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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한국철학(6) - 자장과 원광

작성자촌사람(이동민)|작성시간26.06.05|조회수16 목록 댓글 2

    한국철학(6) - 자장과 원광

 신라 왕실은 현실적으로는 후진성이 강했고, 그러나 삼국을 통일하려는 욕망도 강했다.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할 때는 저항이 아주 강했다.(이차돈의 순교) 구랴소 칼과 창으로 위압하여 불교를 받아들였다.

왕실은 불교를 삼국통일을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 활용하려 하였다. 그리고 청년들을 호국정신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 역할을 한 스님이 자장과 원광이다.

 자장은 국가를 수호해 줄 황룡사 구층 탑 건립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원광법사는 청년을 정신적으로 무장 시켰다. 순수한 불교적인 것만 아니고 유학 사상도 가미된 세속오계를 제정하였다. 세속오계는 오늘도 우리의 정신을 호국으로 무장하도록 하는 철학적 지침서가 되어 있다.

어쨌거나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한 준비로 받아들인 것은 호국불교 였다.

 삼국통일 후에는 호국이 아닌, 단합을 목적으로 화엄불교를 받아들였다.

 

자장

    진골귀족 출신(왕족이다.)으로서 부모가 관음보살에게 기도하여 4월 초파일에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가 죽자 출가하여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고행을 했다.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선덕왕의 부름을 받고 귀국, 이때 대장경을 비롯한 각종 불교 관련 물품을 갖고 돌아왔다. 불교치국책으로 난국을 돌파하고자 했던 선덕왕을 도와 불사를 일으키는 데 전념했다.
 그는 신라 왕실이 석가모니의 종족이라는 '진종설'을 만들었으며, 선덕왕을 포함해 진흥왕과 진평왕이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 정복군주라고 칭송하고 그 물증으로 신라삼보를 제시했다. 또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는 한편, 대국통에 취임하여 불교교단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나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불교치국책은 당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던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해 견제를 받았고 결국 그는 도태당했다. 오대산에서 은거하다가 입적했다.

    (자장 불교를 호국불교라고 한다.)

 

원광

  589년에 중국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7세기에 활동한 신라 고승이다.

 그는 승려이기 이전에 유학 정신까지 학습한 신라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통일제국에 필요한 행정, 군사제도 외교 지식 등 다양한 지식을 흡수하여 귀국하였다. 신라 최고의 진보 지식인이 되어서 진평왕의 통일 정책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는 국가 통합을 무력으로 이루려 ‘세속오계’를 제정하였다. 불교적 정신에 유학적 실천 윤리를 가미한 것이다. 신라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승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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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栢松 | 작성시간 26.06.06 한국철학-자장과 원광
    신라 왕실은 현실적으로는 후진성이 강했고, 그러나 삼국을 통일하려는 욕망도 강했다.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할 때는 저항이 아주 강했다.(이차돈의 순교) 구랴소 칼과 창으로 위압하여 불교를 받아들였다.왕실은 불교를 삼국통일을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 활용하려 하였다. 그리고 청년들을 호국정신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 역할을 한 스님이 자장과 원광이다.

    자장- 국가를 수호해 줄 황룡사 구층 탑 건립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원광법사는 청년을 정신적으로 무장 시켰다. 순수한 불교적인 것만 아니고 유학 사상도 가미된 세속오계를 제정하였다. 세속오계는 오늘도 우리의 정신을 호국으로 무장하도록 하는 철학적 지침서가 되어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한 준비로 받아들인 것은 호국불교 였다. 삼국통일 후에는 호국이 아닌, 단합을 목적으로 화엄불교를 받아들였다.

    원광-그는 승려이기 이전에 유학 정신까지 학습한 신라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통일제국에 필요한 행정, 군사제도 외교 지식 등 다양한 지식을 흡수하여 귀국하였다. 신라 최고의 진보 지식인이 되어서 진평왕의 통일 정책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는 국가 통합을 무력으로 이루려 ‘세속오계’를 제정했다
  • 작성자촌사람(이동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6 어느 시대의 사상과 철학은 그 시대의 필요와 요청에 따르고 있네요.
    그래서 나는 시대가 요청하는 공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공부가 우리 시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깨닫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더래도 나는 내가 하는 방식의 공부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 방에 한국 철학도 꾸준히 올리려 합니다. 우리 문학회가 바라서가 아니고 내 가 좋아히기 때문입니다. 백송 선생이 읽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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