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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23) - 조선 초의 사림파

작성자촌사람(이동민)| 작성시간26.06.22| 조회수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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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栢松 작성시간04:29 new 한국의 철학- 조선 초의 사림파
    고려왕조를 붙잡으려 했던 유학자는 목슴을 잃거나 재야에 묻혀서 농사를 짓거나 후학을 양성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들을 사림파라 하였다. 조선 초에는 이들을 ‘초기 사림파’라고 하였다.
    관학파와 사림파 사이에 성리학의 학문적 이론은 같다. 사림파 유학자들이 관학파의 논리를 배우고, 계승하였다.(정몽주, 길재 등이 학문적으로 연구한 것은 없다. 그들은 실천을 했다.)
    정국이 안정되자 관학파나 사림파 모두 성리학의 핵심을 파고 돌었다. 결과적으로 조선초기의 관학파와 초기 사림파는 학풍에는 차이가 없었다.
    우리가 관학파니 사림파니 하는 관점이 아닌, 역사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유학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였다. 역사를 재해석하면서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이 동시에 조선의 충신이고, 정도전은 고려의 역적인 동시에 조선의 역적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냈다.
    사림파는 건국 시에는 정권에 정권에 적대적이었으므로 정부 구성에 배제되었으나, 이제는 사림파도 정계에 진출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정계에 진출하기 위한 위한 명분을 위해서도 훈구파(관학파)를 적으로 만들며 당쟁을 겪어야 했다.
    --감사
  • 작성자 촌사람(이동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33 new 조선 초의 사림파를 구성하는 사람은 주로 영남의 유학자들이었다.
    영남의 유학자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면서 도덕적 실천을 강조, 또 강조합니다.
    삶에 예의와 무관한 서민들, 심지어는 노비까지도 예의를 찾는 곳이 영남지역입니다.

    가증 큰 욕이 '똥상놈'이고 --- 좋은 점도 있지만 양반인척 하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살도록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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