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5-8 / 기도할 때 주의할 점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0.10.14|조회수26 목록 댓글 0

■2020년10월14일(수)■

 

(마태복음 6장)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묵상/마 6:5-8)

 

주님께서는 오늘 올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두 종류의 기도를 배격해야 한다. 하나는 외식하는 자의 기도와 또 하나는 이방종교의 기도다. 

 

◆ 외식하는 자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5)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음을 지적하신다. 기도가 어느덧 종교인들의 덕목이 되면서 다른 목적을 띄게 된 것이다. 즉 '자랑거리'가 된 것이다. 

 

기도는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이런 기도를 보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경고하실리가 있는가?  공동체가 모여서 기도할 때 사람들은 기도하고 난 뒤에 '내 기도가 어땠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참 괴롭다.  도대체 누굴 생각하며 기도한 것인가?

 

주님께서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하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모여서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하는 것이 필요없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람이 많든 없든 간에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과 일대 일로 기도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골방에나 눈에 띄지 않는 숲에 들어가서 주님과 나만의 교제를 즐겨보았는가? 은밀한 중에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해보았는가? 그것을 체험해본 사람들은 연인들의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가 바로 주님과 우리 사이를 묘사한 것임을 이해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고 너무나 복된 일이다.

 

 

◆ 중언부언 하지 말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7)

 

중언부언(babbling)이란, 똑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단어만 바꾸어서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기도를 길게하고 싶어서이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이런 중언부언을 위해 아예 주문들을 가지고 있다. 남묘호랑게교라는 불교 종파에서 개종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주문을 8시간동안 쉬지 않고 외우면서 기도한 적이있다고 했다. 그들은 긴 기도 자체가 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이 응답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란 딱다구리가 수천 번 쪼아대어 구멍을 뚫는 작업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다. 

기도할 때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잊으면 안된다. 

인격을 가진 분과 대화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하는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무엇이든 장황하게 말함으로써 정성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심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다음부터는 기도할 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한 단어 한 단어 신경을 쓰고 말하게 되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이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하려고 한다.  '지금 인격체이신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 '

 

장황하고 반복하여서 기도를 늘리는 시도를 하지 말라. 그것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이방종교의 기도방식이다.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긴 시간이나 무수히 반복되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에 달려있다. (약 1:6)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신다!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엄청난 일을 하실 때 단순히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그리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얼마나 짧으면서도 믿음이 담긴 기도인가?

 

주님께서는 갯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을 같은 기도를 하셨다. 우리는 그런 것을 중언부언이라고 하지 않는다. 애타게 매달리는 간구는 더 이상 중언부언이 아니다. 응답을 약속받을 때까지 간절히 반복해서 부르짖는 간구를 우리는 중언부언이라고 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과부의 예화를 통해서 오히려 그런 반복적인 기도를 '믿음의 기도'라고 하셨다.(눅 18:1-8)

 

오직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그리고 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진정성없이 반복하는 그런 기도를 중언부언이라고 한다. 그런 기도를 피하고 믿음의 기도를 하라. 

 

주님, 제가 중언부언하지 않고 정신차린 기도를 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기도를 배우게 해주십시오. 은밀한 중에 주님을 뵈옵고, 은밀한 중에 비추시는 주님의 얼굴빛을 보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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