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둔 시간
물 빠진 모랫길을 걸으면
너는 비워둔 시간으로 나를 맞는다
파도가 접어놓은 주름에서
어머니의 거친 손등을 만나고
게가 구멍 곁에 쌓아 올린 흙무더기는
파도가 스치면 흩어진다
고동이 긋고 간 선을 따라가다 보면
아직 색칠이 덜 된 그림동화책
한 권이 펼쳐지고
유모차에 앉은 손녀가 고래소리 한 번 내면
갈매기 몇 마리 허공을 가르고
파도는 덩달아 물살을 뒤집는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들의 등 위로
나는 잠시 다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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