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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생님 문화공간

우산 신화

작성자배화열|작성시간07.03.01|조회수14 목록 댓글 0
 

과거에 우산은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었다. 요사이는 자가용 덕택에 추위와 비를 피부로 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뇌리에는 과거의 약한 비에는 싸구려 비닐우산도 인기가 있었다. 억수같이 퍼붓는 장대비 앞에는 천으로 된 우산도 아무 소용이 없다. 더욱이 태풍이나 강풍 앞에는 거의 모든 우산들이 소용이 없다. 그래도 우리 민족이 머리에 비를 비교적 적게 맞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비는 농경시대부터 하늘의 축복이다. 그러나 도시인에게는 일상생활의 활동에 방해꾼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5개월간 외손자 성윤이가 우리 집에서 지냈다. 지금은 태어난지 9달이 다되어간다. 우리 집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관 근처에 매달린 종이로 만들 알록달록한 우산을 몹시 좋아하였다. 유난히 그쪽으로 안고 가면 고개를 매달린 우산에 시선을 집중하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우산은 성윤이에게 하나의 신화로 다가왔다. 나에게는 신화의 발견을 더욱 확대해 주고 싶다. 마음껏 신화에 푹 빠져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산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다. 아기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다. 그러면 더욱 세밀한 관찰을 늦추지 않는다. 아래에서 우산을 보려고 하면 고개를 약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잘 보이게 들어 올려주는 것이다. 요사이도 근처만 가면 우산이 있는 높은 곳으로 고개를 획 돌린다. 이럴 때 나는 우산을 강조한다. “우산이 있어요. 우산. 정말 예뻐요. 참 예뻐요. 우산. 우산이 있어요.”라고 몇 번씩 들어 주면서 반복한다.

 

  20일 전에 집으로 데려간 후로 몹시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다. 남의 장인이 사위집에 찾아다니기도 우스운 이야기다. 정말 사람은 두불 새끼가 예쁘다더니 정말 예쁘다. 우리 집의 벽 중앙에는 외손자의 백일 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가끔 놀러오면 다른 것은 잘 기억하지를 못해도 우산은 늘 기억한다. 나는 안고서 아파트의 좁은 공간에서 부엌부터 작은방과 큰방으로 그리고 현관의 우산이 있는 곳으로 안고 다닌다. 가면서 혼자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짝짝짝이에요.” 딸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나에게 세뇌공작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짝짝짝은 외손자의 발바닥을 두들기면서 장단을 맞추는 소리이다. 어린애를 거의 거의 외면해온 내가 귀여운 외손자를 어떻게 하면 잘 데리고 놀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처음 집에 온 3달째 되던 날부터 발바닥을 잡고서 오른 발을 왼발에 살짝살짝 두들기면서 하던 노래였다. “짝-짝짝, 짝짝짝-” 다시 발을 바꾸어서 운동을 시킨다. 그리고 두 발을 모아가면서 즉 발바닥을  모아서 두들기면서 노래한다. 며칠 전 설날에, 처가에 외손자를 데리고 갔다. 아기를 보는 나에게 처남이 놀라면서 자형은 많이 변했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우리 집이나 형제들의 집에 아이를 안고 다닌 적이 없다. 처남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이젠 나이가 든 모양이다”라고 변명했다.

 

  몇 달 전부터는 짝짝짝을 하면 발을 뻗쳐버리고 딴 짓을 한다. 그리고 불매도 몸을 획돌려 버린다. 그래서 아이는 나와 같은 방향을 보면서 불매를 한다. “불매 불매 불매야, 경상도 대불매 후루룩 후루룩 날아라.” 두 번을 반복한 다음에 나름대로 후렴을 붙여준다. “한번 날아 볼가요. 이이고 불매가 날아가 버렸네. 불매가 어디로 갔지요.” 사실 이 후렴은 내가 지어낸 것이다. 넷째 동생의 막내에게 불매 타령을 하자니 처가의 장인어른의 불매타령을 따라서 하는 것 같아서, 젊은 사람이 노인이나 하는 불매타령의 지혜를 그대로 답습하기에 왼지 쑥쓰러워서 붙여본 것이 후렴이다. 짝짝짝과 물매타령이 끝나면 도리도리를 사투리로 시작한다. “도래도래 짝짝짝.” 두 번을 반복하면서 눈과 눈을 가까이 하면서 특유의 제스처로 잘 웃는 외손자의 모습을 한 동안 즐긴다.

 

  사람이 정이란 것이 무척 크게 작용한다. 2년 전에 우리집에 온 아기 손님 성원이를 보내고 보고 싶어서, 유아원으로 찾아간 적이 몇 번 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그리고 잘 일어서지를 못하여 옆으로만 굴러서 다니는 아기에 대한 정도 무척 크게 상처로 다가왔다. 막내가 어학 연수차 일본에 있지만 가끔 귀국하면 반드시 찾아본다. 친 동생처럼 아낀다. 이젠 성원이는 마음속에서 가물거리고 성윤이가 더 보고 싶다. 퇴근하면 “할아버지 오셨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부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였다. 정말 피곤해도 안아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안기가 힘들어 지면, 방에 이불위에 눕히고 딸랑이를 바르게 흔들어 주면 두 팔을 아래위로 힘껏 마구 흔들어 댄다. 즐거워하면서 그것도 이마에 땀이 흠뻑 배어 있으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한다.

 

  외손자도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성장하면, 힘든 청년과 장년 그리고 노년 시절도 이웃을 사랑하고 즐거운 삶을 살면서 자신의 2세도 잘 보살필 것이라 기대해본다. 커가면서 좋아하는 대상이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우산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처형이 정교하게 만든 것이라 처음에 잠간 동안 나의 시선에 머물다가 사라진 우산이, 외손자의 노리개 감으로 크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우산이 신화로 성윤이에게 다가왔다. 나에게는 성윤이가 신화로 받아들이는 그 행위가 신화이다. 신화는 진리를 우리에게 심어준다. 학문이 심어주는 신화가 지식이라면, 신화가 심어주는 신화는 지혜로 자라난다. 우산 신화도 우산의 원리를 인식하기 이전에 그리고 우산의 기능에 대한 지식이전에, 신화가 가진 모델을 포함한 여러 가지 기능을 이미 인식하도록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 민족이 우수한 발명을 하는 것이 젓가락 사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젓가락보다 제사에 참여하고 우리의 뿌리를 잘 인식하면서 조상의 행위를 본받는 것이, 더 우리를 우수한 민족을 만들어 준다고 본다. 여기서 조상의 행위는 영웅적인 행위로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하나의 신화로 남는다. 신화의 인식과 창조와 관련된 우리의 무의식은 칼 융은 원형이라고 한다. 원형 중에서 아니마-아니무스라는 성격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제사와 족보를 존중하는 한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발전할 신화를 계속해서 만들어 낼 것이다. 진리보다 상위 개념이며 학문보다 상위 개념인 신화는 나의 최근의 화두이다. 신화는 문화의 세계에서 문화의 본질이며, 문화현상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산 신화도 앞으로 성윤이에게 다른 신화에 대한 기본 태도를 길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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