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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신화가 된 조선 '서문' (정광재)

작성자뽈뚝농장|작성시간26.06.11|조회수8 목록 댓글 0

신화가 된 조선 ‘서문’(정광제)

 

조선이라는 이름은 긴 역사를 가졌지만 해방 이후의 한국사회가 그 이름을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일정한 심리적 기원을 품고 있었다.

 

해방 직후의 역사학을 사실을 밝히는 학문이라기 보다 새로운 국가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일종의 심리 장치였다. 상처받은 집단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 구조, 즉 자기에게 유리한 진실을 조립하는 과정이었다.

 

이 서사 근성의 출발선에는 ‘실제 조선이 어떠했는가’ 보다 ‘조선이 어떠했으면 좋겠는가’가 놓여 있었다. 자기 정체성의 공백과 심리적 불안이 뒤엉킨 혼란 속에서 해방기의 지식인들은조선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대신, 조선의 결함을 희석하거나 은폐하거나, 심지어 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이 지점에서 해방 이후의 역사학은 이미 비판적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 심리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식민통치가 남긴 상처를 조선이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역사학은 구조적 원인 분석보다 피해자 정체성 강화를 택했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피해자는 설명 대신 위로를 요구한다. 이 논리가 역사학의 중심부로 들어가면서 조선은 더 이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해방 직후의 지식인들은 조선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이상할 정도로 비판을 피했다. 조선의 정치구조가 낡았다는 사실, 개혁에 실패했다는 사실, 지배층이 집단적으로 기득권 유지에 매달렸다는 사실은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은 ‘착한 나라’, ‘도덕적인 나라’, ‘유교적 이상을 실천한 고결한 공동체’처럼 묘사했다.

 

실제의 조선은 당쟁과 문벌, 촌락 대립이 일상화된 사회였고, 지역 패권구조가 생산성을 갉아 먹었으며 지배층은 도덕적 이상보다 권력 생존에 더 집중했지만, 이러한 냉정한 현실은 역사 교육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조선은 휼륭했다’는 문장을 더 필요로 했다.

 

역사학은 사실과 해석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지만, 해방 후 한국에서 우리 역사는 거의 종교적 상징처럼 사용되었다.

 

‘우리의 것’이라는 말은 올바름, 정당성, 순수성, 도덕성까지 한꺼번에 포괄했다. 이 말 앞에서는 비판은 곧 배신이 되고, 분석은 곧 비난이 되었다.

 

특히 조선에 대한 비판은 민족 부정과 연결되곤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선의 단점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거나, 외부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생긴 결과로 설명되었다.

 

조선의 책임은 약화되고 조선의 긍정성은 과장되었다. 이런 구조는 역사학을 사실 탐구의 학문이 아니라 ‘심리적 치료제’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상처받은 민족이 자기 자신에게 읽어 주고 싶은 이야기, 즉 자기 기만적 위로의 역사가 학문을 덮었다.

 

학자들은 조선을 다시 쓰면서 민족적 자존감 회복이라는 과제를 학문적 의무처럼 떠안았고, 연구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조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작업’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결함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부드럽게 윤색되었다. 이런 심리와 욕망이 되 섞인 상태에서 탄생한 것이 해방기의 첫 번째 역사만들기였다.

 

조선은 도덕적으로 우수하지만, 외세에 의해 억압받은 나라, 내부 문제는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순결한 문명, 식민지화는 외부의 강압 때문이지 내부 결함 때문이 아니라는 식의 설명이 널리 퍼졌다.

 

이는 분석이 아니라 자기 미화였다. 이런 서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기억은 정치화되었고, 역사학은 민족적 자존감 회복의 도구가 되었다.

 

‘신화가 된 조선’의 모든 장에서 전개될 작업은 조선을 미화하는 대신 조선을 분석하고 조선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그 결과 한국 사회가 어떤 심리 구조와 사유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밝히는 과정이다.

 

조선을 이해한다는 것은 조선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왜 실패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비판적 이해 없이는 한국 사회 역시 같은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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