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 위령 노래비에 서린 이야기
●光山少尉
戰前、朝鮮は日本の統治下にあった。朝鮮出身者は士官學校などへの入學も許されており、中將もおられたとのことである。當然、特攻隊としても十數名の朝鮮出身者が出擊していた。「知覧特攻平和觀音堂」にも十一名の朝鮮出身者が祀られている。
朝鮮出身者のうち、鳥浜トメさんとかかわりの深かった光山文博少尉(本名卓 庚鉉氏)について取り上げることとする。
アリラン
昭和18年、光山少尉は京都藥學專門校(現在京都藥科大)から生徒出陣し、太刀洗陸軍飛行學校知覧分?所時代の知覧飛行場に?在した。知覧で特操一期生として敎育隊で操從敎育を受けたのである。この時から富屋食堂にはよく出入りをしていた。朝鮮出身で身寄りの少ないであろう光山少尉をトメさんは何かと?にかけ、台所に立たせたり、一諸に食卓を?んだり自分の息子のように可愛がっていた。
昭和20年、光山少尉は第51振武隊員として知覧に返ってきた。今度は特攻隊員としてである。以前にも?して淋しそうな光山少尉をトメさんは温かく迎えた。そして、5月10日の夜、出撃前夜にトメさんは食堂に一人でいた光山少尉を自分の部屋に呼んだ。長女の美阿小さんと次女の礼子さんと4人でいた。トメさんが光山少尉に歌を歌うよう促したところ、
「今夜は最後だから、故郷の歌を歌うよ。おばちゃん」と言い、歌い始めた。 アリラン アリラン アラリヨ アリラン峠を 越えていく 私を捨てて 行く君は 一里も行けず 足痛む 光山少尉は帽子のひさしを鼻の下までおろして顔を隠したが、その下から涙が流れ落ちていた。皆もたまら なくなって泣きながら「アリラン」を歌った。光山少尉は歌い終わると、懐から朝鮮の布地で織った黄色い縞の入った財布をとりだし、筆で「贈為鳥浜とめ殿 光山少尉」と書いた。「おばさん、大変お世話になりました。お世話になったしるしとしてこれしかありません。はずかしいですが、形見と思って受けとってください」と言った。光山少尉は1年前に母を失い、3月に年老いた父と妹を朝鮮に送り返していた。
翌日早朝、袖に日の丸を縫いつけた光山少尉は見送りに来たトメさんと握手を交わし、南の海に出撃したまま二度と戻らなかった。
(参考・一部引用:「群青)、産経新聞平成12年11月28日「特攻の母・鳥浜トメ(中))、会報「特攻」第44号」 >>
이런 불행한 ... 전쟁을 또 바라는 일본 사람이 있는가...
전쟁으로 무고하게 목숨 잃은 수많은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합장
<*> 아리랑 위령비에 얽힌 이야기
전전戦前(太平洋戰爭), 조선은 일본의 통치아래 있었다. 조선출신자는 사관학교 등에 입학이 허용되어 있었으며, 계급이 중장(中将)도 있었다. 당연히 특공대에도 10수명의 조선출신자가 출격하고 있었다
「知覧特攻平和観音堂」에도 11명의 조선출신 전사자의 위패가 있다.
조선출신자 중에서,
“鳥浜トメ"씨와 친하게 지낸 光山文博少尉(本名 卓 庚鉉氏)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보겠다.
●アリラン - 아리랑
쇼와18년, 光山少尉는 京都약학전문학교(현京都 薬科大)학도출신로서 출진出陣해,太刀洗陸軍飛行学校知覧分教所時代의 知覧飛行場에 있었다.知覧의 特操一期生으로 교육대에서 조종교육을받았었다. 이 때 부터 富屋食堂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조선출신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미쯔야마" 소위를 “トメ”씨는 주방에 오게 하거나, 가족식탁에 함께 앉히고 자식처럼 돌보기 시작하였다 쇼와20년, 미쯔야마소위는 第51振武隊員으로 知覧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특공대원으로서 였다 예전보다 더 슬슬해 보이는 光山少尉를 “トメ”씨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드디어 5월 10일 ,
출격을 앞둔 밤을 맞은 “トメ”씨는 식당에 혼자 있는 "미쯔야마" 소위를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長女인 美阿小, 次女인 礼子 이렇게 네 사람이 방에 있게 되었는데 “도메”씨는 미쯔야마 소위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때 "미쯔야먀" 소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오늘 밤은 최후의 밤이니 고향의 노래를 불러 보겠어요 ... 아주머니.....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0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하면서
모자챙을 코밑에 까지 내려 얼굴울 가리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는 눈물이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우리들은 더 참지를 못하고 울면서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른 뒤에 그는 잊을 수 없는 그리운 고향의 추억이 베인 조선 무명베 쪼각으로 노란색 무늬가 놓인 지갑을 꺼내놓고서는 지갑에다 이렇게 썼다
「贈為鳥浜とめ殿 光山少尉」...아주머 님.....그동안 신세를 많이 젔습니다 감사의 뜻을 담은 정표로 드릴 것 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네요, 부끄럽게 생각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남기는 저의 선물이라 생각 하시고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 하였다 .
“미쯔야마“소위는 1년 전에 어머니를 잃었고, 3월에는 나이 많은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조선으로 되돌아 가게 하였었다고 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소매 끝에 히노마루(日の丸)를 붙인 “미쯔야마"소위(光山少尉)는 마지막 출격을 전송하러 나온 "도메"씨의 손을 놓은 뒤 남쪽 바다 하늘을 향해 날아간 뒤론 ......
영영 돌아오지 안했다고 한다.
* 이런 불행한 "전쟁"을 일본의 누가 또 바라겠는가....수상.아베 란 놈인가?일본국민 인가? 일본 제국주의자들 인가.?.. 일본 국수주의자 들인가.?..
오늘 우리들은 단결된 국민과 부강한 국가 를 이룩해야 이런 비극이 없을 것인데
지금의 이 나라 일부 국민과 정치 지도자 들의 작태는 한심 하기 그지 없으니
어느 학자가 말한 이 나라가 997번의 주변국들로 부터 외침을 당한 굴욕의 통분을
가끔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지 않어면 또 되풀이 된다는 겻이다.
나라 없는 젊은 꽃이 한 없이 흘린 슬픔의 눈물 ... 강물이 되어이 말없이 흘러 가누나.....
금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