 124종 수록 시대순을 따르
지 않고 편차가 산만.
3) {稗林} 조선초기부터 철종때까지 96종(고종 때 완성)

3. 한글 실기류
1) <인목대비술회문> : 선조의 계비이고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仁
穆大妃가 회고한 글.
2) <서궁일기西宮日記> - <서궁록> 혹은 <계축일기> 라고도 한다. 일기체
로 보기도 하고 실제 일을 적었다고 해서 실기 혹은 기사문(記事文)이라고
도 하는데 연구자들에 따라서 <인현왕후전> <한중록>과 더불어 궁중소설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적인 서술이면서 작자의 주관이 짙어 수필의 특징
을 구현한다고 볼 수 있다. 영창대군 사건(1613)을 중심으로 선조 35년(160
2)∼광해군 15년(1623) 인조반정까지를 적었는데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
남(金悌男)이 영창대군을 추대하여 모반하려한다고 하여 김제남 부자와 영
창대군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인목대비는 서궁인 덕수궁으로 쫓겨나 폐
비가 되며, 그 뒤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11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었
다는 이른바 궁중비사이다.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에 대해서는 극존칭을 사용
하면서도 삼인칭의 시점. 모든 일을 실제로 보고들은 듯이 적었으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화를 실감 있게 꾸몄는데 작자는 당대 인목대비(仁穆大
妃) 측근의 궁녀라는 설과 인목대비 자신이라는 설이 있다.
<한중록> <인현왕후전>과 함께 3대 궁중문학으로서 소설문학 발달에 크
게 이바지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중기의 궁중에서 전개되
는 풍속·인정 및 생활상을 잘 보여준 점, 한문고사를 피하고 순우리말을
구사한 점, 중후하고 전아한 궁중어와 문체를 남긴 점 등은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묘사보다는 서술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당시의 치열한 당쟁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 보조 자료가 된다.
3) <계해반정록> 영창대군이 태어나면서부터 광해군이 유배에서 죽을 때까
지를 서술한 것으로 주요 사건은 인조반정이다. 보통 <계축일기>의 속편이
라고 한다. 서술자가 광해군에 대해서 온정적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소설
로 분류하기도 한다.
4) <산성일기(山城日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머문 48일간의 경과
를 일기체를 빌어 쓴 것이다. 실기류로 보기도 한다. 서사와 결사를 갖는
독특한 구조. 서:청조의 성립과 홍타시 이야기 ① 인조가 남한 산성으로 피
난가는 과정 ② 산성에서의 처절한 항쟁 ③ 삼전도에서의 항복 결: 삼전비
문 등 후일담. 치욕적인 외교의 일면이 생생하게 객관적으로 기록되었고,
인조반정(仁祖反正) 때의 일까지도 상세히 씌어 있어 사적 자료로서의 가치
를 지녔다.
5) <仁顯王后傳> 숙종조에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둘러싸고 일어나 일을 기
록한 것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소설로 보기도 한다.
6) <한중만록>혹은 <한중록> 혹은 <읍혈록(泣血錄)>이라고도 불리는데 혜
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1815-조선시대 영조의 아들 장조(사도세자)
의 비(妃)이자 정조의 어머니)가 지은 것이다. 혜경궁 홍씨가 60세 환갑을
지나면서 1795년, 사도세자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많은 일생을 회고
적이며 자서전적으로 기록한 것임.인 수필로 남겼음. 집안의 내력으로부터
세자빈이 되기까지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하고 있으나 엄밀히 일기체
는 아니다. 실기류라고 보는 것이 옳다.
* <계해반정록>, <산성일기>등을 통해 광해군은 쫓겨나고, 인조는 오랑캐
앞에서 무릎을 꿇었으니 존귀하기 이를 데 없는 국왕의 모습이 훼손되었으
며, 게다가 무능한 국왕과 신하들의 행태를 볼 수 있다. 그 뒤에 이어서 왕
권의 체통을 찾고 오래 통치를 한 숙종과 영조 또한 행실의 내막을 안다면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즉 <인현왕후전>, <한중만록> 등은 범부도 저질러서
는 안될 어처구니없는 짓들이 왕실에서 벌어졌음을 백성들에게도 알려주어
조선후기 평민들의 의식에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국문기록의 표현 형태가
발전하는 과정을 가늠하는 데 획기적인 의의가 있다.
* 임진난 이후 일본에 잡혀갔다가 귀환한 포로 중에는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경우가 있는데, 견문록적인 성격, 개인 체험의 일기적인
성격, 실기적인 성격을 겸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것으로 강항의 <
간양록>, 노인의 <금계일기>, 정희득의 <월봉해상록>, 정경득의 <만사록>,
정호인의 <정유피란기> 등이 있다. 400년 전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좋
은 자료가 되면서도 수필문학적 가치도 매우 높은 것들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