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가치관을 바꾸어 살자
요일 2 : 12 - 17
20260614 주일예배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 수억원짜리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1억원이 넘는 소나무 분재가 있습니다.
몇 천 만원 하는 애완견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역 지하도에서 하루하루 생명을 부지해 가는 노숙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것이 가장 가치 있고 귀합니까?......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점 집을 찾는 기독교인, 오늘의 운세를 의지하는 기독교인, 운명론을 말하는 기독교인 ~ 나는 아니죠?
그런데 이것이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의 현주소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잘못된 기독교적 샤머니즘을 훌훌 벗어버리고 기독교적 참된 가치관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당연히 받아들여져서는 안됩니다.
우리 민족은 수 천년동안 유.불교의 지배를 받아 가난을 면치 못하고 계급사회 속에서 헤매던 민족 아닙니까?
그러다 기독교가 들어오고, 함께 신학문이 들어오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 안에서 잘못된 사상이나 관습을 완전히 벗어버려야 할 때가 온것입니다.
무슨 띠냐? 예수띠다. 무슨파냐? 예수파다.
내 몸에 예수의 피가 흐르고있다 그렇게 살아야 해요.
그러면 상대방이 미쳤다고 할까요?
그러면 그래 미쳤다 예수한테 미쳤어.
이렇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보다 못합니까?
다이아몬드보다, 소나무보다, 개보다 못합니까?
오늘 본문은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여러분에게 참된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은 짧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인간의 수명은 120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나를 사느냐 보다는 한 번밖에 없는 짧은 인생을 바로 사는데, 어떻게 사느냐?
바른 인생관과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인생관을, 가치관을 바꿔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사람들처럼 살아버리기엔 너무도 억울합니다.
먼저 생각해볼 첫번째 미션은
첫째, 세상과 구별(성별,聖別)되어져야 합니다.
세상과의 구별은 이 세상의 이단아가 되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외톨이가 되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 세상과 떨어져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가 대해를 유유히 항해하듯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물위의 배처럼 세상 속에 가라앉지 않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항해 속에는 그 배의 항해보다도 더 큰 어려움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폭풍우가, 때로는 암초가 우리를 괴롭히고 파멸시키려고 도전해 옵니다.
이것이 사탄 마귀의 역사입니다.
물속으로 좌초시키려 합니다.
온갖 유혹으로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사람은 참 기독교인=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신자일 뿐입니다.
이것도 믿고 저것도 믿어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그런 신자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 속에서 뛰쳐나옵시다.
옛 생각을, 옛사람을 벗어버립시다.
새 인생관 새 가치관을 가지고 삽시다.
세상사람, 세속적인 사람들과는 구별되게 살자는 말입니다.
말하는 것도, 잠자는 것도 다르게, 공부하는 것도,
목적을 다르게, 분명하게 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의 철학이 분명한 개혁이 있어야 구별되게 살수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의 사도 바울처럼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 우리의 인생관은 바뀌게 됩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세상과 옛 생활이 완전히 뒤집어진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세속적 표준의 모든 가치관을 버리고 부정해버려야 합니다.
본문15절 세상을 사랑치 말라 이것이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길이요. 우리 구별된 성도의 진정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그 무엇도 옮겨 놓아서는 안됩니다.
둘째, 꿈(Vision) 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선생님이 한번은 자기 반 학생들에게 '뛰는 벼룩'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도록 했다. 학생들은 수십 마리의 벼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벼룩들이 얼마나 높이 뛸 수 있는지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학생들은 커다란 유리그릇을 가져다가 뒤집어서 뛰는 벼룩 위에 덮었다. 이제 벼룩들은 뛸 때마다 유리그릇에 부딪혀서 결국은 더 이상 높이 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유리그릇을 치웠으나, 벼룩들은 아직도 유리그릇이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그 높이까지만 뛰었다.(/////)
오영석이라는 소년은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 진학의 길을 열어 주십시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겉봉에 [하나님께]라고 적힌 이 편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우체국에서 생각끝에 어느 교회로 보냈다. 그 교회 목사의 주선으로 이 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고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신대의 조직신학 오영석교수가 되었다. (/////)
김삼환이라는 소년 역시 가난으로 공부의 길이 막히자 14세부터 새벽기도회에 나가 종을 치며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호소하였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이 없어서 어머니 치마를 덮고 가서 종을 치며 기도하였다. 이 소년이 자라서 목사가 되었는데 그가 명성교회를 담임하고 은퇴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
꿈을 가두고 생각을 가두고 사는 사람은 이런 벼룩과 같습니다. 나는 안돼.....
