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남매의 여름밤> 상영회 당일
도서관 인스타그램에 이날의 기록은 포기한다고 썼습니다.
1997년 영화 <컨택트>에서 우주인과 만난 주인공은 이곳에 시인이 왔어야 한다고 자신의 표현력을 탄식합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나의 조악한 글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으니 도망갔습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이런저런 감상이 가라앉은 지금, 제 일을 해야겠지요.
남매의 여름밤을 무사히, 정겹게 마쳤습니다 .
'무사히'가 맞습니다. 여러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정겹게'가 맞습니다. 이 하루를 이루기 위해 직조한 여러 이야기 조각들이 있습니다.
먼저 이야기들
상생시네마 이광기 선생님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9시가 안 되어 연락이 왔습니다.
"저 이제 출발했습니다!"
한껏 상기된 목소리였습니다.
아침부터 선생님과 땀을 뻘뻘 흘리며 스피커와 마이크를 연결했습니다.
담이 삼촌이 왔습니다.
해외출장을 마치고 인천 공항에서 바로 내려오시는 길입니다.
이광기 선생님이 설치해둔 음향 콘솔과 스피커를 유심히 살피신 뒤 정중히 제안하셨습니다.
"제 것을 쓰면 어떨까요?"
아침 내내 땀 흘려 설치한 콘솔과 스피커와 마이크를 해체했습니다.
담이 삼촌의 검은색 승합차에서 크고 무거운 상자들을 잔뜩 날랐습니다.
두 분이서 나누는 대화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행사와 무대 전문가들이 나누는 용어들이었습니다.
서로 처음 만난 두 전문가의 협업이었습니다.
제 것을 쓰면 어떨까요? 이 말을 건네기 위해 뜸 들인 시간과 공기를 저는 느꼈습니다.
불편할 수 있는 제안을 어떻게 정중히 하는지 담이 삼촌께 배웠습니다.
그렇게 무대는 담이 삼촌이 맡으셨고 이광기 선생님은 감독님을 모시러 가셨습니다.
저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하고 나머지는 동료를 믿고 맡기는 것.
두 분을 보며 협업의 기본을 생각했습니다.
파스타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서로의 기타, 은우의 신디사이저, 담이의 마이크에 전기가 연결되었습니다.
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지자 서로가 작은 한숨을 뱉었습니다
“으후 이제 실감이 나요”
행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초침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극장을 꾸밀 동생들이 왔습니다.
생태관 교육관을 근사한 영화관으로 꾸밀 시간입니다.
잔뜩 꾸며놓겠다!
어지를 공간을 앞두고 이글거리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사랑합니다.
종이에 쓰고 그린 화살표와 안내 글을 붙입니다.
감독님 앉으실 자리를 화려하게 꾸며놓았습니다.
입구에 박스오피스를 만들었습니다.
정성으로 그린 포스터를 액자에 담았습니다.
모금함을 만들고 은우 언니가 만든 표와 팸플릿을 가지런히 두었습니다.
행사장 입구를 지킨 안내원 민채.
이날을 위해 민채는 며칠전부터 인사를 연습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어중 형어외 誠於中 形於外, 마음 속의 진실함은 겉으로 드러난다.
정성으로 그린 영화 포스터와 손님 맞이 인사.
그 마음이 이날 행사장 입구를 밝혔습니다.
초침이 빠르게 돌다 이내 사라졌습니다.
오후 두 시가 되었습니다.
하윤이와 규리가 정시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며칠 쓰고 고친 대본을 손에 들고 섰습니다.
객석에 사람이 가득 찼습니다.
대청호자연생태관 교육관을 여러번 빌렸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광경은 처음이었습니다.
늦게 온 분들은 계단에 앉아야했습니다.
저도 객석 맨 구석 계단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파스타의 공연이 먼저였습니다.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마음에 잔 요동이 일었습니다.
이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앞 계단에 하윤이 어머니가 쪼그려 앉으셨는데
그 검은 실루엣은 연신 눈 주위를 손등으로 닦으셨습니다.
어느 평론가가 좋은 작품은 관객의 자리를 비워둔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창작자의 이야기에서 비롯해 관객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작품.
남매의 여름밤이 제게 그러했습니다.
제 앞에 앉아 계속 눈물을 흘리는 저 이웃에게도 그런 듯했습니다.
감독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줍음 많은 감독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잔잔하되 힘이 느껴지는 작품과 감독님이 닮아있었습니다.
재희와 연우의 진행은 역시 유려했습니다.
영화 전공생 재희의 깊이 있는 질문과
우리 마을 대표 사회자 연우의 재기발랄한 진행은 참으로 조화로웠습니다.
시내에서 온 시네필들의 수준 높은 질문이 이어지던 가운데
연우가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이들의 질문을 좀 받아보겠습니다.”
역시 연우였습니다.
시율이였던가요?
시율이의 그 맑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감독님은 언제부터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나요?”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아이가 물어야 비로소 힘이 담기는 그런 질문이 있습니다.
”오즈 야스히로의 <안녕하세요> 를 본 순간,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꼭 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듯한 작품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우리 마을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 하윤이 아빠가 질문을 하다가 울었습니다.
“영화 속 어린 남매의 여름밤을 따라가다보니 그 남매를 키우는 또 다른 남매가 보였다. 의도하신 건가요?”
만난 지 6년 만에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는 왜 질문을 하다 목이 멨을까.
남매로 자랐고, 어른이 되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사람.
