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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인물

96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①

작성자둘로스|작성시간23.11.18|조회수57 목록 댓글 0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①
 
목회자들은 주일 아침이면 분주하기 마련이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11시 주일예배를 위한 차량 운행이나, 주일학교 차량 운행은 필자의 몫이다. 주일 아침마다 필자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 아이들을 태우러 일찌감치 나선다. 16년째 지리산 목회를 하면서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쳐 왔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늘 아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들은 주일 하루라도 아이들을 교회에서 맡아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면서도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진짜로 교인이 될까봐 걱정이 되는지 교회를 보내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이 자라서 청소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세상 문화와 접하게 되고, 교회 보다는 PC방으로 가든지 여기저기 봉사활동을 핑계로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정훈이는 아직까지 교회에 남아 있다. 내년이면 고3이 되지만, 유치부 때부터 우리 교회를 꾸준히 잘 나오고 있다. 동네 삼거리에서 엄마 아빠가 중화요리집을 하시느라 늘 바빴던 부모님 밑에서 정훈이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누나랑 너댓 살 된 동생 정인이와 함께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천성이 착하고 순한 부모님들을 닮은 정훈이는 깡마른 체격에 키가 훌쩍 커져서 이젠 나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 그동안 정훈이는 주일학교 아이들과 함께 스키도 타러 다녔고, 태국 매솟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계시는 허춘중 목사님을 찾아가서 한 주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왔다. 정훈이는 스키도 처음 타 봤고, 비행기도 처음 타 봤다. 그리고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도 처음 타 봤다. 그 이후로 주일 아침이면 초등학교 5학년인 어린 동생과 함께 교회에 잘 나오고 있다. 물론 주일 아침마다 문을 두드리고 깨워야 하는 건 변함 없지만, 그래도 주일이면 교회에 가야 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어렸을 땐 성탄절 행사 사회도 보고, 율동도 했던 정훈이는 이제 아이들을 지도할만큼 부쩍 성장했다. 재작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컵 난타를 열심히 연습해서 성탄절 전야제 때 멋진 공연을 보였는데, 금년에는 동생들과 함께 젓가락 난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내년이면 대학입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는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훈이는 워낙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탓에 성격도 느긋하다. 그러다 보니 조용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따금씩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면 설교 말씀도 귀를 잘 기울여 듣는다. 우리 교회 주일학생들 중에서는 제일 나이가 많은 정훈이는 이제는 주일학교 보조 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그동안 10여 차례 성탄절을 보내오면서 정훈이는 성탄절이 특별한 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느 큰 교회처럼 체계적이고 멋진 공연은 아니어도 자기가 맡은 역할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작은 선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중화 요리집을 접고 다른 일터에서 주방장으로 일하시는 아빠와 인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방 일을 하고 계시는 엄마도 정훈이를 보면서 대견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만 부모님들이 공연을 보러 오실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머지않아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정훈이도 결혼을 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을 기르게 될 텐데, 정훈이는 아이들의 성탄 축하 공연을 함께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끔씩 집안 행사로 교회에 오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다음 주일이면 교회로 달려나오는 정훈이를 보면서 필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그나마다행이었던 것은 필자의 어머니께서는 예수를 믿는 분이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성탄절 준비를 했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산에 올라가셔서 소나무를 베어다가 성탄 트리를 만들어 주셨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별 모양의 등을 대문 밖에 달아두고 새벽송을 도는 성도들을 맞아 주셨다. 집에서 만든 쌀강정이나 엿으로 버무린 강냉이를 준비해 두셨다가 새벽송을 도는 사람들에게 대접을 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정훈이네 부모님들은 새벽송을 돌아도 밖에 나와 보시지 않으셨다. 성탄 찬송을 두어 곡 부른 뒤에 발길을 옮기면서 같이 새벽송을 돌고 있는 정훈이를 슬쩍 돌아보았다. 겸연쩍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훈이가 이 다음에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에는 떳떳하고 기쁘게 아이들과 함께 성탄절을 맞게 되기를 바란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한 겨울에 성탄절을 보내면서 정훈이네 집에도 따뜻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 바라는 마음으로 정훈이의 젓가락 난타에 가슴이 콩닥거림을 느껴 본다.

안동 추목샤론교회 조한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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