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나브로서재

작성자이나|작성시간23.02.12|조회수5 목록 댓글 0

섬  /  윤여송

 

 

 

관념이 퇴적층으로 굳어진 섬에는

푸석불 같은 희망으로 탈출을 꿈꾸는

유배된 언어가 살고 있다

 

푸른 물비늘을 출렁이며

대양을 활보하던 파도가

고립된 섬에 몸을 부딪쳐

하얀 포말로 생의 찬가를 부를 때면

 

거역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을

비틀걸음으로 걷던 언어는

자유를 향한 외침으로 탈출을 준비한다

 

그러나 희망은 망상이 되어

무수한 시간을 고립 속에 살아온 섬은

언어를 위한 길을 내주지 않는다

닭 모가지만도 못한 울대를 열지 않는다

 

바싹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헤 벌린

어두운 동굴 속 핏기없는 미라처럼

거저 냉랭한 숨소리만 바람으로 헉헉거릴 뿐

 

파도가 격정으로 헤집고 지나간 자리에는

침몰한 희망만 동티를 안은 상처로 남겨져

탈출을 금지당한 언어는 애잔하게 시들어가고

고립된 섬은 점점 더 고립에 빠져들고

 

기어이 고립을 자유라 항변하며

마른 땅 위를 부유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너와 같아 나도 하나의 섬이 되었다.

 

== 시집 '수염 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