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신앙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연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직전의 자식을 보는 부모는 어떻게 대처를 할 까 라는 질문이었다.
부모는 어떻든 자식의 생명 만은 살려야 했다.
자식의 생명을 살리는데 있어서 부모의 행동은 어떤 것이든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때론 팔이 부러질 수도 있고, 다리가 다칠 수도 있다.
머리채를 잡을 수도 있다.
참으로 위험한 순간이다.
그래서 부모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살려야 겠다는 생각 뿐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은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를 살리시기 위해, 내가 아플지라도 속이 상하고 고통이 심할지라도 하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감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하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행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의 행동을 때로 우리는 오해를 하고 있다.
나한테 되물어 본다.
너도 그러지 않았는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아파했던 모습들, 그냥 속상해야만 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 본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신다.
우리가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아버지의 은혜는 항상 풍성하다.
깨닫고 갔으면 참 좋겠다.
깨달음이 늦던 이르던, 깨달음이 중요하다.
그래야 주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다고 했다.
생명을 풍성히 주시려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방법대로, 우리의 뜻대로 그 생명을 취하려고 했다.
주님이 주시려고 한 그대로 받아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받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깨지는 것이다.
그냥 주님이 주시려한 사랑과 생명을 그래도 받아 들이자.
때로는 아플 수도 있고, 고통 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상처가 났을 때 새살이 돋아 오르기 위해서 아픔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새살이 돋아오르기 위한 아픔인 것이다.
새 생명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해 보자.
그래서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