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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18) - 팔공산 절 이야기도 쪼매 합시다

작성자촌사람(이동민)|작성시간26.06.17|조회수10 목록 댓글 2

    팔공산 절 이야기도 쪼매 합시다

 팔공산의 동화사는 신라 말에 신라의 왕자 심지 대사가 세웠다.

 백제의 옛 땅에 진표율사가 미륵사상을 퍼트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인기도 아주 높았다. 미륵사상이란 내면에는 세상을 뒤집는다는 혁명사상이 까려 있으므로, 경주의 신라 왕실은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진표의 제자들이 전주 금산사를 종찰로 하는 법상종을 표방하고, 2대 종주는 법주사의 영심대사가 맡았다. 동화사의 삼자댜서거 법상종의 3대 종주를 영심으로부터 뻬앗다시피 하여 동화사로 가져왔다. 팔공산 산신령도 반겼다는 내용의 기록이 전한다. 왕건과 맞장을 뜬 견훤이 금산사를 원찰로 삼았으므로, 고려의 시선에서도 법상종 사찰인 동화사가 고울 리 없었을 것이다.

 부인사도 팔공산에 있으므로 고려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절이름 부인과, 신라의 신분이 높은 여인에게 부치는 부인의 칭호와는 다르다고 하나. 그래도 부인사는 선덕여왕의 원찰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절에서 선덕여왕을 모시고 있다.고려  8대 현종 때 거란이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하자 조조 대장경을 판각하여 부인사에 부관하였다고 한다. 현종 때는 숨통이 조금 틔였으리라고 본다.그러나 고려 말에 경주 농민이 고려에 반란을 일으킬 때 본부를 청도 운문사에 두었다. 이때 동화사와 부인사가 운문적에 가담함으로 또  찬밥이 되었다.

 

 동화사는 고려 8대 왕 현종과 인연이 있다.

 현종은 왕건의 손자이나 왕자 출신은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왕씨로서 형통은 최상급이었다. 7대 목종 때 현종을 미워하여 강제로 중으로 만들어버렸다. 강조가 쿠데타를 일으켜 현종을 왕위에 올렸다. 현종이 스님 생활을 하면서 머문 절이 법상종 사찰인 숭교사와 숭절사이었다.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법상종 사찰인 동화사도 숨통이 틔였다고 한다.

 고려 말에 범상종 계열의 스님인 혜영이 원나라를 다녀와서 왕사에 올랐다. 법상종 사찰이었던 동화사가 혜영의 보호를 받고, 한 때 잘 나가는 절이 되었으나 -- 조선으로 바뀌지 억불정책의 찬바람을 맞는다.

 

 고려 초에 푸대접을 받은 이유에는 왕건과 견훤이 동수대전(팔공산에서 한 판 붙은 전쟁)에서 견훤에게 완패한다. 이때도 법상종 사찰인 동화사가 견훤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왕건으로서는 인상이 좋은 절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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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栢松 | 작성시간 04:56 new 한국의 철학- 팔공산의 절
    팔공산 동화사는 심지대사가 세웠다.진표의 제자들이 전주 금산사를 종찰로 하는 법상종을 표방하고, 2대 종주는 법주사의 영심대사가 맡았다. 동화사의 삼자댜서거 법상종의 3대 종주를 영심으로부터 뻬앗다시피 하여 동화사로 가져왔다. 팔공산 산신령도 반겼다는 내용의 기록이 전한다. 왕건과 맞장을 뜬 견훤이 금산사를 원찰로 삼았으므로, 고려의 시선에서도 법상종 사찰인 동화사가 고울 리 없었을 것이다.부인사는 선덕여왕의 원찰이었다. 지금도 절에서 선덕여왕을 모시고 있다.고려 8대 현종 때 거란이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하자 조조 대장경을 판각하여 부인사에 부관하였다. 현종 때는 숨통이 조금 틔였으리라고 본다.그러나 고려 말에 경주 농민이 고려에 반란을 일으킬 때 본부를 청도 운문사에 두었다. 이때 동화사와 부인사가 운문적에 가담함으로 또 찬밥이 되었다.
    동화사는 고려 8대 왕 현종과 인연이 있다. 현종은 왕건의 손자이나 왕자 출신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왕씨로서 혈통은 최상급이었다. 7대 목종 때 현종을 미워하여 강제로 중으로 만들어버렸다. 강조가 쿠데타를 일으켜 현종을 왕위에 올렸다. 동화사도
    숨통이 틔었다.조선시대 억불정책의 찬바람을 맞는다
  • 작성자촌사람(이동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48 new 팔공산에서 견훤과 왕건이 한 판 붙었으나, 왕건이 박살이 났다. 동수대전이라 한다. 팔공산애는 왕건이 박살이 난 전설이 많이 전해온다. 전투 상황을 보면,, 왕건이 유리한 조건이면서도 박살인 난 이유를, 동화사를 많이 꼽는다. 동화사가 견훤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고려 무신 정권 때, 운문사를 근거로 경주 지역 농민이 고려에 반란을 일으킨다. 그때도 동화사는 농민 반란군 편을 든다.
    또 하나는 동화사의 역사를 따져보면 금산사-법주사-동화사로 이어지는 미륵신앙의 도장이다. 그런데, 오늘의 팔공산에서 미륵신아을 찾아보기 어렵다.
    민속자료에 의하면 조선 말에 팔공산 아래마을 사람이 미륵불에게 빌러 갈때 팔공산을 올랐다는 말은 전래되어 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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