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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영웅이야기 / 이동민

작성자야웅|작성시간26.06.16|조회수1 목록 댓글 0
불쌍한 영웅 이야기

이동민


    백수가 된지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오후 녘이면 지루하기란 여전하다. 평생을 탈 없이 살고 있는 나의 하루이다. 버릇이 되어서 텔레비전의 리모콘 버턴을 누른다. 벽면에 붙어 있는 검은 화면이 밝아지면서 거실도 환해진다. 화면에는 정장을 한 남자들이 움직임 하나 없이 두 줄로 앉아 있다. 마치 마네킹 같다. 얼굴도 굳어 있다. 박대통령은 약간 화가 난 듯이 한쪽 팔을 들고 무언가를 지시하였다.


    초등학교 때였다. 선생님은 판서를 하다가 획 돌아섰다. 구석자리에서 속닥거리던 말소리가 심기를 거슬렸나보다. 약간 찡그린 얼굴에 눈을 치켜 뜬체 ‘누구냐’라고 소리쳤다. 교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 졌다. 반 아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화면에 도열해서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때의 우리 모습과 닮았다.
나도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있었다. 느닷없이 "이동민 나와" 했다. 주춤주춤 하면서 선생님 앞으로 가자 주머니에서 종이돈 한 장을 꺼내 주었다. "활명수 한 병 사와.’" 했다. 약국에 심부름을 다닌 일이 여러 번이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 교실 뒤쪽에 있는 실습지의 배추를 뽑아서 집에다 가져다 준 일도 있었다. 겁이 많고 기가 약한 나로서는 부반장이라는 직책이면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알았다. 교실 문을 조용히 열고 나오는 나를 반 아이들은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우쭐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누구냐!’라고 고함을 질렀을 때는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누군가가 일어서지 않으면 반 아이들이 줄을 지어 나가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다. 그럴 때마다 회초리는 서 너 개가 부러졌다. 아이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이유였다. 나는 매를 피할 수 있어서 우쭐했고, 부반장이라는 감투가 고마웠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의아했다. 아나운서는 분명히 회의 중이라고 했지만 긴장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회의 중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획 돌아서면서 ‘누구냐’라고 했을 때의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무엇 때문에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을까. 부반장의 직책이 선생님의 부당함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했듯이 감투를 쓰고 있는 저들도 대툥령 앞에서는 말씀만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6학년이었던 우리 반에는 전쟁이 끝난 지 겨우 3~4년쯤이어서 서 너 살이 많은 아이들도 있었다. 키나 몸피로 따져도 형뻘이었다. 미술시간이면 교문 앞의 문방구에 가서 도화지를 사오는 일까지 시켰다. 부반장인 나도 그의 심부름을 피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청소를 할 때면 나는 아이들을 감독하고, 선생님에게 보고를 하러갔다. 그 친구가 청소를 않더라도 나는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들의 왕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초등학교 때가 떠올랐다. 박대통령 앞에 도열해있는 사람들이 반 아이처럼 보였다. 나도 화면 속으로 들어가서 슬그머니 그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화난 선생님의 눈길을 피하면서 반 아이를 흘금흘금 훔쳐보았듯이 그 사람들을 훔쳐보았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고시를 치룬 사람들이었다. 대학교수를 하던 분도 있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 사흘이 멀다 하고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던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주눅이 들어서 같이 앉아 있기가 민망했다.


    활명수를 사들고 교실 문을 들어서자 분위가가 심상치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의 왕을 세워놓고 훈시했다.
“네가 잘못 했으면 응당 매를 맞아야지.”
 고개만 숙인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 네가 잘못한 것에 합당한 굵기의 회초리를 갖고 와.”
그는 선생님에게 떠밀리다시피 하여 교실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다시 착한 사람이 되라는 긴 훈시를 했다.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듣는 척 했다. 아직은 어린 나이였지만 선생님이 말이 모두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선생님이고, 나는 나이도 어리고, 온갖 변명거리를 생각하면서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상했다. 도열해 있는 사람은 아이가 아닌 어른이다. 공부도 아주 잘해서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대학교수까지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초등학교의 우리처럼 아무 말도 않고 앉아 있었다. 대통령의 말이 모두 옳아서 일까? 그것까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내 눈에 그들은 우리가 감히 올려다 볼 수도 없는 진골이고, 성골이었다. 육두품의 처지도 안 되는 내가 그들의 속내까지 알 수가 없다.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 있기로는 나도 마찬가지다.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기가 견디기 어려워서 나는 텔레비전 밖으로 나와 버렸다.


    교실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우리의 왕이 들어왔다. 어깨에는 우리의 다리보다 굵은 나무둥치를 메고 있었다. “선생님, 맞을 매를 갖고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많이 잘못해서 이 정도의 매라야 될 것 같습니다.‘"
순간 선생님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흘렀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무 말도 않고 한참 동안 멍하니 처다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나무둥치 제 자리에 가져다 두고 와.”
수업 시간은 곧 끝이 났고 선생님은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날부터 그 친구는 전설을 만든 우리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두어 달 뒤에 졸업을 했으므로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우리들의 영웅 소식을 들은 것은 30년도 더 지나서 였다. 뿔뿔이 흩어져 사느라 누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 동기회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모두들 얼굴이 변해 있어서 누가 누군지도 몰랐다. 나는 우리 영웅의 소식이 제일 궁금했다.
“그 친구 죽었어. 부산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살더니만”
“어디가 아팠어.”
“술을 그렇게 퍼마시니------.”
술병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벙벙했다. 기억 속에 영웅으로 남아 있던 친구가 술이나 퍼마시다가 죽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키도 크고, 운동도 잘 하고, 쉽게 죽을 몸은 아닐텐데."‘
 나는 왠지 자꾸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가 어렸으니까 그렇게 보였지 뭐, 키도 우리보다 훨씬 작더라. 길에서 한 번씩 만났는데, 어깨도 구부정하고, 기죽은 모습을 하고 피하더라.”
뒷맛이 조금은 씁쓸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기야 겨우 초등학교를 나와 마지못해 도시로 떠밀려 와서 사는 촌놈이 영웅은 무슨 영웅이겠나.


    박대통령 앞에서 도열하듯이 앉아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난 것은 여러 달이 지나서 였다. 그들은 여전히 텔레비전의 좁은 박스 안에서 엄숙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욱박지르는 국회의원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했다. 나는 어차피 그들의 세계에서 국외자일 뿐이니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다. 답답한 심정이 되어서 그들을 만나보러 다시 텔레비전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뵙네요.”
 그는 대꾸도 않고 힐긋 돌아보기만 했다.
“새파란 녀석들이 국회의원이랍시고 닦달을 해대니 창피하지 않아요. 자존심도 상할테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을 당신 따위의 보통 사람은 알 수 없지, 암 어림없지.”
“당신은 죄를 지었고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우등상을 여러 번 받았고 지금은 교통신호를 꼬박꼬박 지키는 범샘입니다.”
 나도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
“이건 죄가 아닐세. 정치적 힘이 달려서 밀린 것 뿐이네. 내가 힘이 세어지면 언제라도.”
그는 우리의 영웅처럼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고 당당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시간 따라 세상 인심이 바뀌는 것이 역사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래도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텔레비전 밖으로 나와 버렸다.
며칠 뒤에 쇠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세월이 지나면 이야기꾼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옛날에 정치적 힘이 달렸다는 사람과, 포장마차를 하다가 술병으로 죽은 초등학생 때의 영웅과, 그리고 반드시 파란 신호가 떨어져야만 길을 건넌다는 세 사람이 살았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꾸려갈려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2017. 2. 18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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