여러분,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또한 꿈이 있는자는 소망이 있는 자는 죽지 아니합니다.(콜롬부스는 말했다-사명자는 죽지 않는다고)
시시한 꿈을 갖지 말고 원대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금년의 꿈과 평생의 꿈을 가지십시오.
성경 속의 꿈 꾼 자들이 많습니다.
꿈에 주님을 만나거나,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창 37장은 꿈꾸는 요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위로 형들이 11명이나 있었지만 그는 장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실현 가능한 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만 하면 장자권도 얻을 수 있겠구나 확신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차지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조부 아브라함은 장자 이삭을 제물로 드림으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할아버지 이삭이 큰아버지(이스마엘)가 아닌 아버지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허락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거다,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
요셉의 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이 30세에 당시 최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들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죽을 고비와 고난과 유혹, 누명도 그는 인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꿈을 가졌기 때문에 그 꿈을 생각하고 인내했습니다.
마라톤 선수 역시 42.195Km를 달리면서 힘이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승리의 월계관을 생각하고 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십니까?
젊은이들은 좋은 학교 진학하는 꿈을 꿉니까?
좋은 직장 들어가기를 원합니까?
아름다운, 멋있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꿈을 꾸십니까?
좋은 집을 장만하기를 소원합니까?
아니면 많은 돈을 벌어서 거부가 되는 꿈을 꾸십니까?
여러분 생의 목표를 하나님께로 수정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공부 잘하는 것 좋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가치관을 세상에서 하나님의 관심으로 옮기십시오
고급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식사 대금을 다 지불합니다.
음식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식탁 위의 음식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은 것만 내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 음식은 이미 내가 값을 지불했지만 먹기 전에는 내 것이 아닙니다.
거부가 되면 뭐합니까? 그 물질 주님 위해 쓰십시오.
은행에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내 것이 아닙니다.
월 내가 쓰는 것만이 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별것 아닙니다. 17절에 보니까 이 세상 것은 다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요셉과 같은 Vision을 가지십시오
요일5:19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는데, 그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셋째, 주님 손을 꼭 붙들어야 됩니다.
옆 사람과 손을 한 번 잡으세요.
놓치지 않도록 잡으세요.
주님 손이라고 생각하시고.......
옛날 공중그네 타는 서커스 보셨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손을 붙잡던가요?
자세히 보면 둘이 서로 상대방의 손목을 잡습니다.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항상 손을 벌려 우리를 맞아주시려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팔장을 끼고서 손을 내밀지 않는 것입니다.
신명기28:12 네 손이 행한 대로 복을 받으리라
잠언12:14 손이 행한 대로 보응 받는다
이 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람을 대표합니다. 자신을 대표합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낙사스다는 “사람이 동물보다 예지적인 것은 손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 했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손이 모자란다,
나쁜일을 그만 두게될 때 손 씻었어,
일을 멈추면 손 놨어 또는 손 뗐어,
어떤 것을 쟁취하고서는 수중에 들어왔다,
일을 돕는 사람을 조수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아는 일을 손이 다 안다고 합니다.
손은 소경의 눈입니다.
그런데 이 손이 죽어있으면, 이 손이 일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입은 살았으나 손은 죽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레위인과 제사장도 손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은 손이 살아있었기에 긍휼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교회뿐만이 아니라 사회 생활 가운데서도 말 많이 하는 자는 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을 열심히 하는 자는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우리의 죽은 손이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태초로부터 사람은 악을 행하는데 손을 썼습니다.
아담이 그랬습니다.-가인이 그랬습니다-라멕(노아의 아비/창4: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
자, 우리 모두 두 손을 듭시다. 이것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적의가 없다는,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며, 항복의 표시며, 이것은 회개의 표시입니다.(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우리는 이 손으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붙들기를 원합니다.
