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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서재

쓸쓸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음은

작성자이나|작성시간23.02.17|조회수5 목록 댓글 0

쓸쓸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음은   /  윤여송

 

 

 

통속으로 가슴을 아리는 유행가 곡조를 빌어오지 않아도 된다

밤새도록 몽당한 연필로 가난한 시인이 울음으로 토해낸

잃어버린 사랑에게 보내는 부질없는 연서를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백일홍 화려하다 붉었던 꽃이 아흔아홉 날에 기어이 스러지고 

야막나무 푸르러 청춘이다 여름 한철 기성하던  잎새도 검버섯 낀 얼굴로 메말라지고

재잘재잘 머리꼭지 빙빙 돌게 지독히도 귀찮기던 참새도 떠나가지고 

텅 빈 들 가운데 우두커니 홀로 남아 자리를 지키며 말을 놓은 허수아비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쓸쓸하지 않다는 항변 같은 독백의 시간이

코스모스 낭창한 허리에 유혹으로 감기울 때

쓸쓸하다고 푸념으로 폐해지지 말라고

 

별들이 그대를 위해 불꽃에 심지를 돋우고

구름이 그대를 위해 포근한 침상을 꾸미고

바람이 그대를 위해 달콤한 노래를 부르고

낙엽이 그대를 위해 어여쁜 춤들을 추지만

 

그대가 진정 쓸쓸하지 않을 수 있었음은

그대를 닮은 그 그대가 쓸쓸하다 하지 않았었기에.

 

= 시집 '수염 난 여자를 만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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