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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栢松 작성시간26.06.20 한국철학-고려시대의 유학
왕건이 고려를 세울 때 유학을 하는 참모들의 조언으로 천명과 인본 사상을 기초로 삼았다. 이때 발표한 시무 28조도 유학적 통치 이념이 뱌턍이 되어서 만들어낸 것이다.
불교는 정치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불교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불교의 폐단을 말하는 사람도 불교 교리는 건드리지 않고, 불교가 현실 세계에서 저지른 폐단만을 말했다.
고려 중기에 이르면 유학 경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유학은 제왕의 통치 이념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는다. 이제는 관료와 귀족계층에게 정치 이념으로 유학을 가르쳤다.
이때 유학을 확충시킨 교육자가 최충(해동동자라고 부름)최충은 1055년에 국제학당이라는 최초의 사학을 설치하고 구경(九經)과 三史를 가르쳤다. 학문의 목표를 인륜-도덕을 밝히는데 두었다. 구제학당을 시작으로 많은 유학자들이 각자 자기의 학당을 짓고. 제자를 길러냈다.
이 시기에 출간된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학 이념들이 깔려있다.
고려의 후기로 가면 문인을 우대하는 경향이 점 점 더 심해진다. 이로서 문벌 귀족이 전횡하여 권력을 잡고, 문벌 귀족으로 진화하여 권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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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