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연꽃을 공양한 청년
불교의 가르침을 보면, 부처는 석가모니 한 사람만이 아니다. 먼 과거의 세상에도 오랜 세월을 두고 차례로 수많은 부처가 출현했었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부처는 석가모니이지만, 앞으로 세상이 변해 사람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출현할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처럼 태어나 출가수행하고 도를 이뤄 불교를세상에 펼치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륵보살은 석가모니에게서 그와 같은 사명을 받은 미래의 부처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석가모니는 아득한 엣날 연등불(디팡카라 붓다)이라는 과거의 부처에게서 그러한 사명을 받았다.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 받는 것을 수기(受記)라고 하며, 이 수기를 받은 이는 수행에 더욱 힘쓴다. 이와 같이 수행을 계속해 부처가 되기까지를 보살이라 한다. 보살이란 부처의 후보자 또는 후임자를 뜻한다.
여러 책들의 기록을 간추리면, 석가모니의 수기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옛날 연등불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수메다라는 청년이 산중에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동안에 그는 5백 명의 수행자들을 만나 밤낮없이 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그의 가르침을 듣고 무척 기뻐했으며, 헤어질 때는 한 사람이 은전 한 닢씩을 내어 5백 닢을 그에게 주었다. 청년이 그 돈을 받아 들고 그 나라의 수도로 내려와 보니, 사람들은 모두 분주하게 길을 쓸고 고치며 향을 사르고 있었다. 이를 본 청년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바로 그날 연등불께서 이 도시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매우 기뻐하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곡 부처님을 뵙고 자신의 원을 이야기 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때 마침 고피라는 왕녀가 지나가고 있었다. 물항아리를 옆에 끼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이 꽂혀 있었다.
청년은 왕녀에게 가까이 가서 청했다.
"은전 백 닢을 드릴 테니 그 꽃을 내게 주십시오."
그러나 여인은 그 청을 거절했다.
"부처님이 이곳에 오시기 때문에 왕께서 목욕재계하고 이꽃을 바치는 것이니 나눠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은전 2백 닢, 3백 닢으로 값을 올리면서 흥정하다, 끝내는 5백 닢을 다 주고 일곱 송이 중 다섯 송이를 얻었다.
마침내 연등불이 수도에 이르자 국왕을 비롯해 백성들까지 모두 나와 꽃을 던지며 맞이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던진 꽃은 모두 땅에 떨어졌지만 이상하게됴 수메다 청년이 던진 다섯 송이의 푸은 연꽃만은 공중에 뜬 채 연등불의 머리 위를 장식했다. 이를 본 연등불이 그 청년에게 말했다.
"그대는 과거 오랫동안 여러 생애를 두고 수행을 쌓았고, 몸과 목숨을 바쳐 가며 남을 위해 애썼으며, 욕망을 버리고 자비로운 행을 닦아 왔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91겁(아주 긴 시간의 단위)이 지나면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로 불릴 것이니라."
이와 같이 연등불에게서 수기를 받은 청년은 그때 연등불이 지나가는 길이 진흙투성이인 것을 보고, 자기가 입고 있던 사슴 가죽옷을 벗어 길게 펼쳐 놓았다. 그러고도 부족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땅에 깔고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상은 <태자서응본기경>을 바탕으로 기술한 내용으로, 같은 이야기가 <증일아함경>, <과거현재인과경>. <수행본기행>. <불본행집경>. <사분율>등에도 나온다.
세부 내용은 약간씩 다른 점도 있지만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이 이야기는 가끔 그림이나 조각의 소재로도 쓰인다. 이를테면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위에 새긴 부조를 보면, 아프가니스탄의 쇼트라크에서 출토된 연등불 설화의 한 장면에, 청년이 고피에게서 꽃을 사는 모습과 연꽃을 연등불에게 바치자 다섯 송이가 모두 머리 위 공중에 떠 있는 장면, 또 청년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땅에 깔고 연등불에게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설화의 전후 사정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법은 여러 나라에 두루 전해졌다. 그리고 간다라에서 나온 부조나 중국 고창의 페허가 된 절의 벽화도 같은 소재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