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의 향기 속으로]“춥고 배고파도 배우에겐 결코 좌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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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네스꼬 대표작 ‘살인놀이’ 연습 열기로 후끈
16개 장면으로 구성…실제보다 강렬한 몸짓
동구 궁동 극단 ‘예린’
“탈무드의 이야기처럼 아이를 사랑한다면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되는 것이지 고기를 어떻게 먹을 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연극도 마찬가지로 한정된 지원금을 나눠먹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광주 동구 궁동에 자리잡은 극단 예린(대표 윤여송). 척박한 공연계의 현실에서 윤씨는 초대권과 할인권을 없애고, 오직 배우들의 열정으로 평가받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열악한 연극 실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발품을 팔아 공연 홍보를 해야하는 여건도 모두가 그의 몫이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하나만으로 모든 고통은 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연극을 하고 싶고, 열정 하나면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하루 하루를 채찍질하고 어려운 연극인의 삶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는 한 작품 하나 하나에 혼신을 다한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살이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배우는 관람객의 앞에 서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선택한 이오네스꼬의 대표작 ‘살인놀이’도 그의 성격을 닮아있다. 죽음을 다루는 그의 자세는 다른 연출가에 비해 사뭇 진지하다.
연극이 공연되는 1시간 40분. 그 시간을 위해 매일 구슬땀을 흘리는 그의 연습실을 찾았다. 배우들은 서로의 의상을 챙기고 첫 장면 연습을 연기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무대를 지나다닌다. 출근길 사람들로 북적이는 복잡한 거리에 나온 듯한 이들의 움직임은 산만하지만 알 수 없는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다. 몸빼를 입은 아줌마, 뾰족구두에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 고민이 많아 보이는 직장인,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 등등…. 사람들의 발길은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복잡하다.
발소리에 이어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커지는 사람들의 소리는 단순히 수다가 아닌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과 함께 극의 긴장감을 이끈다.
연출을 담당한 윤씨는 “죽음이라는 것은 참 단순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죽어야 하는 지를 모르기 때문에 공포스럽게 느끼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며 “죽음의 종류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이 무대에는 16개의 독특한 죽음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삶의 부조리를 드러낸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윤씨는 “이 연극은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배우의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이다”며 “20대 연기층이 부족한 광주에서 배우들의 실력 향상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이 작품을 통해 죽음이라는 가장 단순한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사람들은 처음에는 왜 죽을까라는 의문을 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죽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이 연극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16세부터 50세의 다양한 연기층이 활동하는 이 무대에는 최초 광주장편독립영화 ‘기억에서 추억으로의 증후군’에 출연하게 된 조혜훈씨를 비롯해 임채현, 김동원, 소병주, 정혜진, 임민경, 정다경, 조여리, 고시온, 서한빛씨가 함께 한다. 평일 오후 7시부터 시작되는 공연 연습은 실제 무대에 올리는 것처럼 진행된다. 바닥을 기어다니고,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매달리는 배우들의 모습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무색하게 할만큼 강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들의 연극 ‘살인 놀이’는 오는 31일부터 8월 2일까지(오후 4·7시) 예술의 거리 궁동예술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지난 2002년 창단된 극단 예린은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연극인이 함께하는 순수 민간 예술단체로, 오는 12월께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