요10:28 하나님께서 붙드심으로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다
시37:24-25 여호와께서 손을 붙드시니 저는 자주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한다 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 손을 꼭 붙잡을 때 기우뚱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기우뚱하면 어머니는 더욱 힘차게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여러분들이여
우리 주님은 기도할 때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주여! 내손 잡아 주소서(주님여 이손을 꼭잡고 가소서)
주님 손 꼭 붙들고 나가는 인생, 얼마나 멋있습니까?
주님손 붙듦으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인생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1.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2. 꿈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3. 주님 손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갑니다. 가치관이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소중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삶의 기준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위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과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가치관이 잘못된 인생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핸들이 조금만 틀어져도 사고가 나거나, 결국 전혀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치관이 잘못되면 인생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세상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격적 가치관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1) 우리의 신분을 기억하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12-14절)
본문에서 요한은 네 부류의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 아이들아"
이는 교회 안의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먼저 성도들의 신분을 상기시킵니다.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우리의 존재가 예수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은존재 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무엇을 가졌느냐?" "얼마나 성공했느냐?" "얼마나 유명하냐?"
그러나 하나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자녀다."
성도의 가치관은 세상이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기준에 있어야 합니다.
예화
어느 부자가 아들에게 값비싼 시계를 선물했습니다.
아들은 그것의 가치를 모르고 중고상에 갔습니다.
중고상은 5만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골동품 가게에서는 100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전문 감정사는 수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같은 시계인데 보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랐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독생자의 피 값으로 사신 존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2) 세상을 사랑하는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15절)
본문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치 체계를 의미합니다.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최고의 가치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 마6: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보다 세상을 우선하게 됩니다.
예화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소돔성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의 몸은 나왔지만 마음은 소돔에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은 세상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을 찾고 평일에는 세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보십니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삶이 바뀝니다.
(3) 육신의 정욕을 이겨야 합니다
(16절)
본문은 세상 가치관의 몇 가지 특징을 말합니다.
그 첫번째 육신의 정욕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하는 삶입니다.
현대 사회는 욕망을 부추깁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참지 말고 즐겨라."
그러나 성경은 절제와 거룩을 가르칩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도 절제입니다.
예화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감옥에 갔지만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순간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람이 승리한 것입니다.
(4) 안목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16절)
안목의 정욕은 눈으로 보는 것을 탐하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욕이 시작되었습니다.
아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 외투와 금덩이를 보고 탐내어 이스라엘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비교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남이 가진 것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
끝없는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성도는 비교가 아니라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는 천국의 가치관이고 탐욕은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예화
한 농부가 자기 밭을 보며 늘 불평했습니다.
밭 한 귀퉁이에 작은 우물이있어 밭은 늘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뭄이 오자 자기 밭에 있는 우물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없는 것보다 이미 받은 은혜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5)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16절)
이생의 자랑은 자신의 능력과 소유와 성공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학벌을 자랑하고, 재산을 자랑하고, 권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성경의 예
느부갓네살 왕은 말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세운 것이 아니냐"
그 순간 하나님은 그의 교만을 꺾으셨습니다.
반면 다윗은 모든 승리 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성도는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6)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17절)
본문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세상은 지나갑니다.
돈도 지나갑니다. 명예도 지나갑니다. 권력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영원합니다.
예화
어느 부자가 죽음을 앞두고 말했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구나."
죽음 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남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한 일은 영원히 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늘에 쌓은 보물은 영원합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치관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 좀 알아줘. 나만 바라봐
세상의 가치관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자녀 됨을 기뻐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거룩을 추구하는 삶
감사하는 삶, 겸손한 삶
영원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세상은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가치관을 점검합시다.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욕망이 아니라 말씀을 선택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7)
아멘.
여러분 인생관이 바뀌었습니까?
처음 말씀드렸던
다이아몬드, 분재, 애완견, 노숙인 ........
중에 어느 것에 관심이 잇나요?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관심을 가질까요?
인간>동물>식물>광물 순서입니다.
나의 참된 가치관이, 성경적 가치관이, 우리 교회의 부흥을 , 우리 가정의 회복을 이루며 , 내가 다니는 직장이 나로 인하여 기쁨이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나의 변화된 가치관으로 인해, 내 삶이 변화 될 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