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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符籍) / 이동민

작성자야웅|작성시간26.06.11|조회수1 목록 댓글 0

부적(符籍)

 

이동민 

 

 

    아침 산책길에 무심코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현관 열쇠가 만져지지 않았다. ‘어! 열쇠가---. 윗 옷 주머니도 더듬어 보았지만 없었다. 방에 두고 온 것이 분명하다. 이 일로 산책하는 동안 내내 불안에 휩싸여 안절부절 하였다.  외출을 하였다가 돌아와 현관 앞에서 으레 있을 줄 알았던 열쇠가 없어 곤혹스러웠던 일이 여러 번이나 있었다. 추운 겨울 날에 다른 가족이 돌아 올 때까지 바깥에서 기다렸다. 즐겁지 않았던 기억 탓에 외출을 할 때는 습관처럼 열쇠를 챙긴다. 열쇠는 나에게 강박증이 되어서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다. 현관에 전자자물쇠를 덧붙여 설치했다. 장시간 동안 외출하지 않을 때는 전자자물쇠만 잠근다. 전자자물쇠는 문을 닫으면 저절로 잠긴다. 비밀 번호를 누르면 문이 열리므로 열쇠가 필요 없다. 그런데도 열쇠에 대한 불안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침 산책 때는 재래식 자물쇠는 잠그지 않는데도 열쇠를 갖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이런 까닭으로 문밖으로 나설 때는 반드시 열쇠를 챙긴다.

 

    나이 탓인지 요즘은 바지를 바꾸어 입을 때 더러 열쇠를 빠뜨린다. 다른 것도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 기억을 보충하러 생활지침이랄 수 있는 삶의 규칙을 만들었다. 현관을 나설 때는 먼저 부엌에 들려 가스 불을 확인한다. 수돗물도 살펴본다. 전기도 점검하고 열쇠도 챙긴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부엌 둘러보는 일을 깜박 잊는 일도 있다. 그런 날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불안하다. 규칙을 쓸데없이 만들어서 불안을 불러들인 꼴이다.

바깥에 나와 있을 때는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열쇠를 만지작거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전자자물쇠를 달아서 재래식 열쇠의 용도가 그만큼 줄어들었는데도 집착이 버려지지 않았다. 열쇠에서 편안함을 찾으므로 어느 사이에 부적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열쇠는 나의 삶에서 오히려 짐이 되어 있는데도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부적으로 삼았다.

 

    아이의 예방접종을 하러 온 엄마가 우유 값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렸다. 요즘에는 아기의 월령이 3개월일 때 또 4개월 일 때 먹이는 우유가 다르다면서 비싼 값으로 판다. 내 딴에는 조언을 해준다는 심사로 한 마디 했다.‘왜 비싼 우유를 먹입니까. 일반 우유로도 잘 자랍니다. 공연히 돈만 낭비하는 겁니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내 말투가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 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아무렴 이면 비싼 우유가 더 좋지요.’라며 자꾸 우겼다. 나도 기분이 언짢아졌다. ‘아이를 키우는 전문가의 의견도 들으세요’ 라고 했다. ‘그럼 그렇게 큰 회사(우유회사)가 거짓말을 한다 말입니까?’라며 소아과 전문의라는 나의 자부심에 찬 물을 끼얹는 말만 했다. 나도 화가 났다.  짜증 섞인 나의 말투가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샐쭉해지면서 ‘나도 알 만큼 알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서서 나가 버렸다. 내가 그 엄마를 얼마나 화나게 하였는지는 따져 보지 않았다. 소아과 의사의 자존심을 뭉게버리는 말이 나를 휘감으면서 엄마의 불손함은 몇 배로 부풀리어 졌다. 속이 좁은 탓으로 이런 날은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다. 자책도 했다.

화난 얼굴이 보기 딱하였던지 간호사가 한 마디 거들었다. ‘요즘 엄마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선생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요.’ 그러고는 흘깃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요, 젊은 선생님들은 엄마들의 말에 무조건 맞아요, 맞아요, 하면서 동조해준데요. 내 말이나 엄마의 말이나 그저 오십 보, 백 보인데 고집스럽게 자기의 주장을 하여 우리 의원의 단골 엄마를 화나게 할 일이 있습니까?’라는 뜻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굴원이 중앙 정부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쫓겨나서 고향에 내려왔다. 아침마다 강둑을 산책하면서 불만을 달랬다. 이를 본 어부가 ‘시속에 맞추어서 마음 편하게 살 일이지 무어가 잘 났다고 바른 소리를 하여 이곳에서 울분이나 삭이면서 살고 있느냐, 는 비앙거림이 숨어 있다는 해설을 읽었다.

간호사가 한 말도 ‘맞습니다. 맞습니다’ 라며 맞장구나 처 줄 일이지 무어가 잘 났다고---‘ 하는 뜻일 게다. 맞는 말이다. 나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살아 온 햇수가 한 해, 한 해 쌓여 갈수록 ‘산다’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렇더라도 쌓인 가치관이 쉬이 바뀌지 않는다. 나이 든 자의 옹고집 탓인지 지금도 상처를 받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반드시 옳다는 생각을 버리려 노력을 해본다. 결코 쉽지 않았다. 부처님처럼 깨달아서가 아니고 간호사의 말마따나 오십 보이고, 백 보인 것을 굳이 내가 옳다고 내세우므로 다른 사람과 부딪혀 상처를 줄 일이 있을까? 더욱이 남에게 상처주기 보다는 내가 받는 상처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을 깨닫는 것과 실천 하는 것은 사뭇 달랐다. 나이가 들면 평생을 다져 온 생각을 바꾸는 일이 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잠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하여 쉬이 실천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마음 편하게 살자’를 깨달음으로 삼아 주문처럼 외워본다. 화가 나더라도 오십 보, 백 보인데---. 라고 몇 번씩이나 중얼거리고 나면 마음이 다시 조용해진다. 쓰임새가 줄어 들었더라도 열쇠는 부적이 되어서 나를 편안하게 해주듯이 ‘마음 편하게 살자’라는 주문도 부적이 되어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게 옳은 삶은 아닐 테지만 나이를 핑계로 나만 편하면 되지 하는 이기적인 삶으로 빠져든다.

 

<일일문학 제 2집(2016년 그루) 발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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