하윤이 아빠의 눈물은 에스트로겐 때문이 아니라
'꼭 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듯한 작품'을 만난 까닭이 아닐까요.
호숫가마을다운 GV가 끝나고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인회가 시작될 즘 저는 밖으로 끌려나갔습니다.
멀리서 오신 손님들을 송별하고 도서관에 모였습니다.
월간 토마토 임다은 기자님과 진행팀 아이들은 따로 모여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웃들과 감독님과의 함께 식사했습니다.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길위의 회의주의자'들이 준비한 재료로 만든 작품입니다.
더운 날 이소희 선생님은 도서관에서 달걀 60개를 부치셨습니다.
유춘이 선생님이 근사한 케이크와 차를 준비하셨습니다.
라디오 방송 성우로 활동하는 유춘이 선생님,
감독님께 오십대 중년의 생활 연기가 필요하시면 불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해질녘 도서관 앞에는 재희와 감독님만 남았습니다.
호숫가로 안내했습니다.
어둑한 호숫가에서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비현실적이에요.”
검푸른 호수를 보며 감독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대전역으로 감독님을 모셔다 드렸습니다.
민채와 은성이가 그린 포스터와 입장료를 모은 모금함을 통째로 드렸습니다.
모금함에는 감독님께 드리기로 한 금액의 정확히 1.58배가 모였습니다.
동전까지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건들
1. 후원이 아닙니다.
상생시네마 이광기 선생님의 헌신을 기억합니다.
감사 또 감사합니다.
행사를 앞두고 실무자이신 이 선생님께서 난처한 목소리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상생시네마 대표님께서 당일 무대에 올라 3~5분간 인사말을 하실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상생시네마 대표님이 행사 말미에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드셨습니다.
아이와 이웃들이 준비한 상영회를 극찬하셨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며 "후원하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하셨습니다.
행사 직후 인사 드리며 '후원'에 대해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라도 남깁니다.
대표님 고맙습니다.
이광기 선생님의 제안과 헌신 덕분에 참으로 좋은 행사를 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정겨운 커뮤니티 시네마를 앞으로도 이어가시기를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다만 대표님, 저희는 후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1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지출하신 배급권 구매 비용을 저희에게 베푸는 후원이라 여기셨다면 저는 애초에 함께하지 않았을 겁니다.
감독 초청비를 호숫가마을이 맡겠다 말씀드린 것도 협력하는 파트너로서 마땅히 할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호숫가마을 아이들은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일방적인 후원이나 봉사를 받지 않습니다.
이번 일이 시혜와 수혜의 후원과 봉사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함께 벌인 대등한 협력 사업으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2. 행사 중간에 끌려나간 이유
입구에서 아이들은 입장권을 배부했습니다.
감독님 초청비 마련이 명분이었습니다.
생태관 선생님이 이 광경을 보시고 깜짝 놀라 저와 민정 씨를 불렀습니다.
무료로 빌린 공간에서 입장료를 받으면 어떡하냐며 난처해하셨습니다.
행사 중간이라 전후 맥락을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하고, 도서관의 수익 사업이 아니라는 것만 어설피 얼버무렸습니다.
앞서 기록한 ‘위기’ 편과 상생시네마에서 만든 포스터를 출력해서 행사 다음 날 생태관 관장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자료를 보여드리고 자세히 설명드렸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음을 사과드렸습니다.
이해하셨습니다.
걱정 말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쓰되 사용 규정을 자세히 알아보자고 하셨습니다.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3. 도로 철거 시작
드디어 도서관 앞 도로 확장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큰 트럭과 포크레인이 분주히 오갑니다.
아이들과 매달려 놀던 나무가 뽑혀 나가고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언덕이 깎여 나갑니다.
도서관 한지 창문 복도를 관통하는 파란 점들이 선명하게 찍혔습니다.
공사 담당자가 예상한 철거 기간이 상영회 날과 겹쳤습니다.
도서관 건물 일부가 뜯긴 상황에서 도서관에 앉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차갑게 고인 저의 마음에 민채 어머니가 돌을 던지셨습니다.
“관장님 마음이 심란하셨겠어요. 그래도 밥 한 끼 먹는 건 큰일이 아니잖아요. 같이 준비해요.“
그 짧은 대화에 용기가 났습니다.
오기가 생겼습니다.
도서관 건물 뜯기는 거랑 우리 마을 사람살이랑 무슨 상관이람?
포크레인 옆에서도 맛있게 먹을 거야!
길 위의 회의주의자는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시간에 대해
영화 속에는 두 개의 여름밤이 있습니다.
어린 남매의 시간과 어른이 된 남매의 시간.
같은 여름을 다른 층위에서 흐르는 두 시간이 영화 안에서 포개집니다.
현실에서도 그랬습니다.
6년 전 이 영화를 만든 윤단비 감독님의 시간과
6년 후 그 영화를 함께 보기 위해 모여 준비하는 우리 마을의 시간.
스크린 밖에서도 두 시간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더 긴 시간선이 있습니다.
2018년 마을 영화제의 시작부터, 2024년 도서관 철거 이슈 속 재희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마침내 2026년 봄 <남매의 여름밤> 상영회에 이르기까지.
오랜 인연과 서사가 비로소 하나의 시간으로 완결되었습니다.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의 카피를 나직이 중얼거렸습니다.
"시간을 넘어선 관계의 초상화"
글을 미룬 사이 문득 덥습니다.
끝나지 않을 여름밤이 다시 시작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