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완...박대통령님 구치소에서 대성통곡했다는 말에 울컥했었는데 그것도 기레기가 소설 쓴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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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 주신 자료 감사드림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보고 듣겠음니다.
박대통령님 구치소에서 대성통곡했다는 말에 울컥했었는데 그것도 기레기가 소설 쓴거였네요
TV조선이 「단독보도」라고 자랑하면서
이런 내용을 방송했다. 한참을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선
채로 눈물을 쏟으며 울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박 전 대통령을 방 안으로 들여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수감자들도 이 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全 언론이 사실 확인도 없이 베끼는
사태가 벌어졌다.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가 쓴 오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 교도관들은 모두 웃고
말았습니다. 이런 해괴망측한 기사까지 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全 언론이 대통령을 욕보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3개 교정기관, 즉 남부교도소, 서울구치소, 성동구치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라는 지침이 떨어졌습니다. 별도의 방이
마련되었습니다. 과거 김대중 씨가 수용되었던 특별한
방이 있습니다. 과거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신건 전
국정원장이 수용된 적이 있습니다. 수용시설이 한 건물에 상(3층)-중(2층)-하(1층)로 나눠져 있는데, 신건 전 국정원장은 3층 전체를
혼자 사용하였습니다. 외부인과 차단하기 위해 독실 서너
개를 혼자서 사용하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머물 곳도 마련되었습니다. 3평 내지 5평 크기의 방인데, 그 옆에 별도의 접견실이 설치돼 있습니다.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책상과 걸상도 넣어줍니다. 이는 특혜가 아니고
관행입니다. 아침에 일어난 수용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교도소 생리를 전혀 모르는
기자가 특종 욕심에 소설을 쓴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인이 되기 전인 1980년대에 두 차례 인터뷰한 적이 있다. 1979년에 있었던 10·26사태와 12·12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흐트러지지 않은 단아한 모습으로 기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즉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고 묻자, 말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가벼운 농담으로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체질적으로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의 표시였다. 질문을 한 기자가 오히려 몸둘 바를
몰라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손가락 두 개로 물구나무서기를 할
만큼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인 첫 반응은 “전방은요?” 이었다. 휴전선에 이상이 없느냐 하는 질문이다. 아버지 서거보다 북한군 동향에 더
신경을 쓴 분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기자도 기가 막혔다.
기자는 위 내용을 보도한 TV조선 조덕현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의 신분을 밝힌 뒤, 보도 내용의 사실여부를
물었다. 수용자인지를 알고 싶다”고 질문하자, 조덕현 기자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조덕현 기자는 “보도한 내용 외에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주류 언론과 종편의 타킷은 대통령에서 대통령 변호인단으로 바뀌었다. 변호인단이 변론을 잘못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이 잘못 변호를 해서 구속이란 사태를 불러왔다는 논조다. 마치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교묘한 책임회피다. 그 근거로 “변호인단을 교체하겠다”는 박지만 회장의 말을 들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박지만
회장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를 물었다. “누님의 뒷바라지를 지금부터는 내가 하겠다는 말은 했지만, 변호인단 교체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주류 언론의 태도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단을 이간질시키는 보도 형태를 볼 때, 제2의 언론 광풍(狂風)이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