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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혹은 열매[新]

노동소외와 노동노예화의 기묘한 관계: 인간소외 노동소외론 인간소외론 마르크스

작성자지옥변|작성시간16.11.18|조회수303 목록 댓글 0

얼마간 알려졌다시피, 카를 마르크스(칼 맑스)는 《1844년 경제학철학초고》와 《자본론》제1권에서 노동소외현상을 설명한다. 마르크스가 구사하는 논리의 요지는 '노동은 노동시간으로 환산되어 상품가치측정단위로 인식되면서부터 소외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을 아우른다. 그러니까, 다양한 노동들의 가치가 상품단위로 측정되거나 평가되면서부터 노동들의 고유한 본질들은 무시되고, 오직 노동량=노동시간만 노동가치를 규정하는 상품가치측정단위로 탈바꿈하여 노동에서 노동본질(노동내용)을 소외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간이란 실제로 교환될 수 없는 무형의 단위에 불과해서, 그것의 매개물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노동시간의 매개상품 즉 화폐로 나타난다. 이런 마르크스의 논리대로라면, 이른바 화폐로 표현되는 상품가격은 화폐를 매개물로 삼는 노동시간의 표현일 수 있다. 요컨대, 마르크스가 이해하는 노동소외란 노동본질을 묵살하고 노동시간만 상품(화폐)을 매개로 표현(교환)하는 사태일 수 있다.
물론 《초고》에서 분석되는 노동소외현상과 《자본론》에서 분석되는 노동소외현상은 약간 다르게 보인다. 《초고》에서 소외되는 것은 ‘노동의 터전-현장-대상인 자연, 노동의지, 노동자의 노동의지나 노동의도나 노동목적’이었다면 《자본론》에서는 ‘노동의 본질이나 노동결과(상품)의 내용(또는 사용가치)’이었다. 그러나 노동과정이 결국 노동을 소외시키고 노동자 자신마저 소외시키는 이른바 노동소외로 귀착한다면, 두 가지 노동소외현상도 결국 일맥상동한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렇듯 소외되는 노동에서 노동자 자신마저 소외된다고 주장하는 노동자소외론은 종국에는 이른바 ‘인간소외’를 운위하는 ‘인간소외론’마저 빚어낼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소외는 자연에서 소외되고 노동의 본질에서도 소외된 노동이 노동하는 인간(노동자)에서도 소외되어 기계화되거나 자동화되는 과정에서 초래된다. 그래서 노동소외현상은, 다른 한편에서는, 오히려 노동을 인간소외과정으로 파악하는 인식의 역전현상을 초래한다. 특히 이 인식역전과정에서 노동은 인간의 본질로 변지(變知)되어 거의 확정되어버린다. 요컨대, 노동자의 의도가, 즉 인간능력(노동력)으로 자연을 변형하고 가공하겠다는 노동의 의도가, 노동의 본질 내지 본성(?)일 수도 있을 ‘기계성’에 압도되면, '노동자의 노동은 노동자가 애초에 의도한 노동이 아니다'고 인식되다가 급기야는 '노동자의 본래의도를 실기(失棄)한 노동은 인간의(또는 노동의?) 상실한 본질(본래의도)을 대변하는 활동이다'고 확신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그런 인간본질(본래의도)을 되찾으려는 인간이나 노동자는, 마르크스의 생각대로라면, 또다시, 노동해서 노동본질과 본래의도를 구현(복원-회복)해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자신의 (또는 노동의?) 본질을 구현(복원-회복)하려면 노동소외과정을 역전시켜 이른바 ‘본연(?)의 노동’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르크스의 생각대로 또다시 한 번 더 정리되자면, 본디부터 자연을 소외시키는 활동이던 노동이 어느덧 노동자체마저 소외시키기 시작하면서, 노동의 역사는 노동소외의 역사가 되었고, 그런 와중에 노동본질마저 상실하여 상품가치를 표현하는 단위로 전락해버린 (아니,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승격해버린) 노동은 상품을 매개로, 즉 화폐를 매개로, 삼아 노동본질(노동의도-노동시간-사용가치?)을 구현해야 할 지경에 처한다. 그렇게 상품화되고 화폐화된 노동은 이제 노동본질을 표현(구현-교환)하는 매개물로 확정된 상품(화폐)을 획득하려는 노동(이른바 자본주의노동)으로 탈바꿈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노동하는 인간이 노동본질을 구현하(되찾으)려고 노동에 얽매이는 과정은 곧 ‘소외된 노동’의 본질을 표현(복원-구현-교환)하는 매개물-상품(화폐)을 획득하려는 상품생산활동에 얽매이는 과정이다.
여기서 두 가지 근본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하나는 “자연을 소외시킨 노동이 왜 노동 자체마저 소외시키기 시작했느냐?”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대략 노동의도, 노동목적, 노동시간, 사용가치 등으로 얼버무려지는 “인간노동의 본질이란 대관절 무엇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사실 이 두 문제는 동일한 맥락에 속한다. 노동의 본질을 알아야 노동이 자체적으로 소외되는 이유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자연과 노동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면서도 ‘노동노예’로 전락하는 이 기묘한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ㅡ 즉 노동을 벗어나거나 노동으로부터 배제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죡변이 해추하는) 노동소외가, 노동에 포박-강박-예속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노동노예화’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는 이 기묘한 패러독스를 이해할 수 있는 ―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에그~ 언제 이어쓸지 장담불가하나, 하여간, 일단 여기까지.)
(